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영화리뷰
2008년에 발표된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 (Blindness)"는 브라질 출신의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연출하고, 줄리앤 무어, 마크 러팔로 주연 입니다. 이 영화는 포르투갈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 (Jose Saramago)"의 대표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입니다. 감독이 원작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됩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에 어느날 갑자기 앞을 못보는 사람이 생겨나고 의학적으로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채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바이러스를 원인으로 삼아 눈이 먼 사람들을 수용소에 집어 넣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이 수용되는데 시간이 갈수록 매일 매일 눈 먼 사람들이 추가되어 수십명에 달하게 됩니다. 이 눈 먼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고립이 되고 대신 식량은 공급이 됩니다. 수용소 외부로는 나갈 수 없고, 총기로 무장한 경찰에 의하여 철저하게 고립됩니다. 탈출 시도는 무조건 사살 입니다. 이제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수십명이 수용소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최초로 눈이 먼 일본인을 진료한 안과 의사 마크 러팔로도 결국 눈이 멀게 되고, 그의 아내 줄리앤 무어와 같이 수용소에 들어갑니다. 다만 아내는 남편을 보호하기 위하여 눈이 멀지 않았는데도 장님 행세를 하며 같이 수용됩니다. 이 눈 먼 사람들의 수용소는 처음에는 깨끗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엉망진창이 되고, 화장실을 찾지 못하거나 아무도 자기가 배변 하는 장면을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아무데나 볼일을 보게되어 수용소는 점차 돼지우리처럼 변해갑니다. 이 변화의 장면을 매우 설득력 있게 담아냈습니다.
이제 수용인원이 많이 증가하고 일정한 인원으로 구성된 구획이 만들어지고, 이 구획의 대표자가 선정이 됩니다. 외부에서 식량은 이 대표자에게 전달이 되고 배분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대표자 중의 한 명이 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이제 이 총기를 든 대표자는 자기를 "왕"이라고 부르라고 하면서 수틀리면 총으로 죽이겠다고 하며 모든 식량을 자신이 배분하겠다고 합니다. 공짜는 아니고 돈이 될만한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하고 그 가치에 따라 식량을 배분합니다. 얼마 안있어 돈이 될만한 것이 없게되자 이번에는 여자를 바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먹고살기 위하여 (또한 어차피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으므로) 대부분의 여자들이 매춘에 가담하게 됩니다. 그러나 총을 든 자의 폭력성이 심해지고 결국 정상인인 줄리앤 무어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또한 강간당한 여성의 방화로 수용소가 전부 불타게 되고, 수용된 눈 먼 자들이 수용소 밖으로 탈출하게 되는데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지하던 경찰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이 장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혼돈 그 자체로 돌입하고, 수퍼마켓은 장님에 의하여 약탈이 됩니다. 줄리앤 무어는 남편과 일부 같은 구획에 있던 눈먼 자들을 모아 수퍼마켓에서 음식을 찾아내어 자신의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눈이 먼 이들이 갑자기 시력이 돌아옵니다. 모두 다시 본다라는 사실에서 큰 행복을 느끼며 영화가 끝납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본다"라는 사실입니다. "본다"라는 건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성적 판단을 하게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감각 입니다. 우리의 모든 판단은 "본다"라는 것에 우선적으로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다는 사실은 우리가 더이상 "이성적으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성"을 잃어버린 존재는 깨끗한 수용시설을 순식간에 돼지 우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총" 한자루로 자신을 왕이라고 부르라고 하며, 아무 여자나 강간하는 "동물"로 되돌아 갑니다. "총"은 권력이고, 그 권력은 가장 중요한 식량을 전부 움켜쥐고 더욱 큰 권력을 누립니다. 가장 지적 수준이 높고 이성적이어야 할 안과 의사 마크 러팔로도 아내가 눈이 정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다른 눈 먼 여자와 관계를 가집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이성"을 상실했을 때, 인간이 어떤 상태가 되는가를 매우 현실적이고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왜 눈이 갑자기 멀었는가, 정말 바이러스 때문인가, 왜 줄리앤 무어만 눈이 멀지 않았는가에 대하여 어떠한 답도 없습니다. 사실 답이 필요 없습니다. 유일하게 눈이 정상인 줄리앤 무어는 짐승화가 된 인류의 마지막 "질서"와 같은 존재입니다. 또한 정상과 비정상의 상황에서 비정상을 정의하기 위한 "비교의 대상" 입니다. 우리는 줄리앤 무어의 인간적인 대응을 통하여 나머지 눈 먼 자들이 얼마나 순식간에 미개한 동물로 돌아가게 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시력을 되찾고 모두들 기뻐하는 장면에서 돌연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 어떻게 인류를 현재까지 유지하게 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정말 "보이지 않는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나 깊은 내용을 전달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