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0이었다.
코트디부아르에게. 원정도 아니고, 중립 지역에서. 에이스 디오망데가 부상으로 빠진 코트디부아르에게.
경기가 끝나고 한동안 멍했다. 스코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 패배 안에는 한국 축구가 직면한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왜 옌스 카스트로프는 유니폼을 입고도 뛰지 못했나
이번 명단에서 눈에 띄었던 이름이 있다. 옌스 카스트로프.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귀화 선수다.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풀백까지 소화할 수 있는 선수. 그것만으로도 현재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목마른 포지션을 채울 수 있는 자원이다. 황인범이 부상으로 빠진 지금,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였다.
타이밍도 나쁘지 않았다. 이달의 선수로 선정될 만큼 3월 폼이 올라와 있었고, 직전 분데스리가 경기에서는 독일 기준 1점, 다른 리그 환산으로는 10점에 해당하는 평점을 받았다. 컨디션과 자신감이 모두 정점에 가까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는 뛰지 않았다.
발탁은 했지만 기용은 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귀화 선수를 대하는 방식이 아직도 '보여주기'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씁쓸함이 남는다.
쓰리백,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운용이 문제였다
이날 한국은 쓰리백을 가동했다. 쓰리백은 수비 안정을 위한 선택이다. 세 명의 센터백을 세우는 대신, 중원과 측면에서 조직적인 연동을 요구하는 구조다.
그런데 오른쪽 수비를 담당한 조유민의 실수에서만 2골이 나왔다. 수비 안정을 위해 선택한 포메이션에서 수비가 무너졌다. 더 당황스러운 건 그다음이다. 2골의 빌미를 제공한 조유민을 교체하고 나서도 후반에 2골을 추가로 내줬다.
문제는 포메이션이 아니라 구성이었다. 쓰리백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 패스 연결과 수비 가담이 동시에 가능한 선수들이 받쳐줘야 한다. 하지만 이날 선발로 나선 박진섭과 김진규는 그런 유형의 선수들이 아니었다. 쓰리백을 선택해놓고, 쓰리백에 맞지 않는 선수들을 중원에 배치했다. 전술적 선택과 선수 구성이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던 셈이다.
코트디부아르는 정말 그렇게 강한 팀이었나
혹자는 말할 수 있다. "코트디부아르잖아." 하지만 지금의 코트디부아르는 드록바와 야야 투레가 있던 그 팀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도 강팀으로 분류하기 애매해진 팀이고, 이번 경기에서는 공격 에이스 디오망데마저 부상으로 빠진 상태였다.
한 가지 더. 아마드 디알로, 싱가레 등 1군 핵심 자원들은 3대0이 된 이후에야 투입됐다. 폼 끌어올리기 차원의 출전이었다. 사실상 에이스도 없고, 1군 자원도 아낀 팀을 상대로 4골을 내준 셈이다.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할까.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이 결과가 한국 축구의 현재 위치를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2014 AGAIN만 아니면, 그걸로 충분한 걸까
월드컵 개막까지 2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홍명보를 교체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그가 메인 전술로 밀어온 쓰리백을 버리고 포백으로 전환하기엔 시간이 없다. 사실상 지금 가진 패로 월드컵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홍명보가 제대로 된 답을 낼 능력이 있는지, 그럴 생각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황인범.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재능들이다. 옌스 카스트로프 같은 다재다능한 자원도 있다. 선수단은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홍명보호는 늘 오답에 가까운 경기력을 내놓는다.
12년 전을 기억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은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 그가 다시 감독 자리에 앉아 있다. 역대급 꿀조라는 평가를 받는 조 편성임에도,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들이다.
2014 AGAIN만 아니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 이게 지금 한국 축구팬들이 품고 있는 솔직한 심정이다.
4대0은 스코어가 아니다. 귀화 선수를 쓰지 못하는 용기의 부재, 포메이션과 선수 구성 사이의 모순, 약해진 상대에게도 무기력했던 현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같은 인간. 이 모든 것이 한 경기에 압축되어 있었다.
2014년에 오답을 맞고도 2026년에 오답을 쓸 한국 축구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