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특정 상황에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노벨상 수상자도, 세계적인 CEO도,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의 뇌는 완벽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인지적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인지적 함정에 빠지게 되면 자신의 기존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마치 색안경을 쓴 것처럼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해석한다.
인터넷 검색을 할 때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해줄 자료만 클릭한다. "백신의 위험성"을 믿는 사람은 백신의 부작용 사례만 찾아보고, 반대 입장의 사람은 백신의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만 주목한다. 같은 통계 자료를 보고도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뉴스를 보고도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보수적인 사람은 범죄 증가 통계에 주목하고, 진보적인 사람은 사회 불평등 지표에 집중한다. 둘 다 사실이지만, 각자는 자신의 세계관에 맞는 부분만 기억한다.
더 심각한 것은 똑똑한 사람일수록 이런 함정에 더 깊이 빠진다는 점이다.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하는 복잡한 논리를 구사하는 데 능숙하다. 그들의 논리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기 위한 정교한 합리화일 뿐이다.
스티브 잡스의 비극적 선택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세계 최고의 기업을 이끌던 천재 경영자였던 그는 2003년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은 즉시 수술을 권했지만, 그는 9개월 동안 수술을 거부하며 대신 식이요법, 침술, 약초 치료 등 대안 의학에 매달렸다. 자신의 직관과 신념을 맹신한 것이다.
잡스는 애플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만든 탁월한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 성공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기술과 비즈니스에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도 성공했던 그에게는 의학 분야에서도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다. 결국 암이 전이된 후에야 수술을 받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전문가들은 만약 처음부터 의학적 권고를 따랐다면 생존 가능성이 훨씬 높았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이론을 맹신하며 투자에서 큰 손실을 보기도 했다. 이론과 현실의 차이를 간과한 것이다.
인간의 뇌는 복잡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다양한 '지름길'을 사용한다. 이를 휴리스틱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유용하지만 때로는 심각한 오류를 낳는다.
우리는 소수의 사례로 전체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몇 명의 특정 집단 사람들과 나쁜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 집단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통계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샘플이지만, 우리 뇌는 이를 일반화해버린다.
기억에 생생한 사건일수록 확률을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비행기 사고는 자동차 사고보다 훨씬 드물지만,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 때문에 더 무서워한다. 복권 당첨자의 인터뷰는 기억에 생생하지만, 수백만 명의 낙첨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 들은 숫자나 정보가 이후 판단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처음에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숫자가 앵커가 되어 이후 모든 가격 판단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의 성공이 다른 영역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지능이 높을수록 이런 과신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하며,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서 판단하려 한다.
이런 인지편향들은 학력이나 지능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다. 오히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편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진정한 지능은 자신이 멍청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무지의 지"를 강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수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는 사람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린다.
이런 인지적 함정을 극복하려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찾아봐야 한다. "내가 틀렸다면 어떤 증거가 나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할 사람을 의도적으로 초대하는 것도 좋다.
인지편향을 줄이려면 자신의 사고과정을 돌아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지금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지금 편향된 정보만 찾고 있는 건 아닐까?"와 같은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함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더라도 자신이 모르는 영역에서는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대비하는 사람은 있다.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멍청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