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조 Funky 다!
호레이스 실버는 어린 시절부터
카보 베르데 이민자 출신인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이
저녁마다 동네에 모여 연주하던
카보 베르데( Cabo Verde )의 전통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자연스럽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카보 베르데의 음악적 유산은 그의 음악적 배경에 깊은 뿌리가 되었고
이러한 이국적인 리듬과 멜로디는
그가 재즈에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음악적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융합하는 기반이 된다.
카보 베르데는 아프리카 대륙 서쪽의 대서양에 위치한
노예무역의 중요한 경유지이자,
포르투갈 식민 지배를 겪으며 형성된 아프리카와 유럽의 문화가 뒤섞인
디아스포라 정서를 대표하는 섬나라이다.
이러한 배경은 호레이스 실버의 음악에
고향을 떠난 이들의 애환과
삶의 애환을 달래기 위한 여흥이 담은 정서,
즉 애잔함과 춤추고 싶은 리듬을 동시에 담고 있다.
호레이스 실버는 재즈라는 장르를 통해 이러한 다문화적 감성을 표현한다.
그의 대표곡 [ Song for My Father ]는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직접적인 헌사이다.
호레이스 실버가 남긴 많은 인터뷰에서
그는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 웅크리고 앉아 밤새 들었던
아버지의 카보 베르데 민속음악의 영향이 크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가장 직접적인 예는 [ Song for My Father ](1964)이다.
이 곡의 베이스 라인은 전형적인
카보 베르데의 전통음악인 모르나(Morna) 계열 리듬에서 착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 전체를 통해 떠나온 고향을 향한 존경과 향수를 차분하게 담아낸다.
하드 밥 안에서 이렇게 개인적이고 민속적인 정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사례는 많지 않다.
1950년대 초, 재즈 신에서는
비밥의 극단적으로 복잡하고 지나칠 정도로 지적인 성향과
쿨 재즈의 너무도 절제된 차가움에 대한 반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시점에서,
호레이스 실버는 아트 블레이키와 의기투합한다.
1953년, 뉴욕의 클럽을 중심으로
두 사람은 트럼페터 클리포드 브라운, 색소포니스트 루 도널드슨,
그리고 베이시스트 컬리 러셀 등과 함께 연주하며 새로운 사운드를 실험했다.
이 공동의 비전을 바탕으로,
호레이스 실버와 아트 블레이키는 밴드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재즈 메신저스(The Jazz Messengers)'라 명명하고 공동 창립한다.
그들의 목표는 대중의 감성과 재즈의 뿌리에 호소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재즈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호레이스 실버가 작곡한 The Jazz Messengers의 음악은
강한 백비트와 춤추기 좋을 만큼 흥겨운 리듬을 재즈에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재즈를 다시 '뜨겁고' '대중적인' 음악으로 되돌리려는
하드 밥의 핵심 목표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다.
호레이스 실버는 명실상부한 ‘펑키(funky)’ 그루브의 창시자이다.
흑인 교회의 예배 음악, 블루스, R&B의 흐름을 재즈의 구조 안으로 가져와
자신만의 독특한 그루브와 멜로디의 중심을
그들만의 감성과 정서적 어법으로 다시 세우려는 시도를 완성시킨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방향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곡 중 하나가
1955년 발표된 [ The Preacher ]이다.
설교자라는 제목처럼
곡의 분위기가 마치 흑인 교회에서 설교를 하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듯한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스펠적 진행과 블루지한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다.
이는 실버가 추구하던 ‘소울 재즈’의 초기 형태를 들려주는 전형이다.
호레이스 실버의 컴핑은 짧고 명확하며 리듬이 또렷하다.
코드를 길게 눌러 화성적 배경을 제공하는 방식보다,
짧은 블록 코드로 리듬을 감각적으로 밀어붙이는 패턴이 중심이었다.
이를 느끼기 좋은 음반은 < Blowin’ the Blues Away〉(1959)이다.
타이틀곡부터 [ Sister Sadie ]에 이르기까지,
피아노가 리듬 섹션의 일부처럼 들릴 정도로 타악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다.
이런 스타일은 이후 바비 티몬스를 축으로
레드 갈런드, 시더 월튼 같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실버의 작곡 방식은 언제나 선명했다.
멜로디는 복잡하지 않고, 반복적 형태를 마치 Riff처럼 자주 사용한다.
이 접근은 청중이 곡의 흐름을 빠르게 기억하게 만들었다.
다른 모든 곡들이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 대표적인 예는 [ Doodlin' ](1954)이다.
짧은 반복 구절로 이루어진 이 곡은
단순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균형감이 뛰어나며,
솔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방식 때문에 그의 작품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은 물론이고 감상하는 청중에게도,
누구든 직관적인 연주와 감상이 가능했다.
그의 음악경력을 통틀어
호레이스 실버의 작업 방식은 즉흥연주보다는 작곡과 편곡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확장해 나갔다.
모든 앨범을 거의 자작곡으로 구성했고,
그 안에서 리듬과 선율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까지 세심하게 설계했다.
“Doodlin’”, “The Preacher”, “Senor Blues”, “Peace” 같은 곡들이
지금도 다양한 편성으로 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에 의해 재해석되어 연주되는 이유도 이 부분과 연결된다.
구조가 명확하고, 연주자가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더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솔로 역시 같은 성향을 보였다.
리듬의 정확한 배치, 간결한 프레이즈, 곡의 주제를 확장하는 방식이 중심이었고,
과한 기교를 앞세우지 않았다.
싱코페이션을 활용한 라틴적 분위기, 블루스적 어법, 셔플 리듬이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하드밥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견고한 질감으로 표현했다.
이런 방식은 동시대 피아니스트들에게 기준처럼 인식되었고,
이후 세대가 호레이스 실버의 연주를 분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밴드 운영에서도 호레이스 실버의 태도는 뚜렷했다.
아트 블레이키가 새로운 젊은 연주자들을 수시로 영입하며
혁신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냈다면,
호레이스 실버는 곡의 틀과 편곡을 중심에 두고
각 멤버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집중할 수 있는 음악적 환경을 유지했다.
이 덕분에 호레이스 실버 밴드에 참여한 젊은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를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직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재즈 메신저스를 맡았던 시기에도 이런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이후 그의 퀸텟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졌다.
그래서 연주자 구성이 달라져도 밴드의 음악적 색채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흐름까지 고려한다면
호레이스 실버의 음악 세계는
몇 가지 시대적 유행의 나열이 아니라,
곡을 매개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디아스포라의 정서적 뿌리로부터 시작된
하드밥 거장의 음악적 신념이자
그가 재즈를 바라보는 세계관의 표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