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의 지랄(1)
인생의 테마를 점검할 기회가 생겼다. 남들과 다른 인생. 그걸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며 살아왔다. 인생도 문학 작품처럼 표절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꼭 땅따먹기 같다. 내가 먼저 선점하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 갈 수 있는 길이 사라진다. 조급함에서 오는 느지막한 피로감은 내가 내 인생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만들고 있었던 것임을, 그러느라 정작 내게는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왔다. 사람도 점검이 필요한 것처럼, 라이프스타일도 주기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떤 습관과 행동은 반드시 고쳐 써야 한다.
강남역 근처 꽤 괜찮은 술집을 발견했다. 친구 셋을 불렀다. 군대에서 알게 된 인연이다. 강동에 사는 나를 기준으로 2기수 후임인 강북에 사는 친구 A, 안양에 사는 친구 B가 동기. 우리 모두 27살이다. 우리보다 2살 위인, 강북 사는 또 다른 친구 C는 내 3기수 후임. A와 나는 담배를 함께 피우며 친분을 쌓았고, A와 C는 같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또 나는 그 지역에 연고가 있다는 이유로 셋과는 6년째다. B와는 부담 없이 편해졌다. 그렇게 이유 없이 친해졌다가 전역 후 한 1년, B와는 모를 이유로 보지 않았다.
B와 가장 먼저 만났다. B는 이미 1시간 전부터 강남역 근처였다. 단톡방에 보낸 메시지로 알고 있었고, 특별한 일정도 없었지만 그 애와 1시간 먼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퍽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인턴을 끝내고 백수로 지낸지 3개월이다. 술자리 토크에 더해 1시간이나 떠들어댈만한 일들은 내 일상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역사 출구에서 만나 술집까지 걷는 5분 동안, B는 벌써 1년 전, 집 근처 작은 반도체 회사 연구원으로 취직했음을, 회사에서 자신이 별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사수가 퇴사하고, 사수의 사수가 자신의 일을 봐주고 있는데, 어느 날 직원들이 다 있는 곳에서 내놓고 자신의 실수를 고래고래 떠벌렸다는 것. B는 자신의 흠결을 되도록 숨기려 한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하지만, 누구 하나 약점을 터놓고 공유할 친구가 인생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점이 나와 다르다.
“회사에서 너가 필요 없다 판단하면 벌써 잘랐겠지. 정으로 일하는 것도 아닌데.”
여러 번 이야기할 필요 없이, B를 앞세워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실수가 또 반복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B의 사수가 이상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다. 위험하게 노는 어린 아들에게 큰 소리로 경각심을 심어주어야 할 이유란 없다. 놀이터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성방가는 엄연한 범죄란 사실을 그도 몰랐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B의 사수는 그저 군대에서의 경험이 사회생활에 밑거름이 된다고 믿으며, 그것을 남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하는 얄팍한 인간일 뿐.
나는 그 애에게 다음 주 월요일, 점심 먹으러 사무실을 나서는 사수의 머리통을 소화기로 갈기라고 말했다. B는 깔깔거리고 웃어넘겼지만 오늘이 끝날 때까지 그 애는 다시 그 얘기를 꺼내들지 않았다. 나는 그 애의 상처가 약을 발라 새 살로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흉이 지더라도 째고 꿰매야 하는 것임을 직감했다.
B는 내가 고른 허름한 주막을 제법 마음에 들어했다. 난 평소 술집을 고를 때 되도록 프랜차이즈 점포는 빼고 골랐다. 생각해 보면 남들이 갔던 여행지는 앞으로 갈 여행지 목록에서 빼버리고, 배우고 싶은 제2외국어도 누가 조금이라도 진도를 빼놓은 것이라면 마음이 금세 식어버린다. 로컬 맛집을 고집하는 일은 흔하지 않은 것만을 추종하는 나의 옹졸한 취향을 적절히 힙한 것으로 포장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지금, 정작 그들에게는 경쟁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 모순이라는 점도 인정한다.
A와 C를 기다리는 동안, 우린 줄곧 내 얘기를 했다. 난 치부를 친구에게조차 말하는 것을 껄끄러워한다. 잘 안 풀릴 때는 친구도 만나지 않는다. 서류에서 번번이 떨어지고 있다는 내게 B는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나의 불행을 소리 내 말하는 것이 그 자체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술집을 선호한다.
술 한 잔 없이 얘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C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착했는데,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테이블에서 카운터 쪽을 내다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잠시 뒤, 통화 너머로 헛웃음 소리가 들렸다.
“같은 집이 반대편에 하나 더 있다는데. 여기 2호점인가 봐.”
C가 전화를 끊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A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애도 반대편 주막집으로 간 것이다. 처음 단체방에 올려놓은 링크를 확인해 봤다. C와 A가 간 그곳이 맞았다. 구태여 점원에게 가서, 두 가게가 주인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가게라는 것을 확인했다. 오리지널을 고집하는 나의 취향이 조롱당한 느낌이었다. A는 자신이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에 퍽 짜증을 냈고, 나는 그런 그 애에게 변명을 늘어놓는 동안 어쩐지 얼굴이 평상시보다 더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기는 B는 A와 C가 도착할 때까지 가게 내부 사진을 찍고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묘한 침묵이 흐르는 것이 불편해 담배를 피운다며 잠시 가게를 나왔다.
C가 도착하고, A가 왔다. 술 몇 잔을 기울이다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A의 연애에 대해 이런저런 참견을 늘어놓았다. A는 우리가 어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는, 그 알 수 없는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걸 즐겼다. B도 연애를 하고 있었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부터 만난 여자친구와 5년 남짓 연애를 이어가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헤어졌다. 지금은 다른 사람과 만나고 있다. A도 마찬가지. C는 무난한 사람이다. 조용히 우리 얘기를 들으며, 한두 마디씩 거드는 게 전부다. 그는 6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아직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A와 B와 C는 모두 군대에 들어오기 전, 비슷한 시점에 여자친구를 만나 장기간 연애를 해왔고, 그러다 헤어졌다. 셋은 그렇게 친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우리 넷은 왜 친해졌을까.
넷이 있으면 우린 하나는 꼭 다르다. 그게 나일 경우, 언제나 주제는 연애다. 연애 얘기가 나올 것만 같으면 벌써 여러 번 주제를 돌렸고, 이런 쪽으로 빠삭한 A와 C는 이제 내게, 마치 기혼 남성이 싱글에게 추잡하고 음란한 잠자리 썰을 캐묻듯 추궁하지 않는다. B와는 한동안 왕래가 없었으나, 역시 이런 쪽으로 눈치가 빠른 그도 금방 눈치를 챌 것이다. 내겐 그를 만족시켜줄 소재거리가 없다는 걸. 우린 둔하고 눈치 없다는 이유로 상대의 치부를 거리낌 없이 들추는 10대 시절을 건너 뛰어 만났다. 다르지만, 기민하게 적응해왔다. 소박한 노력들로 유지되고 있는 관계의 무게가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앞으로도 부담 없이 만나기 위해 아주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정도랄까. 서서히 몽롱해지며, 혀는 조금씩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너네 먼저 들어가. 나 통화 좀 하고.”
1차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2차로 겨우 자리가 난 한 집을 찾았다. 독서실처럼 테이블이 야무지게 들어찬 퓨전 술집이었다. 프랜차이즈였다. 담배를 피우면서, 어질어질한 정신에 어딘가에 걸터앉아, 아침에 온 문자를 확인했다.
‘잘 지내니. 연락 주라.’
정말 꼴 보기 싫을 만큼 미웠던 인간이 가끔 내게 건네는 호의에 젖어 그에 대한 평가를 손바닥 뒤집듯 바꿀 때, 또 그것을 후회하며 다시 그 인간을 저주하던 어느 날, 즉 그 모든 때를 종합해 나의 가벼움을 귀여움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을 나는 아련함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콜백을 할 생각은 없었다. 술김에 없던 용기가 생긴 것도 아니고,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전화로 무슨 말을 할지 예측되는 상황에서 나는 이 객기가 다분히 아련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밖에 결론 내릴 수 없었다. 소주는 쓰다가 달다. 소주 맛을 온전히 느낄 줄 아는 경험치가 쌓였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지영호 부장과는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만났다. 그는 스스로 세파에 찌들었지만 옳은 소리, 싫은 소리를 거침없이 해내는 마초, 쿨한 남자이길 자처하는 40대 초반 남성의 표본이었다. 물론 10년 전에도 곱게 늙어가던 내 이모부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특별히 무언가를 자처하지 않고 살아가는 40대 남자들도 많다. 그들이 눈에 띄려 하지도 않아 어디 있는지 잘 모를 뿐.
회사를 나오고, 회사 사람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영원히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직장을 새로 잡으면, 어느 명절엔가 담백한 인사말로 문자 정도 남길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는 그다지 많지 않았고, 끽해야 1달을 예상했던 나의 휴식기는 필요 이상 길어지고 있었다. 연락을 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전 직장 동료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다소 뜬금없지 않을까라는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그들은 줄곧 내 소식을 궁금해했고, 수시로 문자와 전화를 넣었다. 무리 밖으로 뛰쳐나와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선언한 나의 궁핍해져만 가는 독립이 그들에게 적잖은 위로가 될 것이 뻔했다.
지 부장은 정보를 팔아먹고사는 사람이다. 회사에 내 소식을 퍼뜨리며,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 내가 자신과는 연락을 하고 있음을 흘려대며, 나와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던 강 팀장, 윤 대리에게 박탈감을 심어주고 싶었겠지. 지 부장은 나보다 회사를 먼저 나왔다. 그의 빈자리는 강 팀장이, 또 강의 빈자리는 윤이 채웠다. 한 단계씩 밀려 올라가 가장 밑바닥에 생긴 공백을 채운 건 나였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은 것 같은데 전화가 연결됐다. 전화가 연결되기 전까지 통화 연결음 소리를 듣지 않는 편이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은 채 들리는 그 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 너구나. 미안한데 내가 5분만 이따가 전화할게.”
다시 전화가 끊겼고, 5분 동안 나는 불현듯 과거 부모님과 싸우고 집을 나와 신촌 근처 반지하방을 얻어 학교를 다닐 때의 일을 떠올렸다. 23살 여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설문조사를 하고 싶다는 한 쌍의 남녀를 만나 전화번호를 주었고, 그다음 날 심리 테스트를 한 번 더 해 줄 수 있냐는 말에 흔쾌히, 또 그다음번에 심리 테스트의 결과를 해설해 주겠다며 여름 한 달 동안 개인적으로 상담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수락했던 일. 그땐 전역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넷이 가장 빈번히 만났던 때다. 그때 애들이 나를 말렸던 것처럼, 지금도 나를 말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후회가 들었다. 소주는 첫 맛이 쓰고, 끝 넘김이 달지만, 한참 뒤에 입안 가득 텁텁함만 남는다. 괜스레 침이 마르는 것만 같다.
“오랜만이다. 너 어떻게 지내?”
내가 일하던 회사는 여성 속옷을 만드는 규모가 작은 회사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은 기피하고, 멋들어진 일만 하고 싶어 한다는 시쳇말처럼, 기피 당하는 회사, 멋없는 회사였다. 내가 회사에 들어가게 된 건 대학을 졸업하기 전, 서포터즈라는 명목으로 회사에서 무급 계약직을 채용했을 때다. 지 부장은 나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한 내 직속 상사였다. 간간이 회사에 오래 남아있으라는 덕담으로 나를 붙들었고, 서포터즈 기간이 끝나갈 무렵 그만두려던 내게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나간 덕분에 나는 월 2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며,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는 인턴 생활을 3개월 정도 할 수 있었다.
회사를 나오기 며칠 전 그와의 마지막 술자리에서 나는 그에게 ‘앞으로 병신같이 이용만 당하면서 살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이 지금까지 내 입에서 나온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고 대답했다.
“요새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됐는데?”
지 부장은 회사를 나와 조그만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이전 회사 사람들과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하며, 다음 주 월요일에 인사를 드리러 간다고.
“요새 전화 잘 안 받아요.”
“전화를 왜 안 받아? 너 통조림 파는 OOO 알지? 그 회사에서 누가 사람 추천해 달라고 하던데, 너가 저번에 전화 안 받아서 다른 애 추천해 줬거든? 걔 지금 잘 다녀.”
회사에 있는 동안, 그가 클라이언트들과 미팅을 할 때 몇 번 배석한 적 있다.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그는 종종 시간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하는 데 할애하곤 했다. 앞으로 이어질 대화가 그다지 길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에게 서둘러 내가 아직 새 직장을 얻지 못했음을 얘기해 주었다.
지나간 기회를 복기해서 내게 아쉬움을 자극하고, 나에 대한 자신의 걱정과 우려가 일회성에 지나지 않음을 빌어 자신의 역량까지 PT 한 그가 꺼낸 본론은 결국 월요일에 자신과 같이 회사에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이번에 일을 하게 되면, 건 바이 건으로 용돈 조금 챙겨줄 수 있게 얘기 해놓겠다고 했다. 나중에야 이모에게 이 얘기를 해주었더니, 이모는 그 새끼가 내게 일자리를 추천해 주려고 앞서 전화한 게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끔 이모처럼 내가 적당히 교활하고, 셈이 빠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절망스럽게 느껴진다.
나의 대답은 정중한 거절이었고, 나의 대답에 대한 그의 대답은 설득을 빙자한 훈계였다.
“말로만 듣던 MZ세대가 여깄네.”
그의 입장에서 굳이 회사에서 그런 요청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내 앞에서 구태여 굽신거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나와 연락이 된 건 사실이고, 취직도 못한 주제에 ‘정중한 거절’씩이나 한 나를 그들 앞에서 적당히 조롱하며, 자신은 할 만큼 했다는 걸 어필하면 그만이니까. 내 입장에서는 그런 건 다 차치하더라도 대답에는 대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걸, 자칭 MZ세대 전문가라는 그가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점이 실없게 느꼈다.
“너 경영학과 나왔지. 나도 경영학과 나왔잖아. 부모님한테 물려받을 카페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전공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뭐든 해야 한다고.”
전화는 대충 마무리되었다. 내가 눈에 띄게 말이 없어지자 그도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한 이상 굳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전화를 잘 받으라는 당부는 잊지 않았다.
그러니까, 23살 여름에 나는 편의점 야간 알바를 주 3일씩 뛰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처음부터 사이비 종교의 흔하디흔한 포교 수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를 만류하는 A와 B와 C에게도 그냥 심심해서 놀아보는 것일 뿐, 돈을 요구한다든지, 어딜 같이 가자는 둥 꺼림칙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그만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나는 삶에 활력을 넣어줄 사건이 필요했고, 다른 이로부터 착취 당하지 않고 내 삶을 지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충만했다. 정작 내 인생을 끊임없이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내가 무엇을 망가뜨리고 있는지는 몰랐다.
심리테스트 결과를 해설해 주려 나온 사람은 그 이전까지 만난, 내가 알고 있는 사이비 종교의 사람들과 달랐다. 30대 초반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넘쳤고, 매너는 수트처럼 몸에 찰싹 붙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다만 부모님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자신과의 만남을 이야기해선 안된다고 했다.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외부 요소를 철저히 단절해야 비로소 온전히 자립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고 했나. 가끔은 클리셰가 거슬리기도 했지만, 일주일에 2번 30분 정도 일어나는 대화는 대체로 재밌었다.
그와 모든 만남을 정리한 건, 그가 약속된 날짜에 만나 대화하는 것 이외에 내게 톡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한창 일을 하고 있던 새벽 2시쯤, 술에 취한 진상들과 대거리를 몇 번 하고 질려서 창고 뒤에 냉장고 정리를 하고 있을 때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피곤하지 않냐는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다.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사이비 새끼가 주제넘은 짓을 해서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때 잠깐이나마 흔들렸고, 얕은 호의에도 충분히 넘어갈 만큼 춥고 찌들어있었다. 그 사실을 그가 짐작하고 내게 연락을 했다는 사실이, 잠깐이나마 답장을 보내고 싶었던, 위로가 필요했던 알량한 내 마음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천박하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나마 내가 나를 잠시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담배를 여러 개 폈다. A와 B와 C는 생각보다 짜증을 내지 않았다. 나로 인해 하지 못했던 지난 연애의 초라한 결말과 절반 도 채 남지 않은 보쌈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고 했다. 경기도에 사는 B의 막차 시간이 다가올 때쯤, 다음 모임 날짜를 잡았다. 우리가 우리 모임을 유지하기 위해 하고 있는 소소한 노력에는 이런 것도 포함이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지 부장이 나와 그를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로 일컬어 부른 일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경기도에 사는 B와 서울에 사는 A와 C와 내가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만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프랜차이즈는 아니지만, 같은 이름의 점포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던 점과, B와 내가 한 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A와 C가 나머지 한 곳에서 우릴 찾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들들 볶아서, 나는 얼마나 특별해지고, 남달라졌을까. 불필요한 신념이 하지 않아도 될 행동과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낳았다. 다만 나는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도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주길 바랐다. 그런 소소한 노력이 모여 오늘의 내가 됐다.
1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