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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n 04. 2024

라디오천국

2023. 7. 29.


  꽤 오래전부터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잔다. 누운 건 기억이 나는데 잠든 건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은 머리가 베개에 닿기도 전에 자는 것 같다. 농담이다. 아무튼 나에게 수면은 혼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수면 습관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만큼 뇌가 쉬지를 못해서 빠르게 휴식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컴퓨터를 강제 종료하는 것처럼. 하루 종일 정보, 자극 속에서 허우적대는 현대인으로서는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잠이 이렇게까지 빨리 드는 편은 아니었다.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뜨면 눈은 곧 어둠에 적응하였고 그 어둠 속에서 천장 벽지의 무늬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그 상태로 가만히 한곳을 응시하고 있으면 묘하게도 눈이 다시 점점 어두워져 내가 지금 눈을 감아서 어두운 건지, 아니면 적응시(適應視) 효과가 풀려서 그런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렇게 학생 본분에 어울리지 않게 뇌가 많이 쉬고 있던 나는 지금과 달리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이리저리 뒤척이곤 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 때는 늘 워크맨과 이어폰을 찾아 라디오나 음악을 들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조용한 밤. 눈을 감고 이어폰을 통해 듣는 라디오는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을 주곤 했는데 라디오에서 들리는 잡음 중 일부는 우주배경복사일 수도 있다고 하니 꼭 틀린 감상만은 아닌 듯하다. 그때 들려오던 모든 소리는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외국어학원, 무선인터넷, 삐삐 인사말 등을 홍보하던 CM들까지도.


  라디오 DJ의 중저음 목소리, 밤 시간대에 어울리는 선곡들, 여전히 조용한 이어폰 바깥의 세계. 이 3요소를 갖춘 라디오의 시간은 이불 속에서 친구의 비밀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특별했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이어폰은 거친 잠버릇으로 인해 워크맨과 분리된 채 저 멀리 내팽개쳐져 있었고 그 밤의 시간과 느낌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채 나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아마 이런 나를 부모님은 꽤 한심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잠이 안 오면 책을 봐야지라고 생각하시며.

  

  그러한 마법 같은 시간은 대학교 입학 후 늦은 밤까지 유의미하지만 무익한 활동들을 하며 사라져버렸고 이제는 라디오를 들어도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나지 않는다. 라디오라는 매체의 성격이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의 내 안에는 라디오와 조응하는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능력이지만 라디오로 인해 흔들리던 내 마음의 진폭은 늘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라디오를 찾아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면서 나의 감수성이란 것이 결정되었다. 나는 앞으로 세상을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터였다. 그리고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분명 각자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키워나가고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늘 궁금하다. 가끔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그 소중한 시간들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묻고 싶지만 솔직히 어떻게 질문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마 자신들도 모르게 그것들을 만들어가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회가 있다면 들어보고 싶다. 단 한 사람도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하는 '세대론'은 이제 정말 듣고 싶지 않기에.


              지금 읽고 있는 것 : 기 드 모파상 단편선,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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