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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Feb 02. 2021

스타트업 공동 창업자 생각풀기

스타트업 #거듭된 실패를 겪으면서


 오늘도 미팅을 끝낸 순간 거대한 산이 내 앞에 '우뚝'섰다. 미팅 장소 한 발자국 벗어나는 순간 나를 둘러싼 그 산들이 갑자기 다리를 몸속에서 꺼내더니 내게 달려왔다. (마치 위에처럼 긴 팔다리를 숨기다, 어느 순간 팔다리를 갑자기 쏙쏙 빼고 달려오는 거처럼 말이다.) 점점 좁아지는 나의 '공간'을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 압박감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생각하게 됐다. 정작 창작자랑 무엇을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밀고, 내뱉고, 내던지면 되는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만이 맴돌 뿐이었다.


 솔직히 오늘 있던 일을 말하자면 우리는 창작자의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그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였다. 요컨대 우리가 지금 하는 사업에 관하여 협업 대상자인 창작자에게 '방법론'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창작자한테 의문을 만들어준 셈이다.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서 시원하게 만들어 줬어야 했는데, 간지러운 부분 대신 다른 곳을 긁어준 꼴이다. 결국 한 군데는 간지럽고, 다른 곳은 거북스러워진다. 그리고 두 개가 합치면 '기존의 문제 +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면서 신뢰는 저하되고, 창작자는 떠나게 된다.


 처음부터 우릴 만나기 전에 '고민'을 가지고 왔을 텐데, 그 고민에 우리는 다른 고민을 얹어준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어서 미간에 주름을 하나 더해준 셈이다. 즉, 창작자에게 쓸데없는 짓을 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 만난 창작자분에게 정말 미안했다. 무엇하나 제대로 된 답변을 내주지 못했고, 허황되고 추상적인 답변만을 내줬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우리가 설명하는 와중에 창작자가 "너무 추상적"이라는 말을 내뱉게 만들었다. 


 그 말을 했다는 것 자체로 우리는 실패했다. 설득을 실패했고, 검증도 실패했으며, 근거를 들이밀 수단 조차 없이 이야기했다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실패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와중이라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비겁한 핑계를 대본다.


 사실 도와달라는 측면에서 '이렇게 이렇게 같이 해봐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도 있다. 오늘 미팅한 창작자분은 나름 유명하신 분이라, 바쁜 와중에 시간을 할애하기에 리스크가 큰 측면이 있다. 그래서 검증된 일을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셨을 것이다.


 우리 또한 '확실하게'(10000000000%) 확신을 가지고 "될 거예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우리가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오늘은 괜히 창작자분의 시간을 빼앗은 것은 아닌지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도 많이 들었다.


 오늘은 정말 많이 깨달았다. '우리는 부족하다. 또 부족하다. 그리고 부족하다.' 부족하다는 말을 열 번 외쳐도 부족하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부족하다.' 그러니 앞으로 더 성장하고, 자라나고, 커져서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에 대한 명확한 답을 달아줄 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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