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의 지랄(3)
전략적 막말론자들은 판타지의 소산이다. 원하는 행위를 유도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전략을 설계하는 동안 일상의 언어와 문법에 녹이 슬고, 그로 말미 암아 이루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에 듣기 싫은 마찰음을 빚는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스스로 합리적이고 젠틀한 어른이길 자처하는 아빠가 왜 전략적 막말론자가 되었는지 생각해야만 했다. 아직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 문제에 대해 되짚어보지 않는다면, 그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고의로 잔인한 말들을 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원하는 게 사랑이라면 우리 삶에 가장 현실적인 네트워크 중에 하나인 그것 어디에도 그런 판타지가 개입될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꺼져.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아빠에게 들은 이 얘기를 해주었을 때, 이모는 잠시 하던 말을 멈췄다. 어릴 적 고민을 상담하거나 조언을 구할 어른이 부재했던 이모는 그녀의 자식뿐만 아니라 기꺼이 어린 조카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게 가족의 일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이모에게 자초지종 경위를 설명하면서도, 부모를 제외하고 내 인생에 가장 가까운 어른이 또 누군가의 부모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어쩐지 서글펐다. 아빠는 도저히 취직에 대한 생각을 하는지 모를 아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몇 마디를 건네보다 신통치 않은 대답이 나오자 화가 난 듯 보였다.
“왜 서비스 업종 같은 것만 지원하냐 그거야. 내가 지금 찬밥 더운 밥 가릴 때냐고.”
침묵도 의사표시라고 생각한 나는 조용히 먹던 밥을 치우고 집을 나왔다. 독서실이 문을 닫는 새벽 2시 이후에는 근처 스터디 카페에서 보내고 그 후 아침에는 버스를 타고 D가 있는 대구에 내려갈 계획이었다. 호기롭게 그 애와 함께 있던 단톡방을 나간 후 근근이 연락 오는 것도 마다하던 찰나에 정작 아쉬운 상황에서만 D를 찾고 있는 내가 치졸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아빠가 말한 대로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만큼 나는 아빠에게 내 나름대로의 의사표시를 하고 싶었다.
대치국면은 어서 집에 들어오라는 엄마의 사정 끝에 잦아들었다. 이모는 나이가 들면 감정 조절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날 새벽, 내가 생각해 낸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고 이모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나는 진심이었다. 정치가 아빠를 변하게 했다고. 정치에 시니컬했던 아빠가 어느 순간부터 정치인 패널들이 출연한 유튜브 방송에 매달리고 있었다.
“봐봐. 내가 어제 새벽에 할 게 없어서 <김해성의 파라다이스>를 봤다 이거야. 내가 이거 보면서 알았어. 아, 이런 걸 하루 종일 쳐보고 앉아 있으면 입에서 고운 소리가 나오겠냐. 말폭탄 주고받는 거 듣고만 있어도 울화가 치미는데.”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닫힌 상임위장 문을 해머로 부수지 않게 되었다고 우리 정치에 폭력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나. 비방과 조롱으로 상대의 말을 뭉개고, 그래서 내 편의 워딩을 비교적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몸부리치는 천박함이 폭력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우리’ 모두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생활 현장에서 ‘우리’ 편이 쓸 수 있는 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토론하러 나왔다는 사람들이 있는 곳. 거기서부터 흘러나온 말들이 우리 집에 흘러들어 무엇을 망치고 있는지 나는 분명히 느끼고 있다.
‘우리’라는 결실이 맺어지기까지 서로 마음을 맞추고 곁을 내어주는 과정을 알고 있다면 그 말을 그렇게 쉽게 쓰지 못할 것이다. 노희경 씨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수박양님의 <아홉수 우리들>에도, 고통과 행복의 결마다 함께 살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우리라는 말이 버겁고 성가시게 느껴지더라도 덥고 짜증 나는 날만 가득한 게 인생이 아니듯, 춥고 외로운 날에는 그 단순한 말 한마디가 앉은 자리를 뎁히고 언 몸을 녹인다. ‘우리’라는 단어 한 마디가 피기까지의 고난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전략이나 계략 따위로 그 말을 그리 쉽게 차용하진 않았을 것이다.
비단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그 말을 남발하는 사람들은 시민사회의 갈등을 대변하고, 해결하는 공론장에 나와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급한 말들로 죄책감 없이 다른 이를 모욕 주는 이들에게서 원만한 갈등 해결의 프로토타입을 기대해야 하는 숙명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게 게릴라 전투를 치르듯, 네 편과 남의 편을 나누고 싸움을 부추기는 동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우리’라는 단어의 흡착력이란 포스트잇의 그것과 같이 유한하고 볼품없는 것이 되었다. 우리가 한 겨울에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자 부둥켜안던 일들은 이제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소모품 정도로 전락한 셈이다.
이 ‘전략적으로 나쁜 새끼들’이 우리 집을 풍비박산 내 놓고 있다는 나의 가설이 이모에게 단순히 정치 효능감을 상실하여 내뱉는 한탄이나 공염불로 들리지 않길 바랐다. 이건 구체적으로 근거가 있는 만행이며, 알고서 그러고 있다면 개새끼고 모르고 있다면 병신 새끼들의 시가행진이다. 하루가 채 되지 않는 가출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방문을 굳게 닫고 소음공해가 들어오지 않는 방 한 칸에서 잠을 자는 일이 전부였다.
‘우리’라는 말이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숙하지도 않았던 어느 한때를 떠올리면 문득 아득해진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 보니 맞은편에 놓인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군대를 제대하고 시작했던 회계사 공부에 쓰인 책들과 아마 그 무렵부터 입덕했던 메이퀸의 굿즈가 차곡차곡 먼지를 먹어가고 있었다. 고시 공부를 시작할 때 매 순간 경쟁을 하듯 조급함을 느껴야 진도가 나간다는 생각에 닭장처럼 커다란 강의실에 들어가길 자처했다. 그때 학원에서는 빽빽하게 모인 사람들의 체온으로 달궈지는 교실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한 겨울에도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었다. ‘우리’라는 말은 분명 대단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으나, 거기 모인 사람들 하나하나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철저히 개인으로 존재했고 우리가 하루 일과 대부분의 시간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고 자부하여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일삼을 여유란 없었다.
코로나가 터졌고 학원에서 독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얼굴은 알고 있으나 이름은 모를, 학원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가끔 생각났다. 그 후 공부를 그만두고 친구에게는 하지 못했던, 내가 수험생활을 그만두게 된 내밀한 이유에 대해 누나에게만 이야기한 적 있다. 사실 나는 그때 단순히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소속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몰라, 학원에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어 소속이 불분명해진 지금 공부를 계속할 이유는 없었다고. 대학에 왔고, 군대를 제대한 다음부터 혼자서 꾸려나가야 할 내 인생에 소속 없이 몰입할 자신이 없었다고. 학원에 남아 있던 짐을 챙기러 들른 날, 로비를 나오며 연신 뒤를 돌아보았지만 나를 붙잡거나 욕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1년 반의 수험생활은 그렇게 고요하게 막을 내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라는 말에 흥분하던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동기는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이벤트를 계획하고, 실천할 여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스피커의 굉음에 뭉개져가던 말들과 궁핍한 사유의 흔적을 뒤엎기 위한 과격한 행동이 의지할 전부가 아니었을까. 인생에 러닝메이트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의 트랙에서 다른 이를 위한 경주로 애꿎은 힘만 뺀 나를 용서할 수 있다면, 아빠를 원망할 이유 또한 없다. 무언가에 미치도록 몰두하던 순간을 뒤로하고 이제 새롭게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야 할 아빠의 부담감을 이해 못 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는 아빠가 출처 모를 스피커에서 나오는 리듬에 자신의 심장 박동을 억지로 맞추기보다, 아빠 자신의 생체리듬과 엇비슷한 주기를 가진 친구를 찾길 바랄 뿐이다.
나보다 먼저 메이퀸에 입덕했던 이모도 메이퀸의 팬클럽 ‘룩’의 정식 회원은 아니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나는 멤버십은 물론 포토카드의 드래곤볼을 달성하기 위해 수 십장을 앨범을 샀고 때마다 출시되는 시즌별 굿즈를 전부 수집했다. 어느덧 더 열성적인 팬이 되어있는 내게 이모는 자신은 그저 짤이나 직캠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지만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메이퀸의 7주년 콘서트 스트리밍 티켓을 공유했을 때 그녀의 표정이란. 변진섭과 신승훈부터 메이퀸에 이르기까지 애정을 쏟는 대상이 시대와 트렌드에 맞게 변화를 거듭하는 동안, 이모는 자신의 관심을 받아 마땅한 대상을 찾는 안목이 생겼고 그것을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감함을 얻은 듯 보였다.
그러나 아이돌 음악은 그저 그런 댄스 음악으로 치부하며, 좋아하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아야 할 것들에 대한 규정을 내리기 급급했던 나로서는 메이퀸에 대한 입덕계기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하나 둘 굿즈를 사 모으는 것으로 내가 그들에 얼마나 몰입하고 애정이 있는지를 과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나는 그런 나를 대신해 회계사 공부를 때려치우던 당시와 맞물렸던 입덕시기로 말미암아 그 이유를 짐작했고, 나는 그것이 꽤 합리적인 의견이라 생각했다.
“외로웠나 보지.”
메이퀸은 거대한 팬덤을 가진 글로벌한 그룹으로 성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들이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팬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는 마이너한 계층, 약자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팬클럽을 동원해 힘자랑을 하며 으스대지 않았고 ‘룩’은 그런 그들의 음악 안에 담긴 메시지가 건전하게 퍼져나가는 일에 동참했다. 간간이 들리는 기부 소식이나 공식 석상에서의 개념 발언보다 그들의 가치를 가치있게 만드는 힘은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팬들에게서 나왔다. 룩은 메이퀸의 이미지가 손상을 입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방어했지만 그들이 가진 공격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아티스트와 이루어지는 내밀한 소통 앞에 가상의 적을 상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몰입한 상태였다. 소속감에 대한 나의 판타지를 우회하여 지적한 누나의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 그것이 설령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더라도 기꺼이 속고 싶을 만큼 무언가에 몰두하여 보내는 인생이, 외로울 틈도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는 여전히 대단하다고 생각하니까.
여의도에 사는 전략적 막말론자들은 그런 판타지를 제멋대로 해석해 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로 어림잡아 그 사람을 함부로 여겨도 될 빌미를 제공받았다고 기뻐하겠지만, 그건 당신과 당신 친구들만의 착각이다. 당신이 누군가가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를 파탄 내는 동안 당신이 자부하는 당신 팬덤의 결속력에도 녹이 슬고 있으니 언젠가 당신의 스피커 앞에 앉아 환호성을 보내던 사람들이 야유를 퍼부을 때, 나는 피 흘리고 선 당신 옆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사랑을 보라.’
당신이 누군가를 필요에 따라 이용하듯 그 누군가도 당신이 필요해서 그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라 음색은 쓰레기에, 춤선도 곱지 않는 당신이 사랑을 구걸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한 나는 이 사랑을 조심스럽게 권하고자 한다. 휴덕은 있지만, 탈덕은 없다는 말처럼, 나는 룩의 다음 정기 멤버십을 가입하지 않는 것으로 메이퀸과 잠시 이별을 선언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기꺼이 모든 것을 해주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 사랑을 쏟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사랑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도 내게 돌을 던지지 않았다. 나의 요란했던 덕질은 손때가 탈까 봐 제대로 열어보지도 못하고 책장에 고이 모셔둔 굿즈들로 마무리되었고, 조촐한 해단식은 이모의 고해성사로 시작되었다.
“사실 예전에 팬클럽까지는 아니고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적 있는데. 내 생각이랑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어. 상처를 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다음부터 커뮤니티는 안 들어가지더라.”
비닐도 뜯지 못한 굿즈에 먼지가 소복소복 내려앉을 동안 나는 가끔 외부자의 시선으로 룩의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훔쳐보곤 했다. 가창력 논란에 휩싸인 멤버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몇몇은 연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아티스트에 대한 배신이자 내부 총질로 인식하고, 적을 섬멸하기 위해 기꺼이 전사가 되었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서로가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대상을 사랑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다는 판타지가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 들었다. 드러내놓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완전한 사랑이, 그것을 위해 남을 해치지 않는 몰입과 관여란 존재할 수 없는 걸까.
다시 아빠와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방문은 열었지만 여전히 집 안에서의 활동 공간은 극히 미미했고 얼어붙은 남북 관계와 같이 온 집안에 찬바람이 쌩쌩 날리던 어느 일요일, 토익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던 내게 아빠는 5만 원짜리 지폐 2장을 건넸다. 퇴사한 이후 아빠는 새로운 직업을 갖기 위해 꾸준히 토익 시험을 보고 있었다. 아빠와 같은 시험장에 가는 것이 껄끄러웠던 나는 일부러 집에서 먼 시험장을 등록했고 그날 아침 아빠는 시험을 잘 보라는 말과 함께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올 때까지 잠잠했던 그날 아침엔, 버스에서 내려 시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비가 내렸고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나는 꽤 한참 비를 맞아야만 했다. 다행히 우산을 사지 않아도 될 만큼 거센 비는 아니었다. 쨍하고 환한 아침이 아니라, 꿉꿉하고 적적한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에게 나름의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 그다지 매끄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판타지에 의지할 만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사랑을 자신 없어 할 이유란 없지 않을까.
난 아직 메이퀸을 사랑해야 할 이유는 찾지 못해 책장 가득한 굿즈들이 거슬리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빠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하나쯤은 더 생겼다는 것에 만족하려 한다.
3부 fin.
Special Thanks To.
덕질의 묘미 중 하나는 최애의 포토카드를 드래곤볼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간 돈을 쓰지 않는 이상 자력으로 최애의 포토카드를 모으는 건 거의 불가능했고, 자연스럽게 중고나라와 당근마켓의 비대면 장터를 애용하기 시작했다. 남자인 내가 남자 아이돌을 덕질하는 건 이모와 누나만 알고 있는 대외비였고 서로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이루어지는 쿨거래의 현장은 내게 파라다이스나 다름없었다. 조악한 판타지는 메이퀸의 품절된 콘서트 실황 DVD가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으로 장터에 나온 어느 날 잔인하게 박살이 났다.
개지랄을 떨어 기어코 사기당한 돈을 받아내기까지 비단 판타지만 무너졌으랴. 울며 겨자 먹기로 트기 시작한 직거래 현장에 나갈 때마다, 없는 여자친구와 여동생을 만들어가며 내가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를 상대방에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사실 생각해 보면 현장에서 이 덩치 커다랗고 시꺼먼 남자와 거래를 한 사람들도 자신이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닐까 지레 겁부터 먹었을지 모르지.
그러다 하루는 딱 봐도 10대처럼 보이는 소녀와 거래를 하기 위해 나왔다가 거짓말을 할 타이밍을 놓치고 당황한 적이 있다. 얼굴이 화끈거리던 찰나에 소녀는 남덕인 나를 만나 반가웠다고, 자신에겐 오빠들이지만 나에겐 형들이고 남동생인 메이퀸을 좋아해 줘서 고맙다며 포카(포토카드)를 교환하고는 덤으로 가져온 마이쮸와 킷캣 몇 개를 건네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시니컬한 이모는 비싼 값에 팔리고 있던 소녀의 최애 포토카드를 내가 프리미엄도 붙이지 않고 교환에 응했다는 사실에 성의 표시를 한 것뿐이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어쩐지 그것을 그렇게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후, 내가 우리 집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와 몇 번 거래를 트는 동안, 그녀와 나는 덤으로 비공굿(비공식굿즈)은 물론 커피나 아이스크림까지 나누는 덕메(덕질 메이트)가 되었고, 최애가 서로 달랐던 우리는 굿즈가 출시되면 서로에게 가장 먼저 DM을 보내며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아줌마는 내가 남자라는 사실보다 자신이 고등학생 아들을 둔 아줌마라는 점이 더 부끄럽다고 고백했지만 나는 아줌마에게 소녀와의 일화를 말해주며 아직 우리 팬덤 커뮤니티에 남아있는 존중과 배려의 표현을 담아 심심한 위로를 건넨 바 있다.
소녀여. 당신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3부 찐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