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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병고와 나를 지킨 시간

기다려주시고 함께 기도해주신 여러분께

지난 연재를 잠시 쉬는 동안 기다려주시고,

아들의 쾌유를 함께 기원해 주신 것은 물론

저의 건강까지 염려해 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백명이 라이킷을 눌러주시고,

수십 분께서 댓글로 마음을 나눠주셨습니다.

한분 한분의 마음이 제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들의 병고와 그 시간을 지켜내는 동안 마음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습니다.



지난 몇 주, 따스한 햇살이 세상을 감싸는 것처럼 보여도

저에게는 예상치 못한 삶의 거대한 파도와 마주해야 하는 시간들입니다.


몇 년 전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꾸려가던 아들이

8월 12일, 유리체 망막 수술이라는 큰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지만,

직장까지 접고 시력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동안,

저는 아들과 함께 밤낮없이 오직 회복 하나에만 온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들은 실명이라는 엄청난 두려움 앞에서,

밤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불안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글을 쓰고 독자분들과 소통하는 일은 잠시 접고,

오직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 시간을 견뎌야만 합니다.



아들이 잠든 한밤중, 나는 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쓰고 혼자 걸으며,

마음속 깊은 불안을 흘려보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도,

나는 그 속에서 아들을 지키는 마음을 붙잡습니다.

내 안의 아이를 달래고, 나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시간입니다.


어엿한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한 자녀가 겪는 갑작스러운 병고는

부모에게 또 다른 종류의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곁에서 품에 안아 아픔을 덜어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스스로 삶이 멈춘 듯한 아들을 바라보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과 함께

제 안에 묻어두었던 ‘내면의 아이’마저 흔들어 깨우는 시간됩니다.



그토록 간절히 아들의 회복을 기도하며,

저 또한 마음 깊이 아파하고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도 염려해주시고 함께 기도해주신 독자분들이 계시기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시간이야말로,

삶의 예상치 못한 상처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그 누구보다 절실한 ‘나를 지키는 연습’의 실제 시험대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예측 불가능한 파도와 같습니다.

잔잔한 날도 있지만,

때로는 거대한 폭풍이 모든 것을 뒤흔드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그 파도가 외부에서 들이닥치는 비극일 수도,

날카로운 현실의 비난일 수도,

혹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깊은 상실감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상처 앞에서 우리는 종종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그때 내 안에 머무는 여린 아이는

온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가 연약하기에,

우리는 상처 앞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사랑의 연습입니다.



상처 앞에서 나를 지킨다는 것은

마치 거친 폭풍 속에서 작은 촛불 하나를 보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촛불은 바람 앞에서 쉽게 꺼질 수 있지만,

작은 유리벽 하나만 있다면 흔들림 속에서도 빛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머무는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의 거친 말 한마디,

마음 깊이 파고드는 실망감 앞에서도,

스스로를 위한 견고한 ‘마음의 유리벽’을 세울 수 있다면

우리는 중심을 잃지 않고 그 빛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나를 지키는 연습의 첫걸음은

상처가 ‘상처’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애써 마음을 눌러 담는 대신,

“아, 내가 지금 아프구나. 내 마음이 힘들어하구나” 하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흙 묻은 고사리발을 어루만져주었을 때처럼,

나의 아픈 감정에도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고 보듬어주는 것.


그것이 자기 수용이며,

상처와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우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이어, 상처를 주는 것들로부터

건강한 경계 설정을 연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관계,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스스로에게 가하는 과도한 기대치까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명확히 하고,

필요하다면 “잠시 멈춰주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무기력할 때는 그것이 회복의 신호임을 인지하며

스스로 쉬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 안의 소중한 아이를 보호하는

마음의 울타리입니다.



상처 앞에서 나를 지키는 연습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반복과 시도, 실패 속에서 조금씩 익히는 과정입니다.

때로는 다시 무너지고,

여전히 상처받은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럴 때마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손을 내밀고

“괜찮아, 다시 연습하면 돼”라고 속삭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가장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는 것.

외부의 소음 대신,

내 마음이 들려주는 고유한 소리를 신뢰하고 따라가는 것.


내 안의 아이를 보듬고 치유하는 이 여정 속에서,

‘상처 앞에서도 나를 지키는 연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삶의 지혜입니다.



이 연습을 통해 우리는

외부의 어떤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중심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부디 이 글이 독자 여러분에게,

스스로를 더 깊이 사랑하고

어떤 상처 앞에서도 자신을 굳건히 지켜낼 수 있는

작은 용기와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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