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Bop의 문이 열리다.

Funky Jazz의 시작

by XandO

1950년대 중반에 새롭게 나타난 하드 밥( Hard Bop )은

비밥과 쿨 재즈 이후 등장한 모던 재즈의 새로운 스타일이다.
이 스타일의 출현을

이전 스타일에 대한 반작용적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견해도 있지만,
보다 포괄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당시 재즈 음악가들의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실험 의지와

미국 사회의 변화가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음악적, 사회적인 새로운 표현 방식에 대한 욕구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또 다른 음악적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는 해석이다.


1940년대의 비밥은

빠른 템포와 복잡한 화성 진행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연주자와 감상자는 고도의 테크닉과 복잡한 이론적 이해를 필요로 했다.
이 과정에서 음악은 점차 난해해졌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마니아층을 제외한 일반 대중과의 거리는 멀어져야 했다는 비판이

1950년대 들어 여기저기에서 제기된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재즈계는

블루스와 가스펠의 요소를 하드밥이라는 새로운 스타일로 다시 끌어당겼다.
감정의 표현은 비밥에 비해 확실히 선명해졌고,

멜로디와 리듬도 비밥에 비해 보다 명료한 형태로 정리되었다.
강한 리듬과 대중적이고 자연스러운 그루브가 강조되면서

일반 대중들과의 접점도 넓혀갔다.


한편, 비밥 이후 확산된 쿨 재즈는

절제된 음색과 서정적 감성에 기반한 스타일이었다.

편곡에 의존하여 이성적인 감각을 강조했으며

감정적 표현이 억제된 성향의 음악으로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한 재즈 스타일이다.


하드 밥은 이러한 성향과도 다른 지점을 지향했다.
서부 지역의 음악가들과는 달리

뉴욕의 연주자들은 보다 직접적이고 강한 열정의 표현을 중시했다.
즉흥 연주가 지닌 열기와 강도에 다시 주목하며

재즈의 열정적인 생동감을 회복하려 했다.
이 때문에 하드 밥은 쿨 재즈와도 대비되어

‘이스트 코스트 재즈’라는 이름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하드 밥은 1950년에 들어서면서

블루스와 가스펠의 기반 위에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새로운 재즈 흐름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Moanin' -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


1958년 블루노트에서 발매된

<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 > 앨범의 타이틀곡 [Moanin’]은
하드밥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곡의 멜로디는 매우 간결하고 단순하다.
여기에 콜 앤드 리스폰스(Call-and-Response) 형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교회의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곡 전체에 소울 풀한 분위기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런 특징은 비밥과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비밥이 복잡한 이론과 높은 난이도의 연주 테크닉을 중심에 둔 음악이라면
하드밥은 보다 직접적인 감정과 대중적 소통을 중시했다.

[Moanin’]은 이런 흐름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곡으로
하드밥 스타일을 상징하는 대표곡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하드 밥이라는 명칭 때문에

하드 밥이 비밥보다 더 강하고 거칠 것이라는 오해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하드 밥은 비밥적 성향이 더 극단화된 음악이 아니다.

하드 밥은 비밥보다 더 명확한 멜로디와 대중적인 리듬 요소를 그 중심에 둔다.
블루스와 가스펠적 요소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며

음악은 보다 콜 앤 리스판스를 이용한 직관적인 구조와

간결하고 선명한 주제를 중심으로 연주되었다.

이 과정에서 리듬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다.
다양한 이국적 리듬과 흑인 대중음악의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드럼의 존재감은 이전보다 눈에 띄게 커졌다.

이 변화는 연주자 구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하드 밥의 대표곡으로 자주 언급되는 [ Moanin’ ]의 리더는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이다.
그는 재즈 메신저스(Jazz Messengers)를 이끌며

강한 드라이브감과 명확한 비트로 하드 밥의 리듬적 성격을 확립한다.
동시대의 드럼 명인 맥스 로치, 필리 조 존스 같은 연주자들도

하드 밥 시기에 가장 주목받던 연주자들이다.
이들은 드럼이 단순한 반주 악기가 아니라

밴드 사운드를 이끄는 축이라는 인식을

하드밥이라는 장르를 통해 재즈와 대중음악에 깊숙이 심어놓는다.

결국 하드 밥은 리듬적 요소가 핵심이 된 스타일이다.
드러머들의 창의성이 전면에 드러났고,

그 역할과 인지도는 빠르게 높아졌다.
이 흐름은 하드 밥의 사운드를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Doodlin'. - Horace Silver And The Jazz Messenger


1950년대 중반, 뉴욕의 젊은 연주자들은
비밥의 복잡한 화성과 쿨 재즈의 절제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더 직접적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표현을 찾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블루스와 가스펠이 있었고,
이 요소가 하드밥 내부에서 Funky Jazz라는 감각으로 자리 잡았다.

Horace Silver는 이 변화의 출발점에 있다.


그의 [Doodlin’], [The Preacher], [Opus de Funk] 같은 초창기 작품들은
블루스 구조, 셔플 리듬, 가스펠적 화성 진행을 명확히 짚어낸다.
복잡한 비밥 라인보다
명료한 멜로디, 반복되는 리프, 스윙하는 그루브가 중심이 된다.

이것이 재즈 안에서 “Funky”라는 의미가 사운드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1960년대 유행하여 알려진 지금의 Funk 장르와는 다르다.
당시는 교회 음악, 초기 R&B, 부기우기가 하나로 결합된
소울 풀한 블루스의 감각을 Funky라 이야기 헸다.


Funky라는 말의 유래는 서아프리카 반투어계 콩고어

lu-fuki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널리 인정된다.
이 단어는 본래 ‘체취’나 ‘건강한 땀의 냄새’를 뜻했다.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미국으로 끌려오며 이 표현이 구어 속에 남았고,
20세기에 들어 블루스, 초기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 은유적으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Funky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흙냄새 나는(Earthy), 본능적이고 꾸밈없는 감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리 잡는다.
음악에서는 특히 강한 블루스 정서와

거칠지만 생명력 있는 연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 사용됐다.
즉, 듣는 이를 자극하는 ‘날것 그대로의 진실한 표현’을 칭찬하는 말이 된 것이다.


1950년대에 이 개념은 교회 음악의 정서, 블루스, R&B 그루브가 맞물리며
강렬하고 소울풀한 리듬을 지향하는 연주를 설명하는 용어로 발전했다.
비평가들은 이런 흐름을 ‘Funky Jazz’라 부르기 시작했고,
하드밥 안에서 블루스·가스펠적 분위기를 강조하는 스타일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정착한다.

이후 1960년대에 들어 제임스 브라운이 주도한 독립적 장르인 Funk로 이어지며
또 다른 음악적 세계를 만들어냈다.

결국 Funky는 원초적 체취를 뜻하던 단어에서 출발해,
억눌리지 않은 솔직한 감정과 깊은 블루스 정서를 상징하게 되었고,
하드밥 시대에는 재즈가 가진 소울과 뿌리를 회복하려는 흐름을 대표하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Mercy, Mercy, Mercy - Cannonball Aderley


Horace Silver가 Funky Jazz의 틀을 만들었다면
Cannonball Adderley는 그 틀을 대중음악의 영역까지 확장한 주역이다.

Adderley는 따뜻하고 풍부한 알토 색소폰 톤을 바탕으로
가스펠과 R&B적 색채를 첨가해 Soul Jazz라 불리는 스타일로 발전시킨다.

대표곡 [ Mercy, Mercy, Mercy ],
그리고 그의 콤보 사운드는 당시 라디오와 클럽을 통해 퍼져나갔다.
Funky Jazz가 하드밥 내부에 깊게 뿌리내린 내면적 정서였다면,
Adderley는 이를 더 넓은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Soul Jazz로 발전시킨 것이다.

간단한 코드 진행과 블루스 기반의 선명한 멜로디

그리고 반복되는 느긋한 리듬 패턴에 가스펠풍의 찐득한 감정 표현까지

대중들에게 재즈의 매력과 예술성을 모두 전달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선물꾸러미 같은 창작물이었다.

게다가 Adderley는 연주자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입담을 가진 MC였고,
공연에서 청중에게 친근하게 설명을 곁들이며
재즈를 하나의 “몸으로 즐기는 음악”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Funky Jazz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