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우리에게 삼라만상은 그저 삼라만상이었을 뿐이야.>
고등학교 시절 처음 미술부에 들었었다.
당시 미술부를 담당했던 미술 선생님은 매우 우람한 풍채와 더불어 부리부리한 눈을 가지신 분이었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그 분의 별명은 ‘김일성’이었다.
지금 다시 기억을 돌이켜보아도 소문처럼 선생님의 외모가 그와 닮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튼 비록 그러한 외형을 가진 선생님이셨지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매우 위트 있고 배려심도 깊었으며, 어떤 설명하기 어려운 특별함을 가진 선생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선생님에 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누가 뭐라해도 그의 체벌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투쓰리번개땅콩” (이 단어는 자체로 완성형이므로 띄어쓰기 없이 쓰여야 한다.)
후계를 남기지 않은 전설의 오의
그 타격법을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1. 검지, 중지, 약지를 둥글게 말아서 세 손가락 끝을 엄지로 고정하여 최대한 외부를 향한 텐션을 유지한 채로 세 개의 손가락을 장전한다.
2. 장전된 손을 임의의 타격점(그러니까 이마 중심이지 뭐…)을 향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후 타격 대상이 예측하지 못할 순간에 기합 없이 발사한다.
3. 나가떨어진 대상을 세심한 관찰을 통해 가능한 즐거움을 만끽한다.
대략 이러한 작동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이 궁극의 오의가 파괴력을 가지는 역학에 대해 아실만한 분은 아실 거라 생각하는데…
한 시절을 풍미했던 만화 중에 ‘바람의 검심’이라는 만화가 있었다. 거기 나오는 준 주연급 캐릭터 중 ‘사가라 사노스케’라는 캐릭터가 사용했던 일명 ‘이중극점’이라는(나중에 업그레이드 되면 삼중극점) 기술이 있었다. 바로 그 역학이다.
쓸데없이 설명해 보면 이렇다.
타격지점으로부터 첫 번째 타격의 충격파가 전달되는 순간 재빨리 두 번째 타격을 시전하면, 두 번째 타격의 충격파는 첫 번째 타격의 충격파 뒤에 바짝 붙어서 퍼져나가게 되므로 어떠한 마찰과 저항 없이 두 번째 충격파는 100%의 효율로 전달된다는 역학이다. (만화에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이 역학을 그대로 원투쓰리번개땅콩에 적용해 보면, 최초 폭심지인 그라운드 제로에 무려 3방의 연속 타격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기술로서, 처음 발사되는 검지는 일종의 장애물 제거를 위한 첨병에 불과하고 진짜 웨이브는 2타인 중지부터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는 공세종말점인 제3타 약지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치면 안 된다.
그리고 위의 설명은 경험에 의한 체득성 지식이라고 말해둔다.
어느 날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여느 날처럼 미술실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아마 점심시간에 그냥 미술실에서 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잠시 후 문을 열고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본인 책상에 앉으면서 나를 포함한 주변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가 선생님 책상 앞에 모이자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미술부라면 원투쓰리번개땅콩이 뭔지 알아야 하니 한 방씩만 맞자.”
그때 우리가 정색을 하고 기겁을 했냐고?, 아니.. 장담하건대 나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환상의 저 기술을 맛볼 기회다!”
당시 누가 먼저 선생님의 성은을 입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연속되는 '따라닥~'소리와 함께 모든 아이들은 선생님의 성은을 체험한 후, 마치 신앙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삼라만상의 모든 고통과 마침내 연옥의 마지막 층에 당도한 듯한 희열의 돌풍 속에서 방언을 토해냈던 장면이 어렴풋이 뇌리 속 생채기의 형태로 남겨져있다.
세월이 흘러...
몇일 전 일을 하다가 문득 이제는 지워진 줄로만 알았던 그날 새겨진 생채기가 여전히 나의 뇌리에 남겨져 있음을 확인한 후, 단 몇 분이었지만 홀로 피식 웃으며 즐거워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