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의 지랄(2)
집 앞 로터리 신호체계가 바뀌었다. 차례차례로 초록불이 들어오던 것에서 이제는 한 번에 불이 들어왔다가 꺼진다. 굳이 계산적이어야 할 필요 없이, 매일 매시간, 담배를 피우기 위해 건너던 길이다. 멀리서 한 쪽 신호등에 초록불이 점멸될 것 같으면 헐레벌떡 반대쪽 도보로 건너가 횡단보도를 2번 건너곤 했다. 줄일 수 있는 시간과 그를 위해 사용할 에너지를 비교했을 때, 기다림은 나의 선택지에 없었으며, 시간은 대체로 그런 선택지들 중 꽤 중요한 것이었다. 1-2분이 채 되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더 이상 얕을 수를 부릴 필요가 없게 된 지금, 나는 27년의 시간이 흘러온 속도와 그 의미에 대해 되짚어보고자 한다.
D는 약속 시간에 번번이 늦었다. 6시 약속에 6시 30분, 12시 약속에 12시 20분. 우스갯소리로 D와 만나는 날에는 그 애에게만 시간을 30분 일찍 알려주자는 작당을 모의한 적도 있다. 그 애는 친구와의 사적인 모임이 대학교 면접고사 날이나, 회사 면접 날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뼈 속 깊이 알고 있었다. 천성이 느긋한 편이라, 지금껏 누군가와 부대끼며 피해를 주던 일이 종종 있었을 D에게는 자신이 준 피해가 그들에게 그다지 큰 것임이 아님을, 또 무엇보다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 약속에 엄격한 편은 아니었지만, 유독 지각을 반복하는 D가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평가할 기준이 모호했던 20대 초중반에는 한 사람의 평판을 좌우하는 것 중 시간이 상당히 큰 부분을 좌우한다는 것을 D가 모를 뿐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후 D의 도착 여부와 상관없이 안주를 시켰고, 술을 마셨다. 그 애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되려 좋아했겠지.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D가 타인의 시간뿐 아니라 자신의 시간 또한 헌신짝처럼 여기고 있다는 나의 믿음 때문이었다.
D는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했다. 다시 삼수를 해서 들어간 지방 국립대가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1학기를 다니고 돌연 휴학, 반수를 했지만 역시 실패였다. 얼마 가지 않아 군대에 갔고, 수능에 대한 미련은 군대에서 보내는 1년 8개월의 시간을 알뜰하게 써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어졌다. 끝내 2번의 시험 외출을 끝으로 총 6번의 수능을 본 D는 더 이상 수능에 대한 욕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천성이 느긋하고, 쫓기듯 무언가에 매진하는 일에 자신이 없었던 D는 현재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 애와는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지만, 내가 그 애와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20살 겨울, 우리가 함께 3주 동안 동유럽을 여행한 후부터였다.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일정 분량의 시간을 상대에게 허락하는 것은 물론, 하다못해 밥을 먹는 시간까지 상대와 나, 우리 둘의 시계가 분명한 시차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때, 나는 나의 시계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돌아가고 있는 또 하나의 시계가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시계는 삼촌을 기준으로 엄마에 의해 설정되었다. 60을 바라보고 있는 삼촌은 일평생 사회생활이라곤 해본 적 없고, 할머니와 함께 살며, 하루 일과로 집에 오는 할머니 친구들에게 커피를 타 드리거나 과일을 내오고, 이따금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이모나 엄마에게 반찬을 가져다주는 것이 전부다. 그 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어떤 형태로든 TV 앞에서 보낸다. 할머니를 닮아, 부지런함을 삶의 모토로 여기는 엄마에게 있어 그런 삼촌의 시간은 멈춰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종종 삼촌을 찾아가 하릴없이 빈둥대고 오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낸 사람이 맞이하는 비참한 결말로서, 이따금 고된 삶에 찌들어버린 엄마가 내게 들려준 잔혹동화에는 선과 악 밖에 없었다. 엄마는 착한 사람이었고, 삼촌은 못된 사람이었다.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이지만, 어떤 대륙은 낮이고, 또 다른 대륙은 밤이다. 다만, 지금은 밤인 대륙에도 아침은 찾아온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과 시차를 이겨내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된 지금, 물리적인 시간의 양에서 서로 다름을 느끼고 있는 엄마와 삼촌이 결코 같은 행성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행성은 노동과 성취, 학습과 진일보를 위해 밤을 줄여나가고 있는 반면, 하루 종일 방에만 틀어박힌 삼촌의 행성에서 낮이란 그다지 쓸모없는 시간대로 천대받고 있다. 각자가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진화하는 동안 한 배에서 태어난 남매는 이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시간은 크게 보면 문화의 영역에 속한다. 서로 다른 권역의 시간대에 살다 보면, 대륙과 대륙 사이의 거리가 행성과 행성 사이의 거리만큼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더 세분화하자면, 시간은 문화보다는 비교적 쉽게 익힐 수 있는 언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완벽히 유창하게 다른 나라의 언어를 소화하는 일은 누구에나 어려운 일이지만, 간단한 흉내로 의사소통을 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작동케하는 시계를 이해하는 일이 어렵지만 불가능하진 않다고. 엄마가 삼촌의 흉을 보거나, 할머니 앞에서 삼촌을 면박 주곤 할 때 나는 대체로 삼촌의 편이었고, 그건 단순히 엄마에게 반기를 들기 위함이나 삼촌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천박하거나 우아함은 없다. 다만 정해진 시간을 자기 나름대로 활용하고 있을 뿐.
종종 이모와 밸런스 게임을 하는 건, 그녀를 골탕 먹이기 위함이었다. 이모는 어떤 질문에도 대체로 그럴듯한 대답으로 응수했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의견 뒤에는 언제나 감정적 동의를 구하는 치밀함마저 갖추고 있다. 극단적인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을 제시하며 이모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걸까. 점점 극으로 치달아가던 양자택일 딜레마에, 어느 날 이모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무미건조하게 대답을 내놓았다.
“중간은 없는 거야?”
밸런스 게임은 상대의 의미 있는 선택을 요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고른 선택지의 의미를 듣기 위한 게임이다. 당연히 중간은 없다. 3부에서 다른 방식으로 후술하겠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모두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길 자처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 또한 그 문제에서 결코 어긋나있지 않다. 죽도록 열심히 살거나, 아님 폐인처럼 늘어져 있거나. 둘 중 어떤 선택지를 고르던, 우린 자신에게 일분과 한 시간, 그리고 하루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대답하면 되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말할 수 없다면, 어떤 시간은 그저 노잼으로 망해버린 밸런스 게임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리고 D와 삼촌의 공통점 또한 망한 밸런스 게임에서 출발하지만, 둘은 분명 다르다. 삼촌은 자신의 시간이 가질 수 있는 의미에 대해 남들이 대신 찾아주길 바란다. 그는 내가 자신을 찾아줄 날만을 기다리며, 내가 자주 쓰는 베개와 이불을 빨아놓고, 이따금 출출해진 새벽, 요깃거리를 찾는 나를 위해 라면을 쟁여둔다. 그 대가로 나는 삼촌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가 하루 24시간을 얼마나 외롭게 보내는지, 자신이 얼마나 방치된 삶을 살고 있는지 들어줘야만 한다. 언젠가부터 삼촌을 찾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엄마는 내가 드디어 동화 속 교훈을 이해할 만큼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삼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노동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 나로서는 엄마가 앞서 그랬듯 그저 그에게 지쳤을 뿐이다.
타인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란 뻑뻑한 닭 가슴살과 같아, 식감은 부드러울지 모르나 목 넘김이 다소 부담스러우며, 비교적 오래 곱씹어야 한다. 받아들이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씹다가 뱉어내는 일보다, 처음부터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또한 전혀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삼촌의 문제에 있어서, 유독 방어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엄마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가끔 자신의 시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남의 것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를 취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일정량의 식사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반드시 각자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걸 하지 않게 되면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나.
인턴으로 일하던 동안, 나는 하루에 15시간, 종종 주말에도 일을 하는 것이 부지기수로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직장에 투입했지만, 거둔 결과물이란 조악하기 그지없는 카피 문구 몇 개와 쇼츠 여러 개가 전부였다. 나는 하나의 작업을 시작해서 끝내기까지 오래 걸리는 비효율적인 인간이었고, 회사는 그런 나를 위해 열정과 노력으로 대체할 수 있는 단순노동을 더 많이, 자주 부탁하곤 했다. 회사에 찾아온 클라이언트의 차를 발렛한다든지, 택배를 나른다든지, 파쇄를 한다든지, 전화를 받는다든지, 그런 것들. 회사를 그만두며, 엄마와 아빠에게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을까 필요 이상 흐느끼며 직장에서 받은 모멸감에 대해 토로했지만, 사실 어떤 때는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해 먼저 자처하고 나서는 경우도 많았다.
회사는 일을 잘, 그것도 빨리 잘 해야 하는 곳이다. 직급이 낮을수록, 더 다양하고 자질구레한 부탁이 사방에서 들어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부장과 팀장은 퇴근하는데 인턴은 퇴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착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 회사에서는 모질고 매정한 인간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에겐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불필요하게 시간을 소모하는 것 같아 떠넘긴 잡무로 누군가 퇴근을 미루고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죄책감을 자극하니까. 그들은 언제나 일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노동시간의 품질을 대신 향상시켜주며 우리 곁에 따뜻한 조언자가 되길 바란다.
윤 대리는 콤플렉스에 절어 있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자신이 학력이 가장 낮다는 사실을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격언으로 말미암아 역전하고 싶어 했다. 내가 들어온 뒤로 유일한 막내가 생긴 그로서는 내게 감정적으로 의지하며, 나 역시 ‘자신의 사람’이 되길 노골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와 친해질 수 없었다. 나는 그와 동갑이었다. 나와 비슷한 루트로 회사에 들어와, 노력과 열정, 신입의 애교와 근성으로 버텨온 그에게 나는 새로운 위협이었을 테고, 그는 그 점을 창피해서 숨기기보다 거리낌 없이 대처하는 쪽을 선택한 듯 보였다. 나를 향한 그의 과잉된 막말과 설익은 훈계는 자신은 퇴근하는데, 나는 퇴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나의 애사심과 열정 때문이 아니라, 미련함과 무지함 때문이라는 사실을 윗선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그의 입에서는 떠나지 않던 ‘효율’이라는 단어는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밤 11시까지,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도,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서까지 줄곧 함께였다. 그런 그가 아직까지 내게 호의적이라 꾸준히 연락이 오는 이유에 대해 짐작 가는 바가 없지 않았다. 앞서 지 부장과의 통화 이후, 회사가 새로 올린 채용 공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확히 1년 전 이맘때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건 그들이 무급 계약직 노동자를 서포터즈가 아닌 ‘프런티어’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 윤 대리가 그토록 부르짖던 ‘효율’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유지되고 있었는지 다시금 깨달았으리라는 생각에 묘한 쾌감에 젖었을 무렵, 나는 시간의 품질이 그 의미를 온전히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퇴사를 한 건 내 시간이 정육점에 고깃덩어리처럼 등급이 매겨져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 무슨 일’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필히, 인간의 시간이란 그렇게 맹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를 찾아도 찾을 수 없다면, 부여해야 한다. 나는 이제 그 시간에 글을 쓰고, 영화를 보거나 그도 아니면 잠을 잔다. 엄마가 혐오하던 삼촌의 시계와 내 시계가 시차 없이 온전히 맞아떨어지고 있는 걸까. 그도 아니면, 늙은 부모를 일터로 내몰아 혼자 편히 쉬어보겠다는 나는 이기적인 D를 닮은 걸까. 확실한 건, 나의 시간은 이제 내 심작박동보다는 조금 느리고 완만하게 흐르고 있다. 품질로 따지면, 비계 가득한 탄력 없는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시간일지 모르나, 적어도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적어도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중간은 없는 것이냐는 이모의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만약 그녀에게 당신이라면 엄마처럼 살 것이냐, 삼촌처럼 살 것이냐, 다시 양자택일의 문제를 던진다면 이모는 분명 피해 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그녀라면, 분명 이렇게 말하겠지.
“아니. 난 둘 다 싫고, 그냥 내 인생 살래.”
그러니까 이 문제는 두 사람 중 누가 더 시간의 품질을 유지하며 잘 살고 있는지, 어떤 인생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로 위장하고,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슬며시 숨겨놓은 셈이다.
앞으로 당신이 보낼 시간에서 어떤 의미를 찾았고, 또 찾고 싶습니까?
그러기 위해 당신은 지금 당신 자신의 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까?
고작 2분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1시간에 한 번씩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돌아가는 시간을 계산한다면, 나는 하루에 약 1시간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꽤 큰 시간이 아닌가. 매일 1시간은 그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민한다면, 나는 지금 내 시간에 조금은 색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일, 이분을 아까울 만큼 나는 늙지도 않았고 1시간을 펑펑 써재낄 만큼 더 이상 젊지도 않지만, 내게도 온전히 나를 돌아볼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그 자체로 귀하지 않은가.
2부 fin.
Special Thanks To.
도덕관념이 없던 나와 달리, 세 살 위 내 누나는 어릴 때부터 참 야무진 소녀였고, 지금은 성숙한 어른이 되어 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보낸다. 14살 여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누나와 함께 과외를 갔다가 오던 때의 일을 떠올린다. 엄연히 신호등은 있지만, 인도와 인도 사이 거리도 짧고 차도 몇 다니지 않는 길목이라 혼자서는 내 맘대로 건너던 횡단보도였다. 빨간 불인지 초록 불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무작정 건너려고 하는데, 빗줄기 너머로 누나가 손을 뻗어 나를 붙잡았다.
“무단횡단하지 마.”
평소 엄마의 강요로 국어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내게 억지로 무언가를 가르쳐야 했던 누나는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도 태도가 불량했던 내게 늘 엄격했다. 그러나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했던 누나에게도 쉽게 타협하거나, 흔들리는 일이 왜 없었겠는가. 어떤 일에서는 한 인간으로서 흐트러짐 없이 살아가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누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고, 적어도 그녀는 욕망에 유독 취약한 어린 동생의 고충을 잘못된 것이라 타박하거나 질책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나는 술에 아무리 취하든, 화장실이 가고 싶든, 뙤약볕에 머리가 핑 돌 만큼 뜨거운 여름이나, 반팔로 이겨내는 서늘한 가을밤에도, 무단횡단은 한 적 없다.
내 인생에 한 시간을 선물해 준 누나에게는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고맙다. 썅.
2부 찐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