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casso Of Jazz, 뉴욕으로 향하다.

모던 재즈에서 현대 재즈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재즈 장르는 없다.

by XandO

어린 마일스는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의 비밥을 찾아 뉴욕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는 곧,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서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는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은음을 연주하기를 바랐지만

마일스, 자신은

더 느리게, 더 적게,

그리고 그 안에서

중저음의 선명한 멜로디로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원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쿨재즈와 모달 재즈를 통하여

자신만의 음악적 방향성을 새로운 사운드로 구체화시켰다.

더 적은 개수의 음표와

더 많은 개수의 쉼표를 사용하여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킨 재즈의 피카소로 거듭 난다.


그는 더하기보다 빼기에서

더 큰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예술의 가장 아름다운 상태는

더 이상 채울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닌

더 이상은 아무것도 뺄 것이 없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을 찾아,

자신만의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Blue In Green - Miles Davis


마일스가 아직 고등학생이던 1944년,

당시 가장 핫했던 빌리 엑스타인(Billy Eckstine)의 빅밴드가

마일스의 고향인 세인트루이스로 순회공연을 온다.

이 밴드에는 당대 최고의 모던 재즈 혁명가들이 포함되어 있는 밴드였다.

그리고 어린 마일스에게 운명의 여신이 손짓을 한다.


빅밴드의 트럼펫 연주자 중 하나가 갑자기 아파서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자,

현지에서 실력 있는 어린 트럼펫 주자를 급히 찾았고

그때 추천받은 사람이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였다.

마일스는 그 무대에서 알토 색소폰의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트럼펫의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가 연주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듣게 된다.


그날,

그들이 연주한 빠르고 복잡한 화성의 '비밥'은

마일스의 영혼을 송두리째 사로잡아 버린다.


공연이 끝나고 밴드는 다음 도시로 떠났지만,

마일스는 그날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는 학교 공부애도,

로컬 밴드 활동에도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비밥의 열병이 시작된 것이다.

그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새로운 인생 목표는

음악이나 재즈를 배우겠다는 추상적인 상상을 너머

"뉴욕에 가서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를 다시 만나는 것"이라는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맹목적인 꿈을 꾸게 되었다.

마일스는 자서전에서 당시를 회상한다.

"나는 옷을 입은 채로 바로 짐을 싸서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고 말했을 정도로 그 열병은 대단했다.


마일스의 할아버지는 회계사이며 농장주였고

마일스의 아버지는 부유한 치과 의사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우아한 상류층 여성이었기에,

자신의 아들이 단순히

"재즈를 연주하러 뉴욕 클럽에 가겠다"라고 하는 것을 허락할 리는 만무하였다.

마일스는 뉴욕으로 가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명분으로

줄리어드 음악원(The Juilliard School,

당시 명칭은 Institute of Musical Art) 입학을 선택한다.

그의 어머니는 마일스가 클래식 음악가가 되길 원했기 때문에

줄리어드 진학을 찬성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지지했기에

학비를 지원해 주기로 한다.


1944년 9월,

마일스는 줄리어드에서 공부하겠다는 명목으로 뉴욕행 기차에 올랐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줄리어드가 아닌

맨해튼의 52번가(재즈 클럽들이 모여 있는 거리)에서

찰리 파커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마일스는 뉴욕 도착 첫 일주일 만에 학비를 다 털어 찰리 파커를 찾아냈고,

낮에는 줄리어드에서 클래식 이론을 배우고

밤에는 재즈 클럽에서 잼 세션을 하며

그의 전설적인 재즈 커리어가 시작된다.


Now's The Time - Charlie Parker


어린 마일스 데이비스가 뉴욕에서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를 만나

처음으로 전문적인 스튜디오 녹음에 참여한 대표적인 결과물은

1945년 11월 26일에 이루어진 '사보이(Savoy) 레코드' 세션이다.

이 녹음은 재즈 역사상 '비밥(Bebop)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알린 기념비적인 세션이며,

당시 마일스는 19세의 풋내기 트럼펫 연주자로 참여했다.


이 기념비적인 앨범의 < Now's The Time >에서 뉴욕 초기시절,

아직 어린 마일스의 풋풋한 트럼펫 솔로를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

이 1945년 사보이 녹음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비밥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음악적 목소리를 찾아가는

첫 공식적인 발자국이 된다.

당시 마일스는 디지 길레스피의 눈부시게 화려한 테크닉과

찰리 파커의 복잡한 화성을 따라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이 경험은 훗날

그가 '쿨 재즈'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하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된다.


마일스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디지 길레스피는 이미 트럼펫 연주 테크닉의 정점에 올라 있었다.

비밥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빠르기와

초고역대의 고음(High Note)을 요구하는 최신 스타일의 재즈였다.

디지의 스타일은

화려하고, 높고, 빠르고, 폭발적인 연주의 극치였다.

그에 반해 어린 마일스의 스타일은

아직 미숙했고, 안정적인 중음역대(Middle Register) 위주로 연주했으며,

화려한 기교가 디지나 찰리 파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마일스는 찰리 파커의 밴드에 합류하여

매일 밤 디지의 연주를 들어야 했고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며 비교당해야 했다.

엄청난 비교 대상의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마일스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와

파커가 요구하는 소리 사이의 괴리 때문에 늘 초조했다.


Koko - Charlie Parker


1945년 11월, 사보이 레코드 녹음 세션에서

파커는 <Koko>라는 곡을 녹음하기로 결정한다.

이 곡은 기존의 [ Cherokee ]라는 곡을

당시 비밥 연주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카운트팩트 기법으로 연주한

역사상 가장 빠르고 복잡한 비밥 곡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찰리 파커는 마일스에게 곡의 오프닝 테마(멜로디)를

자신과 함께 유니즌(Unison, 같은 음을 연주)으로 연주할 것을 요구한다.

마일스는 너무 빠른 템포와 복잡한 리듬을 따라가지 못했고,

녹음은 거듭 진행됐지만

마일스의 연주는 박자가 흔들리고 음정이 불안정하여

전혀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결국 디지 길레스피가 나선다.

디지 길레스피는 원래 그날 세션에 피아니스트가 없었기 때문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마일스가 곤혹스러워하자,

디지가 피아노 건반에서 일어나 트럼펫을 든 것이다.


그리고,

디지는 파커와 함께 폭발적인 트럼펫 연주로 완벽하게 오프닝 테마를

단 한 번에 처리해 버린다.

그리고 이어진 트럼펫 솔로까지 완벽하게 소화한 후,

다시 피아노로 돌아가 밴드의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이 순간,

자신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무대에

우두커니 서 있어야 했다.


훗날 마일스는

"나는 스튜디오에서 거의 울 뻔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연주가 끝날 때까지

멍하니 서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라고 회상했다.


이 '코코 사건'은 마일스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이 되었다.

그는 디지처럼 빠르고 높게 연주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 길은 이미 디지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깨달았다.


마일스는 '속도' 대신 '여백'을,

'화려한 기교' 대신 '절제되고 명상적인 톤(Tone)'을 추구하기로 결심한다.


이는 훗날 재즈의 판도를 바꾼

'쿨 재즈(Cool Jazz)'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Boplicity - Miles Dav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