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윤 Jun 02. 2023

친정 부모님과 같이 살면 겪는 일들

알고 보면 모두가 상처투성이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굉장히 평온해지고 더 이상의 미움이 없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작년 한 해는 부모님과 나 모두에게 가혹했던 해였다. 아버지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일터에서 그저 묵묵히 일을 하면서 우울증을 겪었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나머지 가족들이 그저 감당해 내기에 바빴다. 폭탄같이 여기저기서 뻥뻥 터지는 듯했다. 부모님은 반년을 심하게 싸우셨고, 참으며 살던 엄마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아버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부모님 두 분의 갈등이 너무 심해지고 아버지께서 자꾸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일평생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셨는데 그 신앙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우울감을 많이 겪고 계셨기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싶었다.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백내장 수술과 임플란트 수술을 핑계 삼아 (정말 필요한 수술들이었다.) 한국에 홀로 가시기를 추천드렸다. 그동안은 엄마와 함께 한국에 들어가고 싶으시다고 줄곧 미루셨었는데 아버지 본인의 심각한 마음 상태 때문인지 몰라도 쉽게 한국행을 결정하셨다. 아버지는 한국에 가서 여기저기 누비며 자유롭고 행복한 일상을 사셨고, 몇 달 뒤 엄마도 여행차 한국에 들어가셨다. 한 달을 부모님께서 함께 여행도 다니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모두 만나고 미국으로 돌아오셨는데, 부모님의 한국 여행은 정말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힐링”이 된 모습이었다. 의미 없고 고집스러운 싸움이 사라지고, 심적 여유와 한국에서 보내게 될 노후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있다. 미국에서 일 년 정도 더 머물고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실 텐데 가시기 전까지 퍽퍽한 마음이 아닌 넉넉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가셨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나는 그동안 엄마와의 정리되지 않은 감정 때문에 많은 전쟁을 치렀었다. 이제는 그 오랜 전쟁의 씨앗인 ‘버려질 것 같은 공포‘를 정리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친구 집에서 곤히 잠든 나를 깨워서 데려가지 않은 그날의 기억이 상처가 된 건 사실이지만, 돌이켜보니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부모님을 원망하고 미워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두고두고 꺼내서 아파하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지내면서, 부모님의 숱한 사과를 듣고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내 나이 서른 하나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때“가 온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예비하신 그때에 비로소 나의 연약한 마음을 치유해 주셨고, 무작정 부모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니 너무나 자유로워졌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제일 괴로운 사람은 나 자신이다. 미워하는 마음은 내 연약한 마음을 이용해 나 자신을 갉아먹는다.


나는 오은영 박사님의 여러 상담 프로그램을 보며 나 자신을 비추어본다. 나는 정서 수용이 없는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다. 나를 ‘나’답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답답함과 사랑받지 못했다는 억울함이 큰 멍이 되어서 내 인생을 갉아먹었던 것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비추어 연구하고 깨닫는 것만으로도 답답함이 해소되고 위로받는다. 몸이 아프면 여기저기 검색해서 원인과 치료방법을 알아보는데 마음이 아프면 그저 곧 지나가리라 하며 끙끙 앓는 사람들이 많다.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진단받고 치료받아서 나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부모님께서 한국에 몇 달 다녀오시면서 나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부모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의지하고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부모님이 안 계셔도 잘 살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었는데, 엄마까지 한국으로 여행가시고나서 바로 그리움이 밀려왔다. 옛말에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오만하고 철없던 내 모습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폭풍 같았던 작년을 지나고 나서 부모님도 나도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들이 모인 듯했던 우리 가족도 더불어 살기에 괜찮은 사람들이 된 것이다.


울고 서로를 욕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작년 한 해를 통해 이렇게 보석 같은 열매들이 맺힐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축복의 과정을 통해 성숙해진 우리 가족은 또 그분께서 예비하신 다음 연단 미션을 앞두고 있다. 부모님과 우리 가정은 각자 따로 살기 위해 이사를 할 예정이다. 따로 산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불안하고 서운하지만 또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열매가 맺힐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담대히 걸어 나가려 한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언젠가는 웃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회상하며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완모의 꿈을 이루는 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