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의 지랄(4)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다소 난잡해 보이지만, 결국은 한 인간의 생애를 건축물에 비유하며 무슨 재료로 인생을 어떻게 쌓아올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구성하는 자재에 따라 같은 높이의 구조물이 서로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처럼, 빌드업은 어떤 인생에 안정감을 주지만 또 어떤 인생에는 끊임없이 불안감을 야기한다. 누구도 하찮은 바람결에 와르르 무너질 탑 같은 것을 짓고자 하지 않겠지만, 두서없이 쌓은 자재들로 높게 솟은 인생이 흔들리고 있다는 징조를 발견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주 오랜만에 재회한 윤 대리 역시 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퇴사를 한 이후 내게 지부장만큼이나 자주 연락을 해오던 윤 대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아도 내가 자신의 전화는 받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꽤 섭섭했다고. 그는 곧 퇴사를 앞두고 있다며 4개월 전 내가 퇴사를 했던 이유에 대해 돌연 캐묻기 시작했다. 입사는 나보다 선배였지만 퇴사는 후배였던 그로서는 내게 궁금한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령, 내 퇴사 이유에 자신도 포함이 되는 것인지, 그래서 본인의 퇴사 과정에서 억울하다면 억울할 일들을 겪었음에도 자신은 충분히 슬퍼하거나 분노할 자격이 없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에게 밥을 사고 싶다는 그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공짜로 해줄 생각은 없다.
생각해 보면 그의 빌드업에는 예전부터 노골적인 구석이 있었다. 앞서 2부에서도 언급한 바, 그는 자신이 퇴근을 하는 반면 내가 야근을 하는 이유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내게서 찾으며 열정과 끈기로 포장해 온 자신의 회사 생활을 내가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공공연하게 강조해왔다. 내가 회사에 들어오고 그는 얼마 되지 않아 승진을 했다. 이제 의지보다 능력을 보여주길 원하는 회사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능력을 키우기 보다 다른 사람의 능력을 깎아내리기 위한 빌드업이 전부였고. 인간적인 모욕을 당하기도 여러 번, 그런 그와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것이 한편으로 당연하겠지만 나는 그런 그가 공들여 세운 탑을 마주하는 일이 제법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와는 평일 저녁 홍대에서 만났다. 윤 대리는 이미 퇴사를 한 상태였다. 형식적인 안부 인사를 끝으로 그는 내가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캐묻기 시작했다. 부장님이 나를 몇 번이나 붙잡았는지, 또 퇴사한다고 했을 때 대표님이 나를 안아주셨는지, 누가 어떤 덕담을 해주었는지 같은 것들. 예전 직장 후배에게 굳이 밥과 술을 먹여가면서까지 확인해야만 하는 진실은 뻔하디 뻔한 것이었다. 그는 함께 일한 동료들로부터 자신이 회사에 필요한 인재였다는 점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런 윤 대리는 나를 여러 번 붙잡았던 부장님이 자신을 붙잡지 않고 보내주었다는 점에 깊은 유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자꾸 사람들이 나보고 쫓겨났다고 하는데.”
그는 중요한 시기에 자신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스스로 퇴사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지만, 말 만들기 좋아하는 누군가로부터 나는 그가 사실상 퇴출을 고지 받았다고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윤 대리는 내가 자신의 말을 이곳저곳에 옮기고 다니지 않아 편하게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본인이 내게 말하지 않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그는 과연 알고 있을까. 집이 근처였던 강 팀장은 매일같이 야근을 일삼는 나를 불쌍히 여겼고, 이따금 집 근처까지 차를 태워주며 자신만 아는 회사 동료들의 치부를 공유해 주곤 했다.
“주영이가 승원이처럼 무급으로 일했을 때, 원래 일하던 인턴 여자애가 있었거든?”
“네. 들었어요. 주영 대리가 밀어냈다고 하던데.”
“아. 주영이가 그렇게 말했어?”
나처럼 무급 계약직으로 들어왔던 윤 대리는 어느 날 부장님께 면담을 신청했고, 자신의 집이 지방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으며 학교를 다니기 위해 올라온 서울에서 어렵사리 자취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어필했다고 한다. 그의 앞에서 일하던 인턴은 강 팀장이 알고 있는 다른 회사로 추천을 받아 자리를 옮겼다고 했지만, 사실상 퇴출이었다. 강 팀장은 매사 의도를 가지고 사람에게 접근하는 의뭉스러운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가볍게 팔아넘기는 소인배가 되길 자처한 것 역시 어쩌면 내가 윤 대리처럼 회사 윗선에 대한 충성심을 절실하게 드러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효율과 능력으로 ‘개천에서 난 용’이 되었다는 윤 대리의 빌드업은 다른 누군가의 빌드업을 위해 그렇게 산산이 부서졌다.
윤 대리가 퇴사를 하고 그 자리는 내가 나간 자리를 메운 인턴이 가져가게 되었다. 입사 시기가 우리보다 늦었던 그녀는 아버지가 부장님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였고, 어느 날엔가 부장님께 면담을 신청했다고 한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윤 대리가 회사를 퇴사하게 된 시점은 그녀가 부장님 앞에서 서럽게 흐느꼈다는 그 어느 시점과 얼추 비슷하다고. 비루한 과거를 팔아가며 공들여 쌓은 탑이 다른 이의 눈물 한 방울에 의해 쏟아져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된 윤 대리로선 평소 막말을 퍼붓던 예전 직장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겠지.
소주 한 잔을 마셔도 금세 취하는 윤 대리는 자신의 퇴사 과정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바를 캐묻고 싶었던 듯 연신 술을 권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나의 침묵에 안심이라도 된 것처럼 그는 술자리 막판에 자신이 지금까지 보증금을 합쳐 대략 1억을 모았다는 사실을 수줍게 고백한 바 있다. 그의 얼굴은 술기운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울긋불긋 달아올라 있었다. 휘청거리는 그를 부축해 택시에 태웠다. 회사에서 그의 모진 말과 모욕을 들으며 지어야 했던 싸구려 미소를 장착하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주문처럼 속삭이기도 했다. 그의 새 빌드업은 이제 자신이 그다지 불행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로 이루어질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남은 고달픔을 제외한다면, 꽤 괜찮은 술자리였다.
불행은 빌드업의 좋은 재료가 된다. 곡절과 맞물려 만들어지는 위태로운 선들이 그것을 응원하게 하거나 혹은 그 자체로 주목하게 만드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불행으로 탑을 쌓고 그것을 꼭 보여주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삶의 에피소드 한 편과 막이 하나 끝날 때마다 응원을 받아야 그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윤 대리의 연극 한 편이 막을 내렸다. 나는 커튼콜을 외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에 대해 남아있던 앙금을 모두 털어버리기도 했다.
객석에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시작하는 연극 무대가 인생의 빌드업이라면, 주목을 끌지 못한 어떤 빌드업은 막을 올리지도 못하고 끝이 나는 건가. E는 그런 두려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기 위해 자신의 불행보다는 남의 불행을 무대 장치로 활용하는 E는 객석이 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텅 빈 무대를 채워줄, 자신보다 불행해 보이는 조연들이었다.
E는 직업군인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반에 들어갔고 서울에 있는 전문대를 입학해 삼군사관학교로 편입을 했으며, 현재는 대위가 되었다. 집이 가난했고 공부는 일천했으며, 게임만 일삼었던 그 애는 4년제 대학을 나와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하지 못하는 다른 동창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을 퍽 자랑스러워했고, 그 비교 대상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사를 퇴사할 때쯤, 지방에 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그 애의 송별회를 위해 동네 호프집을 찾았다. 당시 당근마켓에서 300만 원에 산 중고 스파크를 끌고 다녔던 E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튼튼하고 좋은 차가 필요해 대출을 받아 SUV 신차를 샀다고 했다. 그 애에겐 내 퇴사보다 자신이 신차를 뽑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훨씬 중요해 보였다. 나는 그때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자신감은 관대함으로 이어졌다. 그가 합리적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대출상환계획에 성실하게 호응해 준 대가로 나는 양념치킨 1마리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달 뒤, 동네 감자탕 집에서 그 애를 다시 만났을 때의 나는 몹시 망가져 있었다. 나주에서 서울까지 차를 끌고 왔다며 너스레를 떨기 시작한 E의 빌드업은 나의 허락도 없이 나의 퇴사 이유와 그 애의 신차 성능, 나의 퇴사 이후 계획과 그 애의 신차 옵션을 반죽해가며 얼기설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내게서 원하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나무위키에 수 백 번은 찾아봤을 자신의 신차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며 조용히 술을 홀짝였다. E의 연극은 보잘 것없는 조연이 대사를 까먹는 바람에 끝이 났지만, 그 애는 그걸 아쉬워하지 않았다.
“차 대출금에 왕복 기름값 계산하면. 야 나 돈 없어.”
다만 이제 수입원이 사라진 내 몫까지 혹여나 그날 술값을 내야 할까 두려웠던 E는 망한 빌드업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시작했고, 나는 100원 단위까지 분할해 그 자리에서 그 애에게 정확히 송금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같이 담배를 피우며 자신의 차를 구경하지 않겠냐는 그의 제안을 야멸차게 거절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애와 헤어지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인스타그램 알람이 떴다. E의 스토리에 수북이 쌓인 돼지등뼈와 먹다 남은 깍두기 그릇을 가린 소주 3병의 사진이 덜렁 업로드된 것이다. 집에 도착했을 때 스토리는 삭제되어 있었다. 윤 대리와 만남 이후 남아있던 어딘지 모를 고달픔의 정체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뒤로 최근 E는 내게 만나자는 연락을 거듭 해왔지만, 나는 그 애의 연락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다.
때론 극적인 순간을 만들기 위해 순조롭고 완만한 일상에 불필요한 자극을 집어넣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면 안정과 성취라는 인생의 밸런스는 무너지고, 우린 쌓아 올리는 일보다 쌓은 것이 쏟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바람이 거세지면 훨씬 민감해지고 탑이 조금 흔들리면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불안감은 고달픔이 되고, 위보다 아래를 보는 일이 더 많아진 사람에게 더 행복해지기 위해 전시한 자신의 불행이나 남의 불행은 위로 올라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된다.
만약 우리에게 빌드업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히 허락된다면, 불행 따위로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고자 하는 천박함은 우리 인생에 필요 없는 것이 되지 않을까. 늘 효율을 입에 달고 살던 윤 대리는 비효율적인 무급 계약직에서 빠른 시간 안에 돈을 받고 일하는 제대로 된 사회인이 되고 싶었을 테지. 그는 인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구제해 줘야 마땅한 불쌍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육사 출신에 비해 진급이 누락될 가능성이 농후한 E에겐 반듯하고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있음을 보여줄 시간이란 얼마 남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4년 동안 등록금을 지출하며 제 밥벌이도 하지 못하는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이만하면 꽤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결코 우리가 우리 인생을 충분히 설명하고 풀어낼 만큼 넉넉하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마케팅 공모전을 준비하는 연합동아리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경쟁PT 준비를 위해 조원들과 비대면으로 첫 회의를 가졌던 날, 간단한 자기소개로 아이스브레이킹 타임을 가지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 다 말 놓을래?”
빌드업이 관건이라는 경쟁 PT를 준비하는 사람들끼리도 빌드업을 위해 쓰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일이란. 나중에야, 이모에게 그 제안을 거절했다면 나는 사회성 부족한 찐따가 되었을 것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모는 내가 고작 21살, 22살에 지나지 않은 여자애들로부터 정치질을 당했다는 것에 분해 하는 것이라 짐작하는 눈치였지만.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빌드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지에 있다. 나는 고작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이들이 말을 편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무례해질 수 있는 사람들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가름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한정된 시간 내에 우리 인생을 조금이나마 존엄하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우리 빌드업에는 차곡차곡 무언가를 쌓다 보면 언젠가 목적한 바를 달성할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빌드업에 필요한 시간이 온전히 허락되었다는 믿음이 아니라, 어느 시점엔 이 빌드업이 온전히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 믿음은 탑을 짓기에 적당한 땅을 찾고 자재를 구하는 힘이 되며, 설령 비가 내려 공사를 잠시 멈춰야 하더라도 다시 맑은 하늘을 보게 될 것이고, 이내 공사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인생의 존엄은 촉박한 시간 내에 명확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불명확한 시점에 적어도 지금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실천으로 옮길 때 시작된다. 빌드업도 마찬가지다.
구태여 반말을 하지 않아도 어느 시점엔 서로의 의견을 캐주얼하게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 남과 견주지 않아도 내 인생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며,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것을 알아줄 것이라는 확신. 서두르지 않아도 어느 때와 장소, 사람을 만나면 나의 기량을 충분히 인정받을 것이라는 희망. 그 모든 불투명한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존엄한 인생을 보다 존엄하게 만드는 것이 빌드업이라면, 나는 이제 그것이 고달프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화는 그가 은퇴를 번복하고 7년 만에 만든 작품으로, 그의 자전적 스토리가 응축되어 있다. 이 빌드업이 성공적이었는지 실패했는지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빌드업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완성해가는 그의 빌드업처럼 우리 인생을 남들에게 소개하고 설명하며 이해시키는 일 역시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허락할 만큼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 인생의 빌드업도 시간의 구애를 받아야 할 만큼 가치 없는 것이 아니니까. 언젠가,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언젠가, 복잡하고 지랄 같은 우리 이야기에 세상이 먼저 귀 기울이는 날이 오겠지.
fin.
Special Thanks To.
이모부를 이모부라 직접 부르는 일도 매형을 매형이나 형이라 부르는 일은 어쩐지 낯간지러웠고, 대신 나는 그들 몰래 그들을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 이모에게는 이모부를 언급할 때 ‘신랑’. 누나에게는 매형을 ‘오빠’로. 어느 날 우리 가족이 된 두 남자는 내게 너무 갑작스러운 존재였고, 나는 그들을 그렇게 언급하는 것이 편했다.
누나와 매형이 결혼한 지 어느덧 4년째지만 그는 아직 내게 말을 놓지 않고 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이제 가족이 되었으니 어서 말을 편하게 하라며 종종 매형에게 압박 아닌 압박을 주지만, 멀리서나마 지켜보기로 늘 유순하고 고분고분했던 그가 꿋꿋이 존대를 이어오는 일이란. 내심 그가 계속 나를 승원 씨라고 불러주길 바랐던지라 그가 나만큼이나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에 신중하다는 점이 퍽 고마웠다.
이모부는 무던한 사람이었고, 나는 표현에 인색한 이모부를 어려워했다. 당신께서도 그것을 어느 순간 알아차리셨는지, 내가 이모를 찾아가면 가벼운 인사를 끝으로 서재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셨다. 그러다 저녁을 먹지 않고 이모 집을 불쑥 찾은 어느 날이었던가. 곧장 방으로 들어가실 줄 알았던 이모부는 주방에서 내 저녁거리를 만드는 이모 옆에서 소고기를 구우셨고, 그 다음번엔 손수 과일을 깎아 주셨다. 내가 맞다면 이모부가 이모랑 결혼했던 건 2000년. 이모부는 표현에 인색하시지만 적어도 표현을 서툴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대략 20년이 걸렸고, 나는 미약하게나마 천천히 쌓여온 그와 나 사이의 우정이 지금으로부터 20년 후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언젠가 이모부를 이모부라, 매형을 매형이라 편하게 부르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빌드업은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내게 섣불리 들이대지 않는 그들의 빌드업이 좋다.
4부 찐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