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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Jan 12. 2022

<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광화문>을 다녀오다

600년 우리 역사의 목격자, 광화문 공간의 변천사를 조망하는 전시

오늘날 광화문 거리는 경복궁 남쪽 정문에서 세종로 사거리에 이르는 넓은 길과 주변 일대를 가리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은 ‘광화문 600년: 세 가지 이야기’를 주제로 일대의 역사·문화를 탐색하는 특별전을 연이어 마련했는데요. 그 세 번째 이야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공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광화문>에 직접 다녀와 봤습니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됩니다. 전시장에는 관람 방향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는데요, 화살표 방향을 따라 들어오면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1부는 바로 ‘다시 찾은 광화문’입니다.


전시장 입구


1910년 강제병합 이후, 일제는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광화문을 해체하여 강제 이전시키고, 이 거리를 광화문통이라 불렀죠. 세종로 사거리에서 태평로로 연결되는 길에는 통치기관이 집결되었습니다. 이후 광복과 함께 광화문 거리는 우리의 공간으로 돌아왔으나 기쁨도 잠시, 미군정은 구 조선총독부 청사를 청사로 사용했고, 사람들은 군정 청사를 중앙청, 그 앞 광장을 중앙청 광장이라 불렀습니다. 훗날 식민지배 흔적 지우기 작업이 시작되며 광화문 거리의 이름이 광화문통에서 ‘세종로’로 바뀌었습니다.


전시 1부


광화문 거리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곳이기도 합니다. 1948년 8월 15일, 중앙청 광장에서 정부수립 선포식이 거행되었고, 세종로에서는 축하 퍼레이드가 펼쳐졌습니다. 한편, 6·25전쟁 당시 일대의 대부분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휴전 이후 제대로 된 복구 사업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죠. 그러나,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당시 광화문 거리는 그 중심 무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전시 1부는 광화문 거리가 식민 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2부 ‘광화문 거리의 개발과 건설’은 광화문 거리가 개발되며 현대적 경관이 연출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경제개발을 위해 세종로에 국가 행정기관을 밀집시키며 정부 신청사가 건립되고, 중앙청이 복구되어 중앙 행정기관으로 사용되었는데요. 이는 광화문 일대가 육조거리와 같은 맥락의 관청 거리로 회복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시 2부


한편, 1960년대 광화문 거리는 도시 인구 급증에 따라 심각한 교통문제를 맞닥뜨렸는데요. 이에 지하보도가 건설되고, 전차가 철거되며 일대는 자동차 중심의 공간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세종로 도로 폭 확장도 주요 변화 중 하나입니다. 당시 광화문 거리의 모습을 직접 운전대를 돌리며 확인할 수 있답니다.


또한, 세종로 주변에 경제성장과 맞물려 번화가가 형성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제극장과 시민회관, 예총회관이 있었고, 명문 학교들과 유명 사교육 시설들도 자리했죠. 전시에서는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들의 포스터도 만나볼 수 있답니다. 이외에 서점과 다방, 식당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또한, 역사적 인물 동상들과 건물이 조성되었는데요. 광화문 광장의 상징과도 같은 충무공 이순신 동상 역시 이 시기에 세워졌답니다. 또한, 일제에 의해 경복궁 동문 북쪽으로 옮겨졌던 광화문이 복원되기도 했습니다.


전시 3부


3부는 바로 ‘광화문 거리의 현대적 재구성’입니다. 1970년대 유신체제 아래 강남 개발과 함께 강북 도심재개발이 추진되었는데요. 이때 정부 제2 종합청사는 과천으로, 국회의사당과 한국방송공사는 여의도로, 대법원과 검찰청 및 다수의 외교기관은 강남으로 이전합니다. 또한, 평양에 뒤지지 않는 대규모 문화시설 건립을 목표로 시민회관 자리에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세워졌죠.


한편, 1980년대 올림픽 유치는 도심부 전면 재개발과 함께 광화문 거리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심부 스카이라인 형성을 위한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일대의 오래된 주택과 식당, 학교와 학원, 서점 등 중소형 건물 상당수가 주변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 고층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교보빌딩과 국제통신센터 이름으로 세워진 KT 광화문지사 건물 역시 당시 건립되었습니다. 3부에서는 이처럼 오늘날 광화문 거리의 현대적 공간들이 확정되는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시 4부


마지막 4부 ‘광화문 공간의 전환’에서는 오늘날 광화문 일대가 시민들의 것이 되기까지의 흐름이 나타납니다. 1995년에는 구 조선총독부 청사가 세워진 지 70년 만에 철거되었고, 더불어 경복궁 복원사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또한,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을 조성하자는 요구에 따라 1998년, 공원 형태의 시민열린마당이 개장되었죠. 2009년에는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었답니다. 한편, 2006년에는 콘크리트로 복원되었던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일환으로 재복원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어서 광화문 공간의 역사 문화를 회복하자는 분위기 속에 2012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1961년 건립된 정부 신청사 자리에 개관했습니다.


대중의 요구 속에 광화문 공간은 조금씩 개방되었는데요. 지하철 광화문역이 개통되었으며, 1999년 지구의 날 행사 당시에는 세종로 차도가 ‘차 없는 거리’로 개방되었습니다. 또한, 세종로 사거리에 횡단보도가 설치되었는데요. 이는 광화문 거리가 사람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되는 상징적인 장면들입니다. 시민 참여형 광장의 기능은 새천년 맞이 국민 대축제 행사와 2002 월드컵을 계기로 2000년대에 활성화되었습니다.


미래의 광화문(공간)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전시 마지막 부분에서는 ‘미래의 광화문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직접 써보고, 스크린에 띄워 다른 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고민 끝에 ‘모든 이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라고 적어보았습니다. 현재 광화문 광장은 사람이 쉬고 걷기 편하게 재구조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이러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광화문 거리에는 조선왕조의 중심이었다는 역사성과 대한민국 정치, 행정, 외교의 중심이라는 상징성, 시민의 문화 활동과 집단적 의사 표현이 이루어지는 공공성이 혼재해 왔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광화문 공간이 국민의 공간으로서 가지는 특수성과 복합적인 성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이번 특별전에 방문하여 광화문 거리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떠올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글·기획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8기 양여진

사진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8기 양여진

참고문헌 |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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