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모녀-
이은영
오랜만에 남포동 먹자골목에 갔다. 남포동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곳이었다. 우리 형제는 엄마 따라 국제시장에서 옷을 사고 나오면서 꼭 먹자골목에 들러 허기를 채우곤 했다.
주위는 많이 변했지만, 먹자골목 안에 있는 식당이나 주위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다. 옛 맛을 느껴 볼까 해서 분식점에 들어섰다. 어릴 때 먹던, 옛날 맛 그대로였다.
나는 오징어무침과 부추전을 시켰다. 매콤달콤한 예전의 그리운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래, 그래 이 맛이야,’
추억을 더듬으며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중국인 모녀가 일어나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한국 돈의 단위를 잘 모르는지, 지갑에서 한 움큼 돈을 집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주인에게 음식값만큼 가져가라는 식이었다.
중국인 모녀를 보니 내가 처음 중국에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주재원으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 중국 칭다오에서 10년 동안 살았다. 처음에 돈의 단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 모든 것이 불편했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그땐 1원 아래 ‘지아오’ 라는 단위까지 있어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1전에 해당한다고 할까.
안쓰러운 마음에 내가 떡볶이 가격과 부추전 가격을 알려주며 만 원짜리 한 장만 집어 주인에게 주었다. 그리고 거스름돈을 받아 모녀에게 건넸다. 두 모녀의 얼굴이 화사하게 변하고 딸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때 아까 화장품을 샀는데 쇼핑백을 화장품 가게에 두고 왔다면서 울먹거렸다. 나는 혹시 그 가게 위치를 아느냐고 물었다. 어렴풋이 알 것 같다면서 나에게 화장품 가게에 가서 통역을 좀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분식집에서 나와 직진으로만 가면 되는 길이라서 화장품 가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가게 주인이 쇼핑백을 챙겨 놓았다. 모녀는 안도의 표정을 드러내며 연신 고마워했다. 딸은 카페에 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자며 내 팔을 끌어당겼다. 시장을 벗어나 큰길가로 나갔다. 새로 생긴 카페가 많았다. 모녀는 커피 종류가 다양하다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국은 커피보다 차 문화가 발달했지만, 요즘은 커피의 판매량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할머니도 커피를 주문했다. 할머니가 몇 년 전에 남포동에 왔다가 은행나무가 많은 공원에 갔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더 가고 싶은데 공원의 이름도 모르고 가는 길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용두산 공원을 말하는 것 같았다.
집이 가까워 어릴 적 자주 가던 공원이었다. 길가에 늘어섰던 무성한 은행나무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나도 오랜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녀와 합류하기로 했다. 테크로 된 산책로를 걸었다. 길옆에는 부산 타워에 대한 설명과 용두산 공원의 유래가 적혀 있어서 모녀에게 소개해 줄 수 있어 정말 보람된 시간이었다. 용두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울창한 나무들이 장관이었다. 할머니가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계단을 두고 평평한 길을 선택했다. 다이아몬드 타워 전망대에 올라가서 360도 부산항을 감상하였다. 밤에 오면 조명이 아름다워 운치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모녀의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부산항이 아름답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꽃시계 앞에서 우리 세 사람은 사진을 찍었다. 꽃시계를 보며 신기해했다.
공원 가는 길을 몰라 이렇게 오게 될 줄 몰랐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내 손을 잡았다. 스마트 폰에 용두산 공원을 중국어로 저장하면서 다음번 한국 여행 때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꼭 다시 오겠다고 했다.
모녀의 집이 칭다오에서 가까운 ‘위하이’ 라고 했다. 위하이는 칭다오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지만, 중국의 넓은 땅에 비해선 근거리에 속했다. 딸은 내 연락처를 물었다. 가끔 한국에 오면 연락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다시 만나길 바란다며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나도 모처럼 중국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옛 생각도 나고 즐거웠다. 잘 알던 이웃처럼 정겨웠다.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밀려왔다. 오늘은 근처 숙소에서 자고 내일 첫 비행기로 중국에 가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할머니의 딸과 톡으로 종종 안부를 주고 받았다. 자갈치 시장의 사진과 깡통 시장, 보수동의 헌책방 골목의 사진을 톡으로 보내주었다. 조만간에 다시 찾겠다며 다이아몬드의 야경과 자갈치 시장에 꼭 가보고 싶다는 답이 왔다.
모녀는 그때 중국으로 들어가서 아직 한국에 다녀가지는 못했지만, 택배로 보이차를 두 번이나 보내주었다. 딸의 오빠가 보이차를 재배한다고 했다. 인연의 정이 더해서인지 차의 맛이 혀끝에 오래 맴돌았다. 언젠가는 모녀와 함께 다이아몬드의 야경을 보고, 자갈치 시장에도 갈 그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