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로 국가적 재난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제 부모님 계신 곳도 오전엔 연기가 자욱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불길이 넘어올 걸 대비해 미리 중요한 물품들을 준비해두셨다고 합니다.
'어느새 여기까지...'
불길도 걱정이었지만 연세 드신 어르신들에게 연기로 인한 호흡곤란도 큰 위험이기에 또 한 번 두려운 생각에 퇴근한 남편과 함께 모시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단연코 거절하십니다.
이제는 괜찮다는 부모님과 지금이라도 며칠 나와계셔야 한다는 저와 남편의 실랑이가 계속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동생 친구가 생각나 혹시라도 위험한 것 같으면 그 친구의 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래, 걔 친구가 있으니까 같이 오시면 되겠다.'는 생각에 부모님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덜었지만, 이런저런 어수선한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 인생은 이렇게 마지막이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사랑하지 못한 순간들, 의미 없이 보낸 시간들, 펼치지 못한 나의 꿈이었습니다.
마지막 앞에 삶과 꿈은 다시 생기를 띄고, 늘어졌던 의지는 다져졌습니다.
'그래, 지금이라도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자. 조금이라도 더 내가 원하는 순간을 살자.'
자연 앞에 무력함을 느낀 사람이, 죽음 앞에 삶의 의미를 찾는 아리송한 순간이었습니다.
한순간이라도 의미 있게 채우자는 마음은 그간의 부질없는 고민들을 말끔히 정리해 주었습니다.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소중한 것에 눈을 뜨게 해주었지요.
죽음 앞에 나의 삶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살면서 늘 죽음을 가까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른 아침, 남편은 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괜찮다고 이제 그만 걱정하라고 하십니다.
자꾸 번지는 불길이 이제는 우리가 사는 인근 어디까지 왔다더라는 말도 들립니다.
내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가 싶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그게 걱정되지 않습니다.
이따가 올 위험보다는 오늘, 지금을 내가 원하는 의미들로 꽉꽉 채워야겠다는 의지가 생겨서입니다.
바람에 따라 한순간 위험이 오고 가는 참 어려운 상황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입니다.
어려움 앞에 마음 모으되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으로 제 몫을 다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오늘도 지금으로 충실히 채워진 의미 있는 시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