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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l 09. 2021

안할 수가 없어서

안할 수가 없어서


2021. 5. 16. 일. 비.


인스타그램에 “다신 다짐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를 올린지 4개월 정도 되었다. 현재 15개의 게시물을 올렸으니까 주 1회 꼴로 올린 셈이다.  팔로워 수는 114명. 내가 팔로잉 한 사람은 그보다 많습니다만. 내가 만든 콘텐츠를 114명이 본다는 것은 꽤나 신기한 일이다. 그 중에서 끝까지 보는 사람은 훨씬 적을테니 만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어쨌든 4차 산업혁명이라든지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라든지 하는 것들은 나에게는 꿈을 이루게 해줬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 중국 작가가 쓴 에세이에서 어린시절 처음 새 공책을 받았을 때의 설렘을 읽은 적이 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새 공책은 아니고 컴퓨터의 ‘그림판’을 처음 만났을 때다. 내 기억에 초등학교 5학년 쯤 됐을 듯 한데 사촌형이 열어준 그림판의 세계는 그야말로 나를 사로잡았다. 마우스를 움직이면 거기에 따라서 화면에 그림이 그려지고 색이 칠해지는 모습은 스프링연습장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오던 내게 다가온 신세계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촌 형 의자에서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여대던 내 모습이 선명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이 기억은 당연히 조작이다. 내가 나를 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강렬한 기억은 항상 우리의 머리 속에서 영화가 된다.



그리고 그 설렘은 이내 실망과 막막함으로 변했는데 마우스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내 생각대로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잘 봐줘야 4~5세의 아이들이 그리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선들을 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그 이후로는 그림판을 열어도 그림을 그려보려고 시도한 적은 없었다. 글씨만 써보는 정도였는데 그건 왠지 맥이 빠지는 일이었다. 글판이 아니라 그림판이니까.


하지만 이젠 기술의 발달로 화면에 내가 원하는 선을 그릴 수 있다. ‘필압까지 감지하여 선의 굵기나 농도를 표현할 수 있으니 이건 정말 멋진 신세계군요. 그렇다면 역시 안할 수가 없겠는걸.’ 이라는 마음을  줄곧 마음에 담고 있었다. 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영화)를 어려서부터 정말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삶에서 가장 바쁘고 게으르며 열정적이고 나태한 나이를 보내며 역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해봤자 될 것 같지도 않았고 굳이 삶을 바꾸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문득 시간을 들여 세상을 찬찬히 살펴보니 꿈을 이룰 수 있는 세계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부족한 점을 기술로 보완하는 세계가 되어버렸는데 더 이상 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안 할 수가 없겠는걸.”이었다.

그래서 2021년 1월부터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실력도 부족하고 구체적인 컨셉도 없고 뚜렷한 목표도 없었지만 안할 수가 없어서. 



읽고 있는 책 : 린 스타트업(에릭 리스), FREE WORKERS(모빌스그룹), 무라카미T(무라카미 하루키)

듣고 있는 노래 : 한 걸음 더, 당신이에요(원슈타인)

마시고 있는 것 : 에스프레소(라바짜), 자몽허니블랙티(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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