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유학생활

프라하의 가을

by 박민희

비행기가 루지네 공항에 도착했다

긴 비행시간을 마치고 도착한 루지네 공항은 이제 막 가을의 시작에 들어섰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만 오던 프라하를 가을에 오기는 처음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대기실로 나오니 재림이가 한쪽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비행기가 많이 연착해서 기다림에 지쳐 있었다. 비행기가 갑자기 독일 드레스덴으로 넘어가

임시 착륙해서 2시간 동안을 비행기 안에서

대기해야 했다.

영문을 몰라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들을 붙잡고 이유를 물어도 명확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루지네 공항에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고만 말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여기서 내려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가야 하나.... 이미 12시간 넘게 비행기 안에 갇혀 있어서 초조하고 불안했다. 재림이 와도 연락이 안 되어 서로가 초조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드디어 음료수를 한잔씩 돌리고 난 후 다시 프라하로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무사히 프라하로 가길 바랬다


두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루지네 공항에 도착했다. 모두들 파김치가 되었지만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자 일제히 박수를 쳤다.

러시아 비행기를 탔을 때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면 승객들이 항상 박수를 쳤는데 프라하로 오는 비행기에서 박수를 치기는 처음이다.


도착해서 보니 루지네 공항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우리 바로 앞 비행기가 착륙 과정에서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나서 우리 비행기가 착륙허가를 못 받고 상공을 배회하다 결국 독일 드레스덴에 임시 착륙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대기하는 재림이도 알 수가 없어 서로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어쨋던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왔지만 재림이도 공항에서 4시간 이상 기다리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유학 5년 차

살은 더 빠졌고 핼쑥한 모습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머리는 길어서 엉클어져 있고 청바지는 헐렁헐렁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조용했다. 유학생활이 많이 힘든지 말수도 줄고 알 수 없는 침묵에 쌓여 있었다. 시내로 들어와서 뭐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니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짐도 무거워 일단 집으로 가서 가져 간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었다 녀석은 엉뚱하게도 한국에서 먹던 순대국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평소 즐겨가던 국밥집에 부탁해 순대와 고기 국물을 주문해 냉동을 시켜서 왔다.


냉동된 음식을 가져오며 행여 상할까 봐 걱정했는데 비행기가 4시간 이상 연착되어 더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풀어보니 약간 녹기는 했지만 거의 그대로여서 다행이었다


재림이는 순대를 보자 상글벙글하다.

순대국밥을 한 그릇 먹고 나니 아이의 얼굴이 좀 화색이 돈다.


공부하느라 바쁜지 구석구석 치워야 할 것들 뿐이다. 빨래도 한가득이고 설거지할 그릇도

싱크대에 수북이 쌓여있다

학교에서 바로 공항에 가느라 치울 시간이 없었다고 열심히 변명을 늘어놓는 아이를

보며 청소부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쌓인 설거지거리가 아니었다.


긴 비행시간과 독일까지 가서 조마조마하며

온지라 힘들었지만 대한민국의 엄마가 또 이 정도에 무너지랴....

팔 걷어 부치고 청소하고 짐 정리하고나

어느덧 밤이 깊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내일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를 생각해서 일단은 자야 할 것 같다.

연습을 하다 잠든 아이를 보며 나도 스르르 눈이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