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시대의 카피라이터

쉽게 쓰는 것이 어려워

by 일조

한 때 착각을 심하게 한 적이 있다. 전문 용어를 많이 쓰면 잘하는 카피라이터로 인정받는 줄로. 제품을 잘 아는 사람이니까 저 카피가 하는 말은 믿어도 되겠거니 싶은 마음이 들 줄 알았다. 내가 몰랐던 부분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숙한 것이 좋고 편안한 것이 편한 것이 사람의 본성인 줄 몰랐다. 본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은 제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해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잘 모르겠는 표정, 무표정한 얼굴, 날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팔짱, 경직된 몸, 살짝 틀어진 자세 등 내가 어려운 말을 써 가며 나의 카피가 좋다고 주장할 때 사람들은 온몸으로 거부했다. 요즘 들어 내가 특히 주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여기다. 내 머릿속에 있는 표현을 써 가며 주장하는 것보다는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말들을 슬쩍 꺼내어 그들에게 익숙한 대상에 빗대어 말할 때 훨씬 더 효과가 좋다는 것. 예를 들어 블렌더 제품에서 "강도를 5단계로 나뉘어 조절할 수 있어 한결 편리한"이라는 표현보다는 "손풍기 날개를 약, 중, 강으로 조절하며 즐기듯"이라고 하면 조금 더 블렌더의 날개 강도를 조절하는 것을 편익으로 쉽게 연상하게 된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칼날의 분당 회전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말해줄 필요도 없다. 그저 손풍기 날개가 부드럽게 돌아가는 모습부터 쌩쌩 돌아가는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내가 요즘 느끼는 것은 이 방법이 카네기가 대중 연설에 대한 교육을 하던 시절에 가르치던 내용과 같다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아는 말로 시작하여 "네"라는 반응을 먼저 이끌어 내자. 어려운 숫자는 그들이 아는 대상으로 바꿔서 표현해 보자. 쉽게 떠올리고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열광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자. 말하는 화자가 아닌 듣는 청중의 입장에서 연설을 할 때 청중의 집중과 몰입, 반응과 화답이 달라진다. 이는 UX시대인 지금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교훈이다. 물론 말하기와 글 쓰기는 주로 관여하는 감각기관은 다르다. 말하기는 청각과 시각이 같이 작용하고 글 쓰기는 시각이 주로 관여한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글이 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오늘도 나는 카네기의 성공대화론을 심도 있게 공부한다. 쉽게 쓰고 쉽게 말하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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