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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 토드 필드

Tar (2022)

by 인문학애호가

명배우 "케이트 블랜쳇"이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1악장 초반부에서 트럼펫 솔로가 끝나고 "Tutti"를 지시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 아카데미를 제외하고 다양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런닝타임이 무려 2시간 35분이나 되는 이 작품은 예술영화가 분명하기는 하지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정상에 있을때는 항상 겸손하고 조심해야 한다!!"


영화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라는 음악계 최고의 자리를 의미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정상에 있을때는 겸손하고 조심하라"는 말이 음악계를 떠나서 모든 분야에서 동일하게 의미가 있음을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단 한 명을 위한 자리,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수많은 경쟁들. 단지 실력과 재능만으로는 오를 수 없는 자리. 일단 오르면 그 밑에서 달려드는 수많은 천적을 누르고 제거해야 가까스로 보존할 수 있는 자리. 천적 제거의 수단으로 어떠한 방법도 동원될 수 있다는 비정함. 도덕이나 윤리따위는 책에서나 만날 수 있다는 헛소리라는 지독한 현실. 이 영화는 이런 사실을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라는 정상에 오른 "리디아 타르"라는 여성 지휘자를 통하여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일반 관객이 감상하기에는 클래식 음악의 현장에 너무 깊숙히 들어갔습니다. 클래식 애호가가 되어야 모든 장면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곳곳에서 클래식 음악계에서 최고의 자리를 누린 음악가들의 이름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특히 "타르"처럼 현재 활동중이거나 과거에 이름을 날렸던 정상급 지휘자의 이름도 수도 없이 거론됩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구스타보 두다멜", "레너드 번스타인",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사이먼 래틀", "리카르도 무티" 등등. 그리고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의 지휘 장면이 수시로 등장합니다. 물론 유명한 4악장 "Adagietto"도 등장합니다. 녹음 상태가 매우 좋아서 전곡을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상"에서 제대로 처신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너무 나갔습니다. 아시아 변방에서 게임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고, 그 뒤에 온갖 기괴한 코스프레를 한 젊은이들이 관객으로 앉아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애호가라면 결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제로 오케스트라에서 물의를 일으킨 "샤를르 뒤트와", "제임스 레바인" (모두 영화 대사에 나옵니다) 등은 잠시 자리에서 밀려나기는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지휘봉을 잡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임 오케스트라는 말도 안되는 설정입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나락"을 표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화는 무려 12분 동안이나 "롱테이크"로 지속되는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12분이면 대사 분량이 엄청납니다. 그리고 전문적인 내용이 가득합니다. 이걸 "케이트 블랜쳇"이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해냅니다. 이렇게 "정상"에 오른 "타르"는 동성연애자로 같은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얼린 연주자 "샤론"과 부부가 되어 여자아이를 한 명 입양해서 가족을 이루고 베를린에 살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이 아니고 실제로는 드레스덴 필하모닉 입니다.) 그리고 책도 쓰고 (Tar on Tar),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정상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해야할, 내지는 계속 정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해야할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녀의 부지휘자 자리를 꿈꾸는 "프란체스카"라는 젊은 지휘자가 비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헌신적으로 그녀를 도와줍니다. 그래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니까요.


"정상"의 "타르"는 거의 독재에 가깝게 모든 일을 처리합니다. 동료 지휘자를 무시하고, 부지휘자는 나이가 많다고 나가라고 하고, 줄리어드에서는 바흐를 레슨하면서 바흐의 음악이 아닌 그의 생활의 추문을 들먹이는 남학생을 궁지로 몰아넣고, 어떻게 보면 "정상"의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력"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 즉,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는 젊은 여성 지휘자 "크리스타 테일러"의 앞길을 철저히 봉쇄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유명한 지휘자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온갖 험담을 하면서 취업이 안되도록 손을 씁니다. 그리고 앞길이 막힌 "크리스타"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을 비서 "프란체스카"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부지휘자 심사에서 "타르"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이제 어떤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대중의 분노가 올라가자 오케스트라 이사회는 더이상 이 비난을 감당할 수 없게되고 결국 "타르"를 해고해 버립니다. 그리고 원래 지휘하기로 했던 "말러"의 교향곡 5번은 "타르"가 무시했던 동료 지휘자 "엘리엇 카플란"이 맡게 됩니다. 그런데 공연 당일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공연장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악보로 지휘를 하는 그를 관객이 보는 앞에서 밀쳐 버립니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의 말도 안되는 과장된 설정이 시작됩니다.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계에서 완전히 퇴출된 그녀는 배우자와의 관계도 끊어지고, 결국 게임음악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게 됩니다. 이렇게 "정상에서 나락으로"를 표현하기는 했지만, "나락" 부분을 좀 더 현실적이고 그럴듯 하게 표현했으면 더 좋을뻔 했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케이트 블랜쳇"의 연기, 특히 지휘자의 연기는 100점을 주고도 남을 정도로 훌륭하고 빼어나다는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대배우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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