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 여행을 도전으로 가득 채웠다.
살다 보니 어느덧 결혼 10주년이 되더라. 그래서 기념하기 위해 우리 부부가 연애할 때부터 꿈꿨던 프랑스 파리 여행을 계획했다. 시작은 에펠탑 아래에서 크루아상을 먹자고 막연하게 상상하며 키득 키득대던 아주 오래 전의 잡담으로부터다.
대담하게도 24년도 11월쯤에 다음 연도 5월 여행을 위한 비행기표와 에어비엔비를 구했는데, 파리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기 때문에 적당한 날을 찾기 위해 날짜에 따른 파리의 날씨 표를 샅샅이 뒤져 보며 5월 20일로 잡았다. 너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그런 날씨들 말이다. 다녀와보니 제일 좋은 때에 다녀왔더라. 그래서 떠난 2025년 5월의 파리여행 경험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특히 킨더 학년이었던 첫째는 여행기간이 학기 중이라 independant study라고 하는 장기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해 주는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과제물을 받았다. 그 과제물은 여행 후에 바로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independant study는 일찍 신청해서 담임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어쩌다 보니 작년에도 가족 여행계획이 있었어서 일 년 동안 총 두 번의 독립적 학습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했다. 불안했지만 다행히도 아이의 학교 스케줄은 문제가 없으니 이제 여행으로 본격 돌입해 본다.
비행시간은 무려 직항인데도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리 CDG 공항까지 11시간의 비행이다. 한국에 여행 갈 때와 비슷하다. 나는 너무나 계획형 인간인지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6살 첫째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워낙 말도 잘 듣고 똑똑하고 야무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만 두 살 반인 둘째가 문제다. 둘째는 성격부터 쉬운 아이가 아닌 데다가 다양한 욕구도 강하고 성격도 급해서 평소에도 우리 부부를 긴장하게 만드는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석부터 네 자리가 붙어있는 통로의 가운데 부분을 지정했다. [엄마, 아이, 아이, 아빠] 이런 순서로 아이들을 가운데 몰아 앉혔다. 그리고 비행 출발 시간을 오후 2:30에 출발해 파리 오전 시간 10:25에 도착할 수 있게 했다. 우리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비행기를 탔다.
우리의 비행은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웠다. 아이가 어린 경우 울고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니 부모는 죄인이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우리는 왕복의 장시간 비행에서 남들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울거나 칭얼댐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좌석들에서 우는 아기들의 소리가 들리면 그 아이의 고생과 부모의 안절부절못함이 눈에 그려져 마음이 짠했다.
(심지어 독일을 경유해 돌아오는 긴 비행에서도 우리는 아주 꿀잠을 잤다. 넷 다 같이.)
그 이유는 아이용 “해먹”을 준비해 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개를 샀고, 그게 다가 아니다! 해먹 자체는 얇은 원단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아이가 조금만 무게로 눌러도 펄럭펄럭거리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같이 구매한 제품은
단단한 판자로 되어있는 아이용 화이트보드 놀이 제품이었다.
해먹을 보면 의자가 끝나는 부분부터 앞 좌석까지 그 공간이 단단하게 받쳐주지 않으면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해먹의 안 보이는 아랫부분에 주머니처럼 원단을 겹쳐 달았고, 그 주머니에 위 사진에 나온 것처럼 휴대용 화이트보드 놀이 트레이를 넣을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매우 튼튼해졌다. 의자부터 앞 좌석에 닿는 부분까지 모든 공간이 튼튼한 바닥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다리 뻗고 밥 먹기가 가능하다. 그뿐이랴? 이렇게 아이들은 누워서 잤다.
첫째는 발을 아빠에게 더 뻗음으로 다리를 펴고 누워 자는 기행을… 덕분에 우리도 마음껏 자고 화장실도 자유롭게 다녀오곤 했다. 둘째 아이를 안고 있거나 몸이 닿아 있다면 조금만 움직이고 떼어내도 불편함과 낯섦에 엥 하고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이렇게 아이 둘을 데리고 편하게 갔는데도 파리 공항에 도착하니 어른들의 몸이 힘들어서 예민함에 부부싸움도 일어났다. 하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호강에 겨워서 요강에 똥을 쌌다는 말이 들어맞는 듯하다.
아이들은 거의 비행시간의 대부분을 자고 또 잤다. 첫째 아이는 간간히 기내식을 먹었지만 둘째는 가끔 먹는 시간도 잊고 잤다. 잠을 너무 편안하게 잘 자니 아예 숙면을 취하더라는.. 웃긴 기억이다. (아시아나 혹은 에어 프레미아 항공사는 해 먹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둘째는 앉은키가 작아서 좌석의 스크린을 보지 못하니 일부러 태블릿에 영화와 영상들을 많이 다운로드하여서 가져갔고, 좌석 테이블 위에 올려서 신나게 봤다.
파리는 대중교통을 추천한다지만 우리는 아이 둘과 함께하는 미친 여행이지 않은가? 그래서 우버 (택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용했다. 카시트를 들고 다니는 것도 무겁고 너무 제한적이라 휴대용 카시트 대용 벨트를 지인으로부터 물려받아 가지고 다니며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첫째는 부스터 싯을 사용하는 나이라 가볍고 작은 부스터를 챙겨 다녔다. 그마저도 나중에는 부스터싯 없이 그냥 타고 다녔다. 파리는 정말 특이한 도시다. 가보면 안다. 하하하하
그리고 이 유모차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 여행이 이 유모차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저 아래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꿈꿔왔던 에펠탑을 구경하고 센강 유람선을 탔다.
파리는 비가 왔다 그쳤다 해서 날씨가 너무 오락가락했다. 첫날 장시간 비행으로 힘들어 쓰러지겠는데 센강 유람선을 무조건 타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은 결국 독한 감기에 걸렸다. 첫날부터…
우리는 어디를 다녀도 무조건 우버를 불러 탔다. 대중교통에 많이 있는 소매치기도 피하고, 아이들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차에서는 따뜻하고 편안하게 잘 수 있었으니 우버는 시간적으로도 그리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면에서도 정말 너무 잘한 판단이었다. 나도 남편도 이동하면서 자고 쉬고 또 여행했다.
파리에는 정말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많다. 아이들이 있다고 못 가는가? 아니다! 엘리베이터도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가끔 안되면 유모차도 들고 다니고!
이 정도 고생은 그 자리에서 진짜 멋진 작품들을 보는 감격에 비할바가 아니다.
아이 둘은 하나보다 힘들다. 하지만 그 아이 둘을 한 유모차 특히 휴대용 경량 유모차에 묶어 놓는다면 훨씬 할만하다. 요리조리 인파 속에서 다녀야 할 때도 더블 유모차보다 폭이 작아서 피해를 끼치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몸이 힘든 것보다 눈치 보는 게 스트레스를 더 야기하지 않는가?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 매우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고 하던데, 우리 아이들 둘이 탄 유모차를 보면 다들 씨익 웃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니 신기해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래서 미움받았던 기억은 없다..!
이 유모차는 한국산으로 남편의 여동생인 아가씨로부터 첫째가 돌 무렵 선물 받아 이 여행 때까지 유용하게 가지고 다녔다.
유럽을 아이들과 같이 안 가는 이유를 주변 사람들이 말해주었는데, 일단 너무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어릴 때 가면 할 수 있는 것들에 제약이 많고 아이들이 그것들을 모두 기억할 수 없으니 많은 돈을 들여 유럽까지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생각했다. 어릴 때 느껴보는 새로움과 문화의 다름, 그리고 음식까지. 나이 들어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들을 어릴 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유연함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첫째 아이는 달팽이를 정말 좋아했다. 맛있어서 여행 중에 아이가 먹은 달팽이가 13마리였다. 어느 유치원생의 최애 음식이 달팽이가 될까? 하하 우리 아이였다.
사진에는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된 매우 초췌한 우리의 모습이 담겼지만, 사실 알고 보면 우리의 가장 젊은 날이 담겨있다. 이때 나는 서른셋인데 해가 지나면 곧 나는 서른넷이 될 것이다. 하루라도 어릴 때 찍은 사진을 보면 그 사소하지만 생기로운 젊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먹먹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젊음이 사진에 담겨서 좋다.
맑은 하늘과 유럽의 낡은 건물들이 얼마나 멋진지.. 지금 사진을 봐도 바로 그 기억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귀엽게 머리를 땋고 옷을 입히고 여기저기 다니며 아이들 사진을 찍을 때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 어떤 멋진 아이 화보를 만들어주는 스튜디오보다 가치 있고 생동감 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모네의 작품들을 원 없이 보고 느끼며.. 지금 보는 모네의 작품들과 10년 뒤에 보는 모네의 작품은 어떤 다른 마음을 불러일으킬까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삶이 무르익어 갈수록 같은 일에도 나이에 따라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고, 젊은 나이에는 그 나이밖에 할 수 없는, 철없지만 젊어서 용서할 수밖에 없는 실수들도 귀여운 애교로 감싸 안아진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가는 건 나에 대한 자애로움이다.
아이들이 더 나이가 들어가며 투닥투닥 미워하기 전에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담는 것도 정말 큰 재미였다.
아이들에게는 음식이 나오기 전 태블릿을 틀어주고 조용해진 분위기를 이용해 남편과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넷이 있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우리 부부 둘이 여행온 느낌을 내보기도 하고 말이다.
코코 샤넬이 즐겨 찾았다는 브런치, 티, 제과점인 안젤리나에서 이것저것 사 와서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서 먹었다. 아주 얇지만 방수인 돗자리도 깔고 편안한 오후를 느껴보았다. 육아는 장비빨이 맞다!
사진첩을 보다 보니 얼마 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보석 왕관 사진이 있어서 반가웠다. 앞으로 살면서 보기 힘들 텐데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는 게 이상한 특별함을 선물해 주었다.
루브르는 말도 안 되게 큰 박물관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봐야 한다. 아이들은 조금만 걸어도 지치기 때문에 유모차에 태블릿은 필수이고, 심지어 유모차 안에서 둘이 함께 낮잠도 잤다.
비가 오면 유모차에 둘을 태우고 방수 커버를 씌웠다. 다른 곳들은 괜찮았는데 아주 옛 모습이 잘 보존된 베르사유 궁전의 돌길은.. 유모차의 바퀴를 다 갈아버렸다. 궁전 방문 다음 날 고무바퀴가 데구루루 갈리다 못해 삭아서 굴러가더라는.. 다시 끼워서 체크하면서 끌고 다니고 여행의 마지막 날까지만 버텨주길 마음 졸였다. 하하
태블릿 소리가 밖에 들리는 민폐는 저지를 수 없기에 헤드셋을 갖고 다니며 열심히 착용했다.
둘이 손 꼭 붙잡고 우버 차량 안에서 자는 모습이 이렇게 사랑스럽다..
어디에서 찍어도 화보 같았던 여행..
아이들이 있어서 박물관을 못 가는 걸까?
여행에 투자하는 돈이 아까워서 아이들이 제 몫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 기다려서 간다고들 한다. 아이들은 웬만큼 성인이 될 때까지는 봐도 사실 아무 생각이 없다. 인생의 경험과 생각이 늘어나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알 때 그제야 미술은 마음속에 훅 들어온다. 그렇게 생각할 바에야 그냥 다 데리고 가자! 유모차에 앉아서 태블릿 보느라 미술품을 좀 안 보면 어때? 이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첫째 아이는 모나리자의 그림을 직접 봤기 때문에 기억을 한다. 후에 티브이에서 혹은 책에서 모나리자가 나오면 “어? 이거 내가 파리에서 봤던 건데?” 한다. 그리고 모네의 그림도 하도 대량으로 봐서 그런지 화풍을 이해했다. 그리고 모네 그림의 배경인 모네의 정원에 갔다 오고서는 모네의 그림을 보며 “나 여기 갔던 곳인데?”라고 억한다. 지금 다녀온 지 거의 6개월째인데 아이의 기억은 여전하고 오히려 프랑스의 인사말도 나보다 더 잘 기억하고 있다. 이 많은 그림들 중 몇 개만 기억에 남아도 그건 잘 본 관람이다.
모네의 정원은 관람객이 엄청 많았는데, 그날은 특히 비가 와서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곳은 아름다웠지만 유모차가 입장할 때 그리고 나갈 때 가파른 계단으로 다녀야 해서 그 점이 힘들었다.
모네가 그림으로 그렇게 많이 표현했던 그의 정원에 와있으니 우리가 그 그림 속에 들어간 것 같아서 느낌이 정말 묘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명품관 하나 들르지 않고 명품 하나도 사지 않았지만 베르사유 궁전 근처 재래시장에서 정말 저렴하고 예쁜 것들을 쇼핑했다. 그중에 제일 잘 산 아이템은 우리 아이들의 드레스였다. 유럽 특유의 스목킹 기법이 너무 예쁘게 들어가 있다. 가격은 왜 그리 저렴한지.. 아이들 드레스를 고르는 데 함께 걸려있는 드레스들이 다 너무 예뻐서 오래 고민했다
그곳에서 나는 작은 가방 하나를 10유로에 샀는데 메이드 인 이태리 그리고 진짜 가죽 제품이었다. 그 후에 주구장창 사용했는데 어찌나 튼튼한지.. 다음에 이태리에 가게 되면 재래시장을 탐방 다니리라 결심이 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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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 프랑스 아이들과 함께 놀기도 했고, 프랑스 유기농 주스의 맛도 느껴보고..
우버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짧은 틈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첫째가 이번 여행의 진짜 위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음식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하자면, 놀라울 정도로 우리 아이들은 프랑스에서 프랑스 음식을 즐겼다. 둘째 아이는 파리를 다녀온 이후에 바게트를 사달라고 아직까지 조른다. 둘째 아이는 여행 당시 두 살이었는데 바게트를 어찌나 많이 먹는지.. 질긴 프랑스 바게트에 푹 빠졌었다.
사실 프랑스 소고기는 미국 소만큼 기름지고 부드럽지 않다. 먹는 사료도 미국은 곡물인데 비해 프랑스는 풀을 먹는 듯했다. 이유는 소고기가 질기고 누린내가 났기 때문이다. 나는 먹다가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우리 아이들은 고기에 미친 아이들처럼 끊임없이 먹었다. 치즈의 나라답게 치즈가 많이 나왔다. 고기를 치즈에 찍어먹는 퐁듀 요리와 치즈 소스.. 아주 야무지게 느끼한 치즈를 곁들어서 아이들은 먹고 또 먹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유명하고 맛있다는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이었고 스테이크를 꼭 먹어보라고 어느 누군가가 추천한 글도 보았다. 흐음….
프랑스 파리 여행에 대해 더 예쁜 사진들도 많고 공유할 것도 많지만, 이번 글은 ”아이들의 여행“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했으니 이렇게 마무리하기로 한다.
여행을 다녀오니 같은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지인들이 다들 충격을 받으며 어떻게 우리가 잘 다녀왔다고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저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유럽까지 데리고 가지 못하는 이유들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금전적인 이유들 제외하고) 우리는 특히 그러한 이유들을 넘어선 발견들이 너무나 값지게 느껴졌다. 그 발견들을 할 수 있었음은 우리가 도전했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특히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할 생각이 있다면, 한번 더 철저하게 준비하기를 바라고.
아예 여행할 생각이 없었다면, 한 번쯤은 여행해 볼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글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