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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n 04. 2024

고수와 나

2023.6.19.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내가 못먹는 음식은 다섯 개인데 고수, 샹차이, 실란트로, 코리앤더, 라우텀이다(앞으로 만나게 될 언어에 따라서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안다. 이 고수, 샹차이, 실란트로, 코리앤더, 라우텀(이하 고수)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사족을 못쓸만큼 좋아한다는 것을. 실제로 목격한 적도 있다. 몇 년 전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동행이 음식에 들어 있는 것도 모자라(모자랄 수 있다는 것부터 놀라운데) 주방에 따로 주문 후 접시에 수북히 담겨진(마치 베트남 음식점에서 숙주나물을 접시에 쌓아 놓은 것처럼) 고수 뭉치를 생으로 먹는 모습을 봤다. 당시 나에게는 산낙지를 생으로 먹는 걸 보는 것보다도 충격적이었다(물론 존중의 의미로 내색하진 않았다). 내가 왜 고수를 먹지 못하는지 설명하지는 않겠다. 설명하면 할수록 고수 예찬론자들에게 비웃음을 살테니. 


  또 안다. 이 향신료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먹지 못하는 사람을 얼마나 업신 여기는지. 지금도 베트남 음식점에서는 단지 고수를 못 먹는다는 이유로 은근 무시당하는 서울대생, 국회의원, CEO, 백만 유튜버 등등을 (어쩌면)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향신료가 제법 글로벌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G7 정상회의 점심 메뉴로 쌀국수가 나오면 고수를 못 먹는 정상이 은근히 무시당하는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하는 걱정도 든다('고수도 못 먹는 주제에 무슨 팹리스를 논하겠다고...'라든가). 그렇다면 이건 꽤 큰일이지 싶다. 


  내가 하나 더 아는 것은 만일 고수 좀 한다는 고수 신도들에게 전도되어 눈 딱감고 몇 번만 먹는다면 나 역시 이 향신료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수 먹기를 거부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음식에 소량으로 들어간 고수의 맛을 느낄 때 여전히 온몸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조금은 다행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싫은 것이 좋아지는 것. 이 역전 현상을 나는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싫은 것이 좋아지는 것이 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선입견, 편견을 극복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와 고수의 관계는 선입견, 편견과는 다른 문제다. 고수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편견 없이 대하며 따뜻하게 씹어주었고 그 결과 나와 맞지 않음을 강렬하게 확인하였다. 내 오리지널리티 중 하나는 '고수를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 오리지널리티를 잃고 싶지 않다('고수하고 싶다'라고 쓰려다 지웠다).


  어떤 싫어하는 것들은 언제까지나 싫은 것 그대로 두고 싶다. 이 말이 어리광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자의에 의해서가 아닌 반복, 학습, 주입, 유혹, 중독 등에 의해 싫은 것이 좋아지는 역전 현상(흔히 극복했다고 표현한다)을 경험할 때마다 내 정체성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든다.


  '고수 먹는 것 하나 가지고 (고수도 못 먹는 주제에) 말이 너무 길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가 지금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상당 수가 실은 내가 싫어했던 혹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어떤 계기가 있어서 '나는 원래 이런 것을 좋아한다'고 믿게 만들었다면? 그 결과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 놓은 목록 중에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려낼 수 없게 되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오리지널리티와 관계 없는 것들이 그 사람의 목록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


  쏟아져 나오는 미디어 정보(연예인 및 셀럽들이 상품을 그럴싸하게 만들어주는 광고 포함)와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상품들 앞에서 우리는 질식하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것들의 집요하고 적확한 공격 앞에서 오리지널리티는 점점 자리를 빼앗긴다(알고리즘 덕분에 타율이 점점 더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를 점점 잠식해 나간다. 어쩌면 인스타그램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때 자신도 모르게 이미지를 정방형으로 표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모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늘 우리를 개조시키는 첨단 기술의 문물들은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먹고, 입고, 소비하면서 현대 문명을 제대로 소화한 인간상으로 나아가라.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화불량에 걸린 듯 신문물의 부작용으로 인한 크고 작은 고통들을 안고 있다. 소화불량에는 소화제를 먹는 것보다 당분간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


  최근 체중 조절을 할 필요가 있어서 저녁 식사를 거의 먹지 않고 있다(덕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아침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침을 기다린다니!).  긴 시간 공복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 나름 고생하고 있기에 목표하는 체중에 다다르면 보상으로 맛있는 한끼를 먹기로 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내가 고른 것은 고수를 뺀 양지 쌀국수와 맥주다. 


  '나는 평생을 기만적인 인간으로 살아왔다. 과장하는 거 아니다. 내가 이때껏 한 일이란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우러러보도록 나에 대한 특정한 인상을 심어주려 한 게 다였다' 

                                                                   - 소설 「굿 올드 네온」 중에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읽고 있는 것 :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키), <허클베리핀의 모험>(마크 트웨인), 선물(루이스 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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