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 티 웨스트

Pearl (2022)

by 인문학애호가

엄마 : 왜 우리가 남편들을 돌보고 농장일 하는 부담을 져야 돼? 우리는 원하는 걸 어떻게 얻어?


펄 :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거야. 사랑받지 못해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어.


이 영화는 너무나 아름다운 배경음악으로 지극히 고색창연하게 시작해서 살벌한 연쇄살인으로 끝나는 일종의 슬래셔 무비 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심리 스릴러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무섭지 않고, 관객을 깜짝 놀래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살인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살인은 대낮에 진행됩니다. 살인이 낮에 진행되는 것과 밤에 진행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밤에 진행되는 것은 대체로 주변에 들키지 않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기 때문에 범죄에 가깝지만, 낮에 진행되는 살인은 충동적이고 우발적일 수 있습니다.


때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해이고, 미국에서는 스페인 독감이 막 시작된 해입니다. 미국은 앞으로 2년동안 이 지독한 감기로 무려 67만명이 죽게 됩니다. 장소는 가축을 키우는 농장이고, 이웃은 없으며, 거의 식물인간으로 의자에 앉아서 꼼짝못하지만 의식은 있는 아빠, 그런 남편을 오랫동안 돌봐왔고 농장을 보살피며 집안을 꾸려나가는 엄마, 그리고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전쟁에 참전하여 친정에서 계속 살고 있는 외동딸 "펄"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결국 있으나마나한 남편 뒷바라지하고 집안을 꾸려가느라 지치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엄마와 결혼한 지 얼마 안되는 한창때인 철부지 딸이 수시로 부딪히는 상황 입니다. 게다가 딸은 엄마의 엄격한 통제에 거의 미칠 지경입니다. 자신은 그냥 단지 사랑받고 싶을 뿐인데 딸을 가장 이뻐하는 아빠는 불구이고, 엄마는 말한마디 따뜻하게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엄마는 남의 도움조차 받는걸 싫어해서 사돈이 준 바베큐 된 돼지를 문 앞에 두고 절대로 집안으로 들이지 않아 결국 구더기로 도배가 됩니다. 이런 상황입니다.


결국 "펄"은 어떻게 해서든 지긋지긋한 "농장"을 탈출하려고 바둥거리고, 그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바람도 날 수 있고, 그 목적에 방해가 되면 그 대상이 애인이건 가족이건 모두 제거해 버립니다. 이 때 벌어지는 연쇄살인은 모두 우발적입니다. 화가 나면 못견딥니다. 거의 자신을 절망으로 쳐넣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손에는 삼지창과 도끼가 있고 앞뒤 가리지 않고 휘두릅니다. 아빠를 제외하고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습니다. 마지막 살인은 댄서를 뽑는 교회에 시누이와 참가를 하는데 엄마가 예언한것과 같이 떨어지고 시누이만 채용이 됩니다. 자신은 정말 댄서가 되어 "농장"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 기회마저 시누이에게 뺏깁니다. 살려둘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한 일을 털어놓았기 때문에 더욱 살려둘 수 없습니다. 결국 사지절단 낸 후 악어에게 줍니다. 그리고 농장으로 돌아와서 피묻은 손으로 흰 염소의 얼굴을 어루만집니다. (염소는 서양에서 악마의 상징으로 자주 나옵니다. 즉, 그녀가 악마가 되었다는 의미 입니다.) 이제 전쟁이 끝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열고 들어와서 장인과 장모의 시체가 탁자에 앉아서 구더기 천지의 돼지 바베큐를 바라보고 아내인 "펄"이 반깁니다.


이 영화는 연기파 호러퀸으로 각광받고 있는 "미아 고쓰"의 2022년 작입니다. 그녀가 영화 후반에 시누이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려가면서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는 롱테이크 장면이 압권입니다. 엄청난 대사량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비극을 얼굴 가득히 표현해 냅니다. 공포영화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명장면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집에 들어온 남편을 바라보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데, 그 때 "펄"의 얼굴에 카메라가 멈추고 반기는 얼굴에서 조금씩 조금씩 비극적인 표정으로 변할때 또한번 그녀의 연기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미아 고쓰"는 "펄" 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같은 감독과 또다른 한 편의 슬래셔무비 "X"를 찍습니다. 그리고 2년뒤 3부작을 마무리 하는 "MaXXXine"을 또다시 "티 웨스트" 감독과 찍어 호러퀸의 정점에 오릅니다. 미녀들 투성이인 헐리웃에서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지만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을 하여 결국 정점에 올랐고, 작년에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의 여주인공까지 맡았습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스티븐 스필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