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의 피자
– 삼선교의 따뜻한 기억

☀️그리운 한 그릇

by Barakan
피자 한 판에 담긴 기억,
골목 냄새와 함께 다시 떠오른 그날의 따뜻한 풍경.



내 입맛은 고향집 텃밭을 그닥 벗어나지 못한 딱 그 정도 수준이다.
시골 입맛이라 그런지 상추, 배추쌈, 우거지, 무나 갓김치, 된장찌개와 김칫국밥 등 안 좋아하는 시골음식이 없다. 실제로 눈에 띄는 쌈밥집은 거의 한번씩은 다 가봤다. 고기는 있으면 잘 먹지만, 먹고 싶어서 제 발로 찾아가는 경우는 좀 드물다.
그런 토종 입맛에도 땡기는 외래종 음식이 있다. 그건 둥글둥글한 몸집에 빨간 햄이며 파프리카와 버섯, 올리브까지 한 가득 품고 있는 피자다. 노릇하고 파삭한 도우와 포테이토나 고구마, 치즈가 어우러진 그 피자의 맛은 참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피자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오랜 기억 속의 한 집이 있다. 성북구 삼선교의 피자집이 그곳이다. 서울 삼선교에 살던 시절, 내가 유독 좋아하던 골목이 하나 있었다.

지하철역 1번 출구나 버스 정류장에서 슬슬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길 입구에 닿게 되었다. 꼭 발이 먼저 기억하듯, 습관처럼 지나던 골목길. 그곳을 지날 땐 왠지 모를 푸근함을 느끼곤 한,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골목이었다.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양옆으로는 작은 금은방과 메리야스가게, 화분을 몇 개 내놓은 꽃집. 진동하듯 풍기는 냄새에 고개 돌려 보게 만들던 동네 빵집까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 한편에 자리잡은 피자집이 피자원이었다.
평소 고소한 냄새가 늘 자극적이었지만, 어느 비오던 날 울려퍼지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으로 퍼지던 그 피자냄새는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처음으로 그 피자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난다. 어서 오라는 인사가 끝나자 마자, 다부진 체격에 자신감이 풍겨져 나왔던 중년의 주인아저씨로부터 대뜸 받았던 질문.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 치즈가 제일 맛있는지 아세요?”
요즘 같은 네이버며 구글 검색도 없던 시절, 그걸 알 리가 없던 나는 얼결에,
“글쎄요, 낙농국…들이 맛있을까요? 덴마크나 미국…호주?”
그때 돌아온 대답은 뜻 밖에 한국이라 했다. 우리 입맛에 느끼하거나 짜지 않고 친숙한 맛이 한국 치즈가 제일 맛있다는 것이었다. 다소 비싼 것이 흠이라는 말까지. 그 말에 이어, 피자에 대한 한편의 강의가 이어졌다. 도우가 어떻고, 햄의 품질은 어떠해야 하며, 우리 가게의 재료는 이러이러하다… 피자에 대한 특강 같은 설명은 그 후 그 가게에 들를 때마다 들어야만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때마다 든 내 생각은 ‘사장님은 본인이 만드는 피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구나.’였다.
재미있었던 건, 그 ‘피자학 특강’은 벌건 오븐에서 피자도우가 부풀어 오르고, 지글거리며 치즈가 녹을 때에도 멈출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저녁 무렵, 그 허기진 시간에 고소한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뜻뜻한 피자를 받아갔으니 당연한 것이었을까? 그 피자는 유난히 아주 맛있었다. 무엇보다 그 피자는 느끼하지도 짜지도 않고, 마치 김치를 먹듯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문득 떠오른 일이 하나 있다. 대학시절 국문학과에서 개설된 3학점짜리 전공과목인 ‘문예창작론’에 나도 모르게 끌렸다. 경영학과였고, 타과생에게 학점상 불리함이 따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럼에도 왜 그리도 매료됐는지 모를 그 수업에, 결국 무모하게 수강신청을 하고 말았다. 어느 날, 교수님이 내어 주신 묘사문 과제에
나는 <삼선교 풍경>이란 제목으로, 그 피자집을 중심에 둔 글을 제출했다. 그 다음 시간, 거의 80여명은 될듯한 강의실에서 교수님께 이름이 호출되었다. 영문도 모른채 엉거주춤 팔을 든 내게,
“글 잘 봤네, 피자원, 그 가게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네.” 하셨다.
“네, 시간만 내시면 제가 한번 모시겠습니다.” 했지만, 그 교수님과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강 교수님의 농담 같지 않았던 제안을 끌어낼 정도였으니, 적잖이 내겐 그 피자가 독특하게도 맛있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반증은 될 듯하다.
새삼 그 수업시간 강 교수님의 얼굴까지 떠오르게 할만한 삼선교의 피자집은 그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가까운 큰 길가에 미스터피자가 2층 규모로 크게 자리잡아도 잘 버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하철역 출구에 바로 피자헛이 생겨서 배달을 전문으로 시작하자,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그 골목을 지나던 날, 늘 군침 돌게 하던 피자 간판이 흉하게 뜯겨 나가는 걸 보았다. 마음 한 켠이 떨어져 나가듯 퀭한 느낌이 들던 그 때의 기억. 그리고 지나다니며 인테리어 공사 중인 걸 볼 때마다, 그 주인아저씨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미식가란 말을 종종 듣는 내게, 아끼던 단골식당이 하나 사라지면 그 빈자리의 공허함은 의외로 오래간다. 반갑게 맞아주고, 서비스까지 살갑게 챙겨주던 손길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을 때는, 표현 못할 상실감을 떨쳐버리기가 좀 힘이 든다
더구나 요즘은 경기가 나빠서 한 자리에서 20년 넘게 하던 식당을 그만둔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면 착찹한 마음이 남다르다.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사람, 맛있는 음식으로 온기를 주고, 눅눅한 기분을 말끔히 씻어주던 그 분들은 요즘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 덕분에 힘을 얻고, 각자의 힘든 시절을 사람들이 버텨왔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까?
정성으로 늘 맛있게 만들어 주던 그 피자집과 또 단골이었던 많은 음식점들의 노고를 기억나게 하는 밤이다.
낮엔 봄비도 촉촉히 내렸고, 지금은 세상이 고요한 늦은 밤.
그 골목 어귀의 피자냄새가 다시 감도는 듯하다.
출출해서 더 그런가…
그리운 한 판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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