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2
아이와 함께 수술 준비 방에 들어가서 순서를 기다렸다.
의료진들이 와서 아이의 인적사항을 재차 확인했고 어떻게 수술을 할 것인지 등 브리핑을 해줬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들을 때마다 많이 무서웠다.
척추를 도려내어 열고 안에 차 있던 종양을 신경이 손상되지 않게 최대한 많이 긁어서 닫고 나오겠습니다.
상상도 못 한 수술이다.
아이 몸에 예방 접종할 때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괴로울까 걱정했었던 날이 우스웠다.
아이 몸에 수액줄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보면서도 내겐 현실이 아니었다. 아주 나쁜 깊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이가 내 품에 있으니 다 괜찮은 것 같았다.
내 품에 안겨있는 우리 아이 몸에 마취약이 투약되었다.
아이 귀에 속삭였다.
잘 자 우리 아가, 깊은 잠을 자고 오면 이제 다 괜찮을 거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어.
사랑해 우리 아기.
엄마랑 아빠가 제일 가까운 데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이는 잠을 자듯이 내 품에서 스르르 힘이 빠지고 잠에 들었다.
그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 모든 게 다 빠져나가고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지고 숨을 쉬지 못했다.
의료진들이 눕혀진 아이의 침대를 끌고 수술방에 들어가고서야 나는 정말로 무너졌다.
서있지도 못하는 나를 간호사가 부축해서 데리고 나왔고 밖에 있던 가족에게 인계했다.
정말 많이 원망하고 가슴을 치며 울었다. 며칠간 아이 앞에서 참았던 눈물이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몇 시간이 지나고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이동하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리나케 대기실에서 나와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교수님이 나와서 다행히 우려했던 신경이 끊어지지 않았고 척추 내에 있던 종양을 최대한 제거했고 수술로 인한 후유증은 아이가 깨어나봐야 알 것 같다고 설명해 주셨다. 또 안타깝지만 말초신경은 부득이하게 끊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복부의 한쪽이 감각이 없을 수 있지만 말초신경이 다발로 있기 때문에 다른 신경으로 대체가 되어 감각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우리 딸이 살았다는데 말초 감각 신경도 당연히 소중하지만 그게 뭐 큰 대수일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딸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로 우리는 2주 동안 입원하면서 검사의 연속, 재활, 암환자 보호자 교육 그리고 과 마다 불려 가며 아이의 항암으로 인한 부작용들을 들으며 가슴을 또 내리쳐야 했다.
벚꽃이 피면 나들이 가자며 약속했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 벚꽃이 만개했다.
병실 안에서 보는 벚꽃이 얼마나 이뻐서 슬프고 미웠는지 모른다.
남편은 병원을 오가며 차 안에서 벚꽃이 보일 때마다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내 곁에 있으니 지옥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신을 원망했지만 그럼에도 감사의 기도를 했다. 부디 당신의 어린양을 불쌍히 여기고 보듬어 주세요. 아이에게 더 이상의 고통과 시련을 주지 않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처절히 울면서 매일 기도 했다.
2주 뒤 퇴원하면서 우리는 마치 모든 병이 다 나은 듯이 앞날도 모르고 해방의 기쁨을 나누었다.
비록 오는 길에 벚꽃은 이미 다 져서 볼 수 없었지만 내년을 기약했다. 실제로 그게 2년 뒤가 될 줄은 몰랐다. 당장 1년만 지나면 다 나을 줄 알았다.
우리 아이의 병명은 신경모세포종이다.
1년에 발병률이 얼마 되지 않다는데, 그게 우리 아이가 될 줄은 몰랐다.
소아암, 말로만 듣고 TV에서나 봤지, 그게 우리 아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어쩌다가, 어떻게'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봐야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고, 아이의 치료에 전념하기로 다짐했다.
입원하면서 병실 탁상에서 사직서를 썼다. 내 사정을 아는 복직하는 회사 대표님이 복직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셨지만 언제 치료가 끝날지 기약이 없고, 민폐라고 생각하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참 선하고 감사한 분이다. 사직서를 쓰고 있는 것을 간호사 선생님이 보셨고 참 안타까워하셨다. 긴 말은 없으셨지만 그분의 눈에는 나 또한 안쓰러워 보였을 것 같다. 또 이런 보호자를 얼마나 많이 보셨을까.
만 2년, 그동안 우리 아이는 3번의 수술과 29번의 항암을 했다. 수십 번의 좌절과 수백 번의 눈물, 수천번의 다짐으로 나는 우리 아이를 지켜냈다.
그리고 25년 3월 우리는 마지막 항암으로 집중 치료를 종결했다.
당연히 완치도 아니고 아직 아이 몸에 석회화된 종양이 흔적처럼 남아있어 아직도 한 달에 2번 이상 병원에 가지만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이고 축복스러운 일이다.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2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벚꽃이 가장 빨리 피는 남해 진도로 벚꽃 시즌에 여행을 갔다. 누구보다 빨리 맞이하고 싶었다. 우리만큼 벚꽃을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벚꽃은 2년 전에는 너무너무 싫었다. 그리고 치료 중에는 다음 벚꽃이 피기 전에 꼭 치료를 마치자는 목표가 되었고, 2년 뒤 우리는 드디어 그 다짐과 약속을 이뤘다.
우리는 매년 벚꽃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맞이할 것이다.
부디 앞으로 우리 아이가 맞이하는 벚꽃은 아픔이 없고 고스란히 설렘과 기쁨으로 다가와주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