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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Nov 19. 2021

내 눈을 바라봐줘요.

단편 #1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루시드폴 <고등어>


가난한 자의 선택을 기다리면서 적당히 눈을 피해  줄도 모르는 고등어라니.  말갛고 무안한 구멍이라니. 영아는 노랫말을 듣기 전까지  구워 지글거리는 기름과 탄탄한 살코기가 자기 취향인 줄로 알았다. 장에 가면 고등어를 자신 있게 집어 올렸다. 음식으로 기억되는 사랑의 증거였는데, 노래를 듣자니 우린 그 때 가난했을까? 영아는 가난한 자의 것이 되어버리는 눈맞춤을 피하려고 괜히 입술을 씰룩거려 보았다. 그렇게 해도, 부푼 건지 깊은 건지 모를 검푸른 동그라미 잔상으로 또르르 빠지고 만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헤엄을 친다. 나는 바다를 가르기보다는 동류의 떼에 머무르기 위해 달린다. 그래서 정지한 느낌을 유지한다. 양옆의 무리와 눈을 맞춘다. 우리 눈길이 서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내가 바다를 달린다는 증거다. 나는 어쩐지 비늘을 잃은 물고기다. 소리를 듣고 바다를 느낄 날 선 비늘 대신 미끄덩한 표면이 남았다. 대신 무리를 이룬다. 무리가 감각하는 대로 나아가는 대로 집어등을 향해. 나의 비늘은 고등어 떼라서.     


지글지글 고등어 꼬름한 굴비. 고등어, 굴비, 고등어, 굴비. 영아의 아버지는 서울 큰 회사에서 굴비의 고장 영광으로 파견된 관리직이었다. 허허벌판에 오도카니 들어선 사택에서 영아의 가족은 저녁마다 고등어와 굴비를 번갈아 구웠다. 그건 월급 뇌물 월급 뇌물이었을까. 우린 가난했던 걸까? 영아의 아버지는 어려서 상경을 했다. 그 시절의 서울살이는 성취를 안겨줬다. 우연이었거나 운명이었던 조건들이 아버지의 발화를 거치면 선택인 것처럼 들렸다. 아버지가 자신의 연봉과 직위를 얘기할 때면 목소리에 열기가 실렸다. 어울리는 사람들의 직함을 나열할 때도 그랬다. 우리는 잘 사는 축에 속하고, 너희를 남 부럽지 않게 키웠고, 우리쯤 되는 혼처를 얻게 될 거란 말들을 희미하게 얹었다. 


영아의 친구 시연이 봄에 제주로 내려왔었다. “ 다른  필요 없고 공항 가기 전에 갈치나 려고.” 갈치나 사면 족하다던 시연은 천방지축 다섯  아들을 챙기느라 편의점 젤리를 사기에도 벅찼다.  시연이 수술을 받고 누웠단다.  수술을 했는지 설명도 않고 의사 말대로 간단할  알았는데 막상 받아보니 간단하진 않더라고 허허 웃었다. 영아는 수술에 대해선 아는  없고 시연으로부터 자세한 얘기도 듣지 못했지만   아는 어른이 되고 었다. 그래서 “, 알았어.” 하고 전화를 맺었다. 시연은 만삭이었을  좋은 데서 밥을  준다고 영아를 서울로 불러냈다. 시연이 친정엄마를 잃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 찰밥이 먹고 싶어. 오곡 넣어  맞게 지은 찰밥 있지? 그게  먹고 싶어.” 시연은 늘 맛에 민감했다. 그래서 혀에 고인 군침이 유난히  음식을 뾰족하게 가리킨다던 내용을 영아는 평범하게 듣고 말았다. 광화문에서 파스타와 샐러드를 먹으며 집에서 지은 찰밥 얘기를 했는데도. 그날 새벽 시연은 아이를 낳았다.     


아저씨, 갈치 얼마에요? 제일  거로요. 생물로 서울에 가요?” 영아는 제주에 살아도 오일장 상인 앞에서는 도민인 체를  하는데 또박또박 표준어 때문만은 아니다. 성난  시시각각 색을 바꾸고 바람을 무시로 뱉어내는 바다 앞에 생선 궤짝  개로 진을  어른한테는 아는 체 흥정을 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영아가 언제나 가도 사장님은 언제나 기억을  하고 여행객으로만 보이는 관계가 좋았. 시연에게 보낼 갈치가 스티로폼 박스에 담기는  확인하고 좌판 위를 흘깃했다. 서울 보낼 제일  갈치를 고른 손님이라 그런가, 여자 사장님은 부채꼴로 가지런히 펼쳐 놓은 옥돔만을 얼음 위에 펄럭. “키로에 5만원. 옥돔을 사셔야지.” 영아는 바다에서  건진 옥돔이 저렇게 생겼는  처음 안다.     


나는 옥같이 깎은 곧은 이마로 바다를 주시한다. 맑고 날카로운 비늘이 알알이 곤두섰다 눕는다. 등줄기 가시들을 돛대처럼 세우고 비늘로 바다를 읽는다. 몸을 둘러싼 모든 감각에 고르게 집중한다. 바다 꼭대기로부터 줄이 내려와 머문다. 소금에 절여 짙어진 양분의 냄새가 바닥에 깔린다. 


영아는 밥상에서 만난 기억이 없는 생선 앞에서 ‘옥돔은 무슨,’ 하고 한 발을 이미 통로로 내디뎠다. 남자 사장님은 앞 손님의 생선을 토막치느라 어깨를 구부정히 들썩였는데, 살짝 든 고개로도 영아의 눈만은 정확히 잡았다. “제사에 옥돔 없으면 안 되지. 제주는 옥돔. 산모 주는 귀한 거.” 200m 바다 아래 드리운 냄새에 무심한 옥돔 한 마리 잡아채고픈 어부의 동작인가. 목소리가 작고 여린 부인과 힘을 합쳐 옥돔을 낚는 건가. 영아는 제사에 오른 옥돔도 산모 주는 옥돔도 본 적이 없어서 말을 받지 못했다. 여자 사장님은 가만히 영아를 쳐다보는데 영아의 지갑이 열리기만 하면 보탤 말이 반드시 있는 것 같은 몸짓이다. 어린 영아가 한 번도 따라가 볼 수 없었던 출근한 아버지의 손이 쑤욱 나와 옥돔을 만진다. 성량은 없지만 단정한 목소리로 키로에 5만 원이라고 말한다. 아릿줄을 벗어나는 손님을 향해 귀한 거라고 팔면서도 앞 손님을 실망시킬까 정확한 칼질을 쉬지 않는다. 옥돔의 눈도 동그랗다. 낚시바늘 100개에 한두 마리 걸린다는 옥돔을 기다리다 빠꼼해진 어부의 눈을 닮고 죽어버렸나. 얘도 눈을 감을 줄을 모른다.


영아는 옥돔  마리를 담은 검정 봉다리를 덜렁덜렁 흔들며 걸었다. 진동에 맞춰 ‘ 끓을 , 옥돔 넣고, 그다음에 미역, 마늘은 넣지 말고, 소금만 살짝, 그래야 제주 옥돔  .’ 부인 사장님이 풀어낸 말을 되뇌었다. 귀한 생선을 요리해 먹을 생각에 설레다가  비싼 것을 물에 빠트려 맛만 우려내 먹으라니. 혀끝이 벌써 싱거워서 헛웃음이 났다. 영아는 어쩐지 좌판 뒤에  사장님 부부를 지나 어부를 지나 옥돔을 지나 바다를 지나 고등어를 지나 우리는  산다고 말하던 어쩌면 가난했 아비를 봉지에 담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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