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리뷰
기본 정보
장르 범죄, 액션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62분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 레지나 홀, 테야나 테일러, 체이스 인피니티
시놉시스
자유를 외치는 혁명가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16년이 흐른 뒤, 후유증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무너진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딸 ‘윌라 퍼거슨’(체이스 인피니티)뿐. 자신의 몸도, 딸과의 관계도 엉망진창인 삶을 살아가던 중 과거의 숙적이었던 ‘스티븐 J. 록조’(숀 펜)가 딸을 납치한다. 딸을 찾기 위해서 옛 동료들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오래된 동료들은 만나기조차 쉽지 않은데… 지나온 시간만큼 더 지독해진 숙적을 상대로 끝나지 않는 싸움을 끝내기 위한 뜨거운 추격이 시작된다!
혁명 단체 French 75의 일원이었던 밥 퍼거슨. 조직을 이끌던 퍼피디아가 록조에게 붙잡혀 정보를 누설하면서 단체가 붕괴되고, 밥은 딸 윌라와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세월이 흐른 뒤 록조가 다시 나타나 윌라를 납치하고, DNA 검사로 그녀가 자신의 딸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윌라가 혼혈이라는 이유로 제거하려 한다. 밥은 목숨을 걸고 윌라를 구해내며, 두 사람은 무사히 재회한다. 이후 밥은 퍼피디아가 남긴 편지를 윌라에게 전하고, 이는 관계 회복의 계기가 된다. 밥과 윌라는 불완전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윌라는 부모 세대의 투쟁을 이어간다. 쿠키는 없다.
과거 혁명과 권력 모두 폭력과 권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관성처럼 반복되는 싸움의 허망함. 영화 제목인 'One Battle After Another'를 직역하면 끝없는 전투다. 부모 세대는 자식에게 과오를 남기고, 다음 세대는 원치 않게 그 언어와 전투를 이어받는다. 한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 또 다른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 그러나 낡은 혁명의 언어는 더 이상 오늘의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진짜 혁명은 과거의 전투가 아니라 지금 사랑하는 이들과 현재를 지키고, 다음 세대를 위해 살아내는 일에 있음을 영화는 말한다.
과거에는 명확한 적과 명분이 존재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투쟁은 관성적으로 이어진다. 관성은 물체가 외부 힘의 작용 없이 정지 또는 운동의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을 말한다. 이 개념이 인간의 행동에 적용되면,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그래왔으니까." 왜 싸워야 하는지 잊은 채, 질주하는 날들의 반복이다. 체제를 뒤엎든 지키든,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가 다가올 뿐이다. 이 얼마나 공허한가.
차량 세 대가 도로를 달린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도로 위를. 목적지는 없다. 결국 기성 세대는 다음 세대와 부딪히고 스스로를 지켜낸다. 더할 나위 없이 상징적인 장면.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로 꼽힌다면 그 가장 큰 이유가 될 장면이다.
부모 세대가 자식에게 유산을 떠넘기고, 자식 세대는 그 유산을 감당해야 하는 굴레. 부모는 자식마저 자신들의 연대 혹은 투쟁의 일부로 간주하고, 자식은 그 기대와 유산 속에서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윌라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퍼피디아에게 혁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것이 자식일지라도. 만삭의 몸으로 총을 난사하는 장면은 그 집착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록조에게 윌라는 지난날의 실수로 인해 남겨진 치부이자, 미래를 위해 제거해야 할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오직 밥만이 달랐다. 윌라가 태어난 뒤 그는 혁명을 멈추고 육아에 몰두했으며, 윌라가 납치되었을 때도 목숨을 걸고 구해냈다. 사실 밥은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뒤를 따라다니다 홀로 남은 윌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러나 밥의 진심은 윌라에게 전해졌고, 부녀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윌라가 가장 필요로 하던 순간, 밥은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결국 윌라는 퍼피디아의 길을 잇듯 혁명의 길로 나아간다. 혁명은 멈추지 않고 대물림될 것이며,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밥과 같은 존재, 즉 묵묵히 곁에서 사랑하고 지켜주는 인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영화가 제시하는 혁명의 본질은 ‘현재를 살아내는 것’에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하루, 가족과 미래를 지키는 선택, 세대 간 대화를 시도하는 태도. 이런 작은 일상의 결단들이야말로 과거 세대가 남긴 투쟁의 무게를 감당하는 방식이다. 이제 혁명은 폭력의 언어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새롭게 정의된다.
밥은 과거의 이상과 실패에 깊이 물든 존재이면서도, 여전히 현재의 삶을 지탱하려 애쓰는 인물이다. 무너진 조직, 동료의 배신, 끝내 지켜내지 못한 이상. 그는 스스로를 혁명가가 아닌 한 명의 아버지로 재정의하려 한다. 혁명의 언어와 폭력의 역사가 그를 따라다니지만, 밥의 서사는 딸 윌라를 위해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수렴한다. 그는 영웅이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이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과거의 무게를 지니면서도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지금 눈앞의 관계와 사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가장 인간적이다.
영화는 윌라라는 인물을 통해 새로운 언어와 전략으로 저항을 재구성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윌라는 부모 세대가 남긴 상처와 이념의 짐을 떠안지만, 그것을 반복하지 않고 새롭게 변주할 수 있는 주체로 제시된다. 이는 세대 간 갈등을 넘어, 과거의 실패와 좌절을 어떻게 미래로 옮길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투의 반복 속에서, 다음 세대가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다시 써낼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