헨리 다거와 <비현실의 왕국에서>
제가 관심 있는 작가 중에 헨리 다거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평생을 가난한 노동자로 일하고 평생 홀로 살면서 <비현실의 왕국에서>라는 거대한 판타지소설을 60년 동안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흥미로운 건, 다거는 자신의 일생을 쏟아 부은 작품을 출간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례는 아마 예술가의 자기만족적 창작의 가장 극단적인 예시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헨리 다거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약간 슬퍼집니다. 전 소설을 쓰면 출간해서 온 세상에 알리고 싶은 작가거든요. 저와 다거는 세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정반대에 있는 작가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평생을 한 작품에 바친 예술가의 고독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깊은 안쓰러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제가 다거에 대해서 안쓰러움과 함께 묘한 동경심도 느낀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돈이나 명예나 출간이나 독자의 반응이나 그 밖의 모든 것을 따지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 그것에 대한 동경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다거와 같은 작가가 되고 싶지 않지만 저에게도 다거와 비슷한 성향이 약간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헨리 다거를 마냥 괴짜 예술가나 평생을 가난하게 산 불쌍한 예술가로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어쩌면 다른 세상에서 태어난 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