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리뷰

나를 위해 죽은 나들을 위해

by ironiist


* 이 글에는 영화 <미키 17>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조조영화를 봤다. 오전 7시 상영이었는데 관객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는 주로 조조영화나 심야영화를 보기 때문에 그 시간에 영화 보는 사람들이 너무 궁금하다. 그런데 아마 다들 그러지 않을까. 본인도 극장으로 걸어가면서 옆 사람을 흘깃 보며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 시간에 영화를?"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립니다. 저는 '다신 다짐 같은 걸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라는 만화를 그리는 무명의 만화가입니다. <미키 17> 보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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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 17>의 등장인물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사채업자를 피하기 위해 지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급한 마음에 안내문을 꼼꼼히 읽지 않은 미키는 얼음 행성 개척단의 유일한 익스펜더블(소모품)로 합류하게 된다. 익스펜더블은 죽어도 프린트되어 다시 태어나는 인간인데 이 프린트 기술은 그 위험성으로 인해 오직 지구 밖에서만 사용이 허가되어 있다. 개척단은 반불멸(?)의 존재가 된 미키를 행성 탐사를 위한 각종 위험 임무에 무자비하게 투입시킨다. 그렇게 미키n들이 백신 개발, 살상용 가스 개발, 방사능 노출 실험 등에서 희생되고 영화의 주인공 '미키 17'이 프린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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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존재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미키 17>의 차이점은 불멸을 위해 '프린트'라는 기술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훼손된 신체를 복원하여 생명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신체를 새로 제작하고 기존의 기억을 주입하는 이 기술은 관객으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만든다. 미키 16과 미키 17은 같은 사람인가?


얼음 행성의 크리퍼를 홀로 수색하던 미키 17은 크레바스에 추락한다. 그의 죽음이 확실하기에 개척단은 미키 18을 프린트하지만 미키 17은 크리퍼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돌아온다. 일련의 사건 끝에 결국 미키 17과 미키 18을 대면시키며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추가한다. 과거의 당신, 지금의 당신 그리고 미래의 당신은 같은 사람인가?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를 단절하고 자신을 타자화하였을 경우 이런저런 철학적 고민들이 따라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키 17>은 오직 단 한 가지만 고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건 가장 중요한 고민일 것이다.


영화에서 미키가 반복해서 받는 질문이 있다.

"죽는 기분은 어때?"

미키 17은 항상 두렵다고 대답한다. 설사 부활이 예정되어 있더라도 그 죽음은 항상 두려운 것이다. 그 두려움을 감내한 과거의 미키들 덕분에 미키 17이 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미키 17 대신 희생하는 미키 18이 있다. 미키를 위해 죽은 '미키들'이 있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다 보면 과거의 나는 질책의 대상이고 미래의 나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 쉽다. 만일 우리 셋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그건 그대로 지옥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삶을 공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화해하지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증오하거나 경계해선 안된다. 그들은 지금의 나를 위해 죽었고 죽을 수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익스펜더블 제도가 폐지되어 행성에서 프린트 기술은 사라지게 된다. 최후의 미키가 된 미키 17은 행복해지기로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미키들 그리고 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올 수도 있었을 미키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몇 번을 죽었을까.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가만히 손가락을 접어보았다. 거기에서 한 번, 그때도 한 번, 최근에도 한 번. 대략 '골라미 38' 정도 되지 않을까. 그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때 죽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 행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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