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벚꽃 1

by 근영

이 이야기는 사실 가장 하기 싫었던 이야기 중 하나이다.

피하고 싶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이야기도 할 수 없을 것이기에 담담히 꺼내어 본다.


벚꽃


설레는 봄의 시작을 상징하는 벚꽃은 우리 가족에게는 눈물의 시작과 끝이다.

'끝'이라고 하면서 마침표를 정확히 찍지 못하는 나의 불안함.


3월 말, 벚꽃이 피어나 나들이 갈 생각으로 설레었던 나날이었다.

그리고 나의 복직과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로 새로운 떨림이 있었다.

13개월이었던 우리 딸은 손을 잡고서야 아장아장 걸었다.


전 날까지만 해도 내 손을 잡고 걸었던 우리 딸이 별안간 걷지 못했다.

처음에는 잠깐이겠지 생각했다. 몰랐으니까... 이럴 줄 누구인들 생각했을까.


나는 이틀이 지나도 점점 더 힘들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대학병원 소아과를 다녀왔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구렁텅이 속에서도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딸이 복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대학병원에서 아동발달 관련 교수님의 진료를 대기 없이 진료 시간에 맞게 전날에 예약하고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교수님의 권유로 MRI 촬영을 이틀 뒤에 예약을 잡았다. 진료 보는 날 교수님은 예상되는 병명을 나열해 주셨다. 뇌염, 뇌종양 등... 너무 무서웠다.

MRI촬영일을 기다리며,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네 소아과, 정형외과를 돌아다니며 X-RAY 촬영을 했지만 의사들은 진단을 내릴 수 없었고 대학병원에서 검사하는 것을 기다리라고만 했다. 피가 말라갔다.


MRI 촬영 당일, 원래는 뇌 MRI만 찍기로 했는데 교수님의 지시로 갑자기 척추도 추가가 되었다. 두 개의 MRI를 찍으려면 시간이 대략 1시간 정도 소요가 된다. 그동안 아이는 잠을 자면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잘 자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MRI결과는 5일 뒤에 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MRI촬영한 당일 저녁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바로 내원해서 진료를 보라고. 전화받고 아이를 안고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괜찮아, 괜찮아. 별일 아니어서 빨리 오라고 하는 거야. 괜찮아.


아이에게 하는 말보다는 나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었다.


진료 보는 날, 교수님은 우리 아이의 척추 MRI를 보여주며 종양의 위치를 짚었고 당장 서울 내 대형병원의 소아응급실로 가라고 하셨다. 해당 병원 혈액종양분과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연락을 해놓겠다고 하셨고 소견서도 써주셨다. 어쩜 이런 우연이 있을까... 우리 아이의 복이 이렇게나 많다.


아이의 척추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하반신 신경을 80% 이상 누르고 있던 종양, 그것도 모르고 괜찮다며 다독이던 내가 너무 미웠다.


진료실 안에서 목구멍이 막혀 말도 못 하고 도대체 뭐를 잘못했을까, 내가 우리 아이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나 하며 자책하던 나에게 교수님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어머님의 잘못은 더더욱 없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고 지금은 아이의 치료에 전념하라며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가슴이 찢어지도록 하염없이 울었지만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일단 연수원에 가있던 남편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얘기하고 집으로 오라고 했고,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아이 낮잠 재우기도 하고 밥도 먹여야 했다. 남편이 와서 입원할 짐도 부랴부랴 챙겨 병원 응급실로 갔다.


아이는 당장 내일 수술을 해야 했고 수술 후 하반신 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아이가 내 곁에 오래오래 있을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사실 입원하면서 설명해 주시는 교수님, 전공의, 인턴, 간호사들의 쏟아지는 질문과 설명은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고 정신이 없어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필사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아이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으려고 참고 참았고 걱정으로 며칠 밤을 새워 눈이 벌게지고 밥도 못 먹어서 몸이 위태로웠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것저것 검사받느라 공복을 유지해야 했던 아이가 배가 고파 칭얼거렸고 아이를 하루 종일 아기띠에 안고 달랬다. 다른 가족들이 아이를 안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이와 떨어질 수 없었다. 그게 나의 안정이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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