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뭔가를 듣고, 보고, 읽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도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에 기인하는 특성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읽는 행위를 특히 자주하는 편이다. 한때는 활자중독증이 의심될 정도로, 음료수를 사거나 식료품을 살 때면 제품 뒷면에 적힌 성분표를 하나하나 다 읽을 정도였다. 하지만 읽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굳이 머리를 쥐어짜내서 있는 것 없는 것을 써내야 했고, 지금과 달리 컴퓨터가 없을 때라 수기로 써야 했는데, 가끔은 내가 쓰고도 못 알아보는 경우도 많아서 쓴다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랬던 나도 세월이 흘러 지속적인 독서 활동을 이어가던 중, 문득 그동안 읽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기억을 더듬어 나가다 보니 고대의 항아리처럼 군데군데 깨진 파편처럼 기억의 빈틈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에 따르면, 인간은 20분 뒤에 습득한 정보의 42%를 망각하고, 1시간 이후에 56%를 망각하며, 24시간이 지나면 67%의 정보를 망각하고, 약 1개월 뒤에는 79%의 정보를 망각한다고 한다. 이 이론을 '에빙하우스 망각곡선'이라고 부른다.
15년 전에 읽었던 『등대지기』라는 소설의 내용을 1번만 읽고도 대략적인 줄거리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기억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론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주인공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짝사랑했던 그녀가 어느 날 결혼 생활에서 왜 도피했는지 등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찾아보지 않으면 기억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았을 때, 읽는 것만으로는 나의 기억들을 온전히 간직하는 것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이란 단순히 책의 내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책을 읽던 순간의 감정, 특정 구절에서 느꼈던 전율, 작가의 문장이 내 마음에 남긴 울림, 그리고 그 텍스트가 내 삶과 만나면서 생긴 새로운 해석과 통찰까지 포함된 총체적인 경험을 뜻한다. 예를 들어 『등대지기』를 읽으며 주인공의 고독에 공감했던 그 순간의 나의 마음상태, 그 책을 읽던 카페의 분위기, 심지어 그날의 날씨까지도 그 기억의 일부가 된다. 이런 복합적인 경험들이 모여 나만의 독서 이력이자 정신적 자산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소중한 기억들이 시간과 함께 사라져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읽은 모든 것들을 마치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에 백업하듯 완벽하게 보존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꼈다. 읽었던 책들의 핵심 내용은 물론이고, 그 순간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과 떠올렸던 생각들, 그리고 그 경험들이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까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마치 사진첩을 들춰보며 옛 추억을 되살리듯, 언젠가 그 기록들을 다시 펼쳐보며 과거의 나와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내가 기억을 간직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첫째는 진실성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불완전한 기억으로 인해 내가 읽었던 것들이 왜곡되고, 내 마음대로 각색된 허상으로 변해가는 것을 막고 싶었다. 둘째는 나만의 취향과 추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어떤 책의 어떤 구절이 나를 울렸는지, 무엇이 나를 웃게 했는지,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아닌가. 셋째는 불완전한 기억으로 인해 만들어진 불완전한 나 자신을 좀 더 완전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내가 읽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제대로 보존되어야만, 그것들이 쌓여 만들어진 나라는 존재도 온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기록한다는 것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보존의 행위였다. 망각이라는 시간의 침식으로부터 소중한 경험들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저장하는 것처럼, 나는 내 정신세계의 풍경들을 글로 저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필요성을 느꼈음에도 내가 읽은 것들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달에 1-2권씩 읽는 책, 그리고 그 과정에서 2-3권의 책을 동시에 읽다 보니 이것들을 다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단순히 읽은 것들만 적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난 것들을 완벽하게 기록한다는 것은 한 개인의 능력만으로 가능한가 싶기도 했다.
게다가 앉아서 2-3시간씩 집중하는 것에는 재능이 없던 나의 집중력도 문제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몇 시간이고 앉아서 쥐어짜내어 무언가를 써내는 것인데,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회사 일로도 버거운 나에게 참으로 고역인 일이다.
그런 나를 위해 강제적으로라도 글을 쓰기 위해서 글쓰기 모임도 반년 가까이 나갔지만, 글쓰기 모임이 끝나기 무섭게 작가가 절필하듯이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성향적으로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읽는다는 행위로 인해 왜곡되어가는 나의 기억을 바로잡고 싶었다. 잊혀져 가면서 빈자리가 생긴 기억 사이로, 내가 무의식적으로 채우고 싶은 것들로 채우면서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들로 왜곡되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씩이라도 기록하기로 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글로 남겨두면 언젠가 다시 그 기억을 온전히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읽기만 하던 나에게 쓰기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기억의 진실성을 지키고 나만의 정신적 자산을 보존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라고 생각하며 한 줄씩, 한 단락씩 써나가려 한다.
결국 읽기와 쓰기는 서로 다른 행위가 아니라,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깨달음 자체가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