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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n 04. 2024

전국노래자랑 관람기

사소한 환상의 실현

2023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8분. 


  약 두 시간 반 뒤 '국내 최장수 예능 프로그램'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믿기지 않는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1,500석의 빈 플라스틱 의자들이 잠시 후 남김없이 채워진다는 사실이. 그리고 한 번도 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적 없는(게다가 이 지역 주민도 아닌) 내가 이 자리에 와 있다는 사실이. 


  '전국노래자랑 : 서대문구 편'의 공고를 본 것은 9월 말이었다. 공고를 보자마자 녹화 일시 및 장소를 확인했다. '10월 24일 오후 2시, 서대문 독립문공원 특설무대'. 나는 스스로 의아할 정도로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갑작스럽게 그런 확신이 든 이유가 궁금했지만 '가보면 알겠지'라고 대충 모른척하며 녹화일을 기다렸다. 문득 생각날 때마다 '내가 전국노래자랑을 보러 간다'라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의자가 이렇게나 많습니다

시간을 돌려 오전 10시. 


  녹화 시작까지는 아직 4시간이 남아있었지만 사전 답사(를 할 만큼 중요할 일인가) 겸 산책을 나갔다. 절정은 아니지만 가로수에는 단풍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완연한 가을임을 알려주었다. 이래서 10월에 행사를 많이 하나보다는 생각을 하며 독립문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공원이 가까워지자 음향 점검 중임을 알리는 큰 음악소리가 들려왔고 멀리 무대의 모습이 보였다. 왠지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 공원으로 들어서니 전체적인 행사장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대는 독립문공원 잔디밭 광장에 위치한 '송재 서재필 선생상' 우측에(관중석에서 바라보았을 때) 설치되어 있었다. TV 화면을 통해서만 보던 알록달록한 백월이 중앙에 설치되어 있었고 무대 오른편에는 악단이 리허설 중이었다. 악단은 13명 정도로 보였는데 아직은 사복 차림이었다. 건반, 기타, 드럼, 색소폰, 트롬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악단에 대해 국민들은 'KBS 방송 금지곡 빼고는 다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송재 서재필 선생상' 앞으로 설치된 몽골텐트 두 동에는 이날의 참가자이자 예선 통과자들이 모여있었다. 마치 운동회의 이어달리기 출전 선수들처럼 상기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모든 행사는 앞면만큼 뒷면이 재미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무대 뒤 장치, 주차 관리 방식, 참가자 동선 등을 눈에 띄는 대로 확인하다 보면 기획한 사람들의 고민, 스트레스, 행정 편의주의, 만성적인 화장실의 부족함 같은 것들을 실감할 수 있다(스태프들의 행동으로 파악되는 전문성(가령 얼마나 지루함과 무료함을 타인에게 들키지 않는가 등)을 통해 행사의 성패도 대략 예측 가능하다). 행사 앞면에 대한 파악을 끝내고 무대 뒤쪽으로 걸어갔는데 생각보다 경계가 엄중해서 약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서대문구 행사에 참석한 종로구민이라는 나의 신분이 불필요한 긴장을 강화시켰다). 자연스럽게 공원을 산책하는 척하며 곁눈질로 바라본 무대 뒤편에는 길게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그 안쪽에 스태프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초대가수들의 대기실도 이쪽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초대가수들에게 큰 흥미가 없었다. 


  지역 축제와 연계하면 전국노래자랑이 축제의 일부로 편성되어 훨씬 흥겨운 그림이 나오는 듯한데 오늘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렇게 행사장과 준비 공간만 설치되어 있다. 덕분에 '이 행사는 이후 TV에서 방송될 프로그램을 위한 것', 다시 말해 오늘 보이는 것보다 TV를 통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행은 더욱 매끄러워야 하고 카메라에 잡히는 모든 사람들은 과장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모든 것들처럼. 행사장 배치를 통해 그런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11시 38분.


  행사장으로 돌아와보니 무대에서는 참가자들의 리허설이 진행 중이었다. 사회자 김신영 씨도 무대에서 참가자들의 리허설을 돕고 있다.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며 조금씩 조금씩 무대 앞쪽으로 전진했다. 무대 바로 앞 세 줄은 출연자 가족 그리고 심사위원석이다. 관중은 그 뒤에서부터 앉을 수 있었다. 무대와 그렇게 멀지도 않고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을 듯한 열 번째 줄 가장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 정도면 무난한 위치 선정이라고 만족했지만 그때는 정말 몰랐다. 이 자리가 그렇게 뜨거운 자리일 줄은.

관람석 곳곳에는 안전요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검은색 옷에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요원들은 이 흥겨운 행사에 가장 이질적인 존재지만 가장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실제로 말을 붙여본 결과 그들의 친절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종로구민 신분인 나는 이들의 말을 잘 따르기로 했다).


11시 50분.


  모든 참가자들의 리허설이 종료되었다. 덩치가 크고 검은 옷에 검은색 마스크를 쓴 연출자가 마이크를 잡고 행사 관련 당부 및 공지사항을 이야기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열렬한 환호와 박수 요청

- 사진 및 동영상 촬영 금지

-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으니 관람 중 신체 이상이 있을 경우 안전요원에게 알릴 것 

- 방송은 2024년 1월 예정

요즘 같은 불확정성 시대에 3개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방송 편성을 그렇게 늦게 해놓았느냐하고 항의하고 싶었지만(겨울에는 야외촬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날씨에 많이 찍어두었다가 겨울에 방송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이 곰 같은 사람이 안전요원들의 두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 당부사항도 잘 따르기로 결심했다.  


11시 55분.


  대각선 앞쪽에 앉아 있는 사람의 빨간 재킷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유난히 빨간 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왼쪽에 앉은 중년 남성과 여성도 모두 빨간 바람막이를 입고 있다. 고개를 돌리니 이번에는 빨간 과잠바(야구점퍼)가 시야를 사로잡는다. 점퍼의 등 쪽에는 몇 가지 글자가 수놓아져 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의 단서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고 믿으며 글자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JIYUN 

 since 19950303



  내가 아는 바로는 지윤대학교라는 곳은 없고 과잠바에 개교 날짜까지 오버로크 치는 경우가 드물기에 이 단서만으로는 현재 상황이 충분히 해석되지 않았다. 그때 과잠바의 주인공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가로로 긴 무언가를 꺼내들었고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트롯바비_홍지윤 팬카페 윤짱지구대'. 

비로소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나는 가수 홍지윤 씨의 팬카페 회원들 속에 알박기를 하고 있었다.


12시 30분.


  내 무릎 위에도 앞의 그 플래카드가 얹어져 있다. 자리를 옮겨야 하나 그냥 있어야 하나(이 갈등은 윤짱지구대원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는 이타적인 마음에서 기인한다) 고민하던 나는 공연장 뒤쪽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남은 자리가 없음을 깨닫고 일일 윤짱지구대원이 되기로 한다.


12시 50분.


  악단이 무대 위에 오르고 초대가수들을 위한 리허설이 진행된다. 초대가수들은 등장하지 않고 댄스팀, 코러스 팀만 동선을 체크하고 합을 맞춘다. 내 주위의 윤짱지구대원들은 저들 중 누가 홍지윤 씨(팬들은 우리 가수님이라는 표현을 쓴다)의 크루들인 줄 알고 있는 듯하다. 


13시 00분.


  내내 비어있던 오른쪽 옆자리에 내 또래 남성이 앉았다. 아무래도 관람객의 연령층이 비교적 높은 프로그램이다 보니 나는 젊은 축에 속했는데 비슷한 연령의 사람을 발견하니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한편으로는 먼저 온 자로서 이 좌석이 어떤 좌석인지 설명해 줘야 하나 고민이 들었는데 그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가수님, 리허설 끝났어요?".


13시 05분.


내 무릎 위에는 홍지윤 팬카페에서 나눠준 빨간색 풍선도 올려져 있다. 


13시 10분.


  팬카페 시삽이 카페 회원들에게 김밥을 나눠주다가 내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한 그녀에게 미리 사양의 말을 건넸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녀는 분명 나에게도 김밥을 주었을 것이다. 30분 남짓 경험해 본 윤짱지구대는 꽤 넉넉하고 화목했기 때문이다.

출연자 가족석 뒤로는 이렇게 초대가수들의 많은 팬들이 일찍 와서 자리를 맡고 있었다. 때문에 다른 가수들의 팬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플래카드와 풍선을 들고 있었는데 '일일윤짱지구대원'으로서 다른 초대가수들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겠다(별도로 그들의 축하무대에 내가 느낀 놀라움은 적어두고 싶다). 


13시 50분. 


  거짓말처럼 좌석이 거의 다 찼다. 무대 오른쪽에 김신영 씨의 모습이 보이자 관중들이 웅성거린다. 여기저기서 '신영이, 신영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대중에게 인정받는 사회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겠지만 무대는 김신영 씨의 노래로 시작한다. 수많은 청중을 앞에 두고 아마추어 출연자들을 독려하며 이 프로그램을 끌어가는 것은 예능인으로서 최상급 재능과 실력을 갖춘 그녀에게도 상당히 긴장되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묵직한 존재감으로 현장의 모든 사람에게 안정감을 심어주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이 새로웠다.


14시.


  전국노래자랑의 시그널 음악과 함께 드디어 녹화가 시작되었다. 이 음악을 직접 들으니 놀랍게도 전율이 느껴지며 조금 흥분이 되었는데 이건 단지 직관이 가져다주는 일반적인 효과만은 아니었다.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오는 것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었다. 


어린 시절 많이 부르던 동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에는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모습'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노래를 부를 때 내 심상 속 무대는 언제나 '전국노래자랑'의 무대였다. 비록 선천적인 음악적 재능의 부재와 카메라 앞에만 서면 얼굴과 몸이 굳어버리는 증상으로 인해 동요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국노래자랑'의 무대는 내 어린 시절 꿈의 무대였고 그 기억이 내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시그널 음악을 직접 듣자 그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결국 내가 이 무대 앞에 앉아 있게 된 이유는 오래전에 존재했던, 심지어 갈망했던 어떤 것을 직접 만나는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단순히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향수가 아니라 'TV를 통해서만 보던 꿈의 무대를 어른이 되어 직접 관람한다'라는 사소한 환상을 나는 이루고 싶었다. '창작자'라는 불가능, 불확정의 영역을 생애 처음으로 걸어가며 두려움과 불안을 키워가는 나에게 '환상이 실현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전국노래자랑' 공고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라고 하면 좀 지나친 것일까. 하지만 쿨하게 '전국노래자랑이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건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주위에 있는 윤짱지구대처럼 나에게도 이곳에 온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고맙게도 40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온 이 프로그램의 생명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휘발되어 버리는 현대 사회에서 이 생명력은 유니콘 같은 것이어서 그 힘을 직접 느끼는 것만으로도 창작자로서의 내 앞길이 전보다 조금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무대는 시작되었고 녹화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방송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이 부분에 대해 제작진은 참가자들에게 무한의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가자들 덕분에 1월 방송에는 큰 차질이 없어 보인다. 무대에서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앉아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바리케이드 밖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TV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 한때 청년이었던 사람들이 노년이 된 지금 '전국노래자랑'을 즐기듯, 지금 청년들이 40년 후 '전국노래자랑'을 보게 될까.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처럼 사소한 환상을 실현시킬 수도 있을 테니. 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드디어 무대에 등장한 트롯바비를 응원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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