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노트북

by 근영

요즘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버릇이 생겼다.

아이랑 놀다가도 이걸 주제로 글을 써볼까? 밥을 하다가도 '음.. 지금 이건 꽤나 감성적인 모먼트인데?'

하는 그런 시답잖은 주제 구상과 사색의 시간이다.


글을 쓰게 된 지는 얼마나 됐다고 이런꼴 이라니, 우습다.

그렇지만 글을 쓰기 전에는 그 시간들은 흘러가는 시간들이었고 심하게 말하자면 죽은 시간들이었는데,

지금 이런 꼴값은 반가울 지경이다.


나는 요 며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에서 집안일하고 점심 먹고 난 후 이 시간, 오후 1시경에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노트북 앞에 앉는 것이 참으로 귀찮고 쓰고 싶은 말도 없고, 자꾸만 지난 슬픈 일들만 생각이 나서 싫다. 굳이 그런 슬픈 일들을 또 구구절절 말하고 떠올리기 싫고...

막상 노트북 앞에 앉으면 늘 그렇듯 혼잣말하듯이 이것도 말했다가 저것도 말했다가 수다쟁이가 되어버린다.

또 쓰다 보면 두서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게 되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를 앞에 둔 기분이다.

그 친구에게 나 이렇게 힘들었고 슬펐고 등등 투정만 부리게 되는데 이러다가 이 친구마저 떠날 것 같다는 걱정은 안 해도 돼서 좋다.


얼마 전에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을 오랜만에 보기도 했지만 내가 사생활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친구들과 서로 근황토크를 하며 얘기를 하는데 친구들에게 내 근황과 감정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그런 시간을 그저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상황과 생각 그리고 감정을 정리할 무언가의 수단이 필요하다.


그 수단을 나는 글쓰기로 정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차분히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며 글을 쓰자. 내 마음 어딘가에서 고장이 났는지 돌아보며 정리하고 나 스스로를 위로할 시간을 갖자.


지난 3년간의 나의 삶은 나에게도 중요하지만 나의 아이에게도 중요했기에,

잊고 싶지만 절대 잊을 수도, 잊으면 안 되는 시기이기에 기록과 정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아기가 걸음마하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나를 위로하기 위한 글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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