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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선 Dec 23. 2021

동시대 미술에 대하여(2)

 1. 나의 견해는 켈리 바움의 주장과 가장 유사하다. 켈리 바움은 동시대 미술의 혼종성이 가능성이며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동시대성을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다. 우리가 과거를 정의할 수 있는 이유는 마천루에서 보듯 과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동시대에 속해있기 때문에 이를 정의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완벽히 정의 내릴 수도 없다. 현재에 동시대성을 정의 내린다는 것은 곧 현재를 역사에 근거해 규격화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동시대성은 정의하고 규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마주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때 원동력이 되는 것이 바로 혼종성이다. 동시대 미술을 운용해 나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이 혼종성을 원동력으로 삼고, 더 나아가 혼종성을 추구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켈리 바움의 입장이 현재와 꼭 상응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동시대 미술은 혼종성에 대한 켈리 바움의 입장을 추구하고자 하나, 그 입장이 잘 나타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다.


 동시대 미술의 혼종성이 가능성으로써 그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혼종성 안에서도 의미 있고 새로운 담론이 형성 및 보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서는 아직 미숙하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여전히 동시대 미술을 난해한 것으로만 여기고 있으며 동시대 미술 전시가 단지 포토존으로만 홍보되는 사례도 있다. 대중들이 동시대 미술의 혼종성을 통해 사회와 미술적 담론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모습들은 동시대 미술의 혼종성이 그 가능성과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 머물러만 있다.


 동시대 미술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혼종성이나 그렇다고 혼란스러움에 안주해 있어서는 안 된다. 뻘에서 빠져나오고자 발을 굴러 애를 쓰듯이 혼란스러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작가와 작품은 많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 있는 담론은 여전히 부족한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이때 힘 있는 담론이란 꼭 사회 문제가 아니더라도 다수가 공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의지를 갖고 있는 담론을 말한다. 미술계로 국한 지어 담론을 형성할 수 도 있고, 우리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혼종성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적절한 굵기의 큰 줄기를 잘 잡아낸다면 동시대 미술의 혼종성은 큰 가능성을 가지고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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