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는 맞았지만, 재미있지는 않았다

논리 다음에 남는 자리는 무엇일까?

by 정소영

여기에 어떤 시스템이 있다.

버튼을 누르면 반응이 오고,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하면 결과가 나온다.
에러도 없고, 버그도 없다.

기술적으로는 ‘잘 만든’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걸 쓰는 나는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논리는 맞았지만,
왜 즐겁지 않았을까?


최근에 어떤 인터랙션을 테스트하면서,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분명히 논리는 맞는데… 왜 이렇게 손이 안 갈까?

사용자로서 내가 한 행동들은 모두 예측 가능했고,
시스템은 그 예측에 정확히 응답했다.


클릭 → 반응
입력 → 결과
대기 → 다음 단계
...


모든 게 계획된 흐름 안에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놀랄 일이 없었다.

문제는 ‘불편함’이 아니라 ‘무미건조함’이었다.




잘 설계된 시스템만으로
충분할까?


기획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일관성이 중요하다

예측 가능해야 한다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


전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기준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잘 작동하는데도 재미가 없는’ 순간.


나는 그 이유가
모든 것이 너무 잘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시스템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까지

전부 미리 알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절차를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우리가 놓친 또 다른 것: 감정


사용자가 원하는 게 항상 빠름과 정확함만은 아니다.

가끔은:

잠깐의 망설임

예상에서 벗어나는 반응

의미 없어 보이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

이런 것들이 경험을 ‘살아 있게’ 만든다.


게임에서
모든 보상이 수치로만 계산된다면 재미가 줄어드는 것처럼,


인터랙션에서도
모든 반응이 논리로만 설명되면 감정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맞지만 재미없는’ 경험을 기억하게 됐다


그 경험이 특별히 나빴던 건 아니다.
불쾌하지도 않았고, 실패하지도 않았다.

다만 끝나고 나서 이렇게 느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기획자로서,
그리고 사용자의 경험을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이 감정은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 작동했다’는 기억보다
‘뭔가 허전했다’는 기억이 더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논리 다음에 남는 자리는 무엇일까?


나는 요즘 이런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맞는가?

그리고, 재미있는가?

둘 중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논리는 시스템을 성립하게 만들고,
감정은 경험을 기억하게 만든다.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작은 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관찰하는 글을 앞으로도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불확실성이
경험을 기억하게 한다면?


모든 흐름이 예측 가능한 시스템에서는,
사용자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남지 않는다.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과정이라면,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선택이라기보다 절차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떠오른 게 있다.
사람들이 가챠에 열광하는 이유다.

가챠는 흔히
‘도박성’, ‘랜덤성’, ‘과한 보상 구조’로 이야기되지만,
경험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른 면이 보인다.


가챠의 핵심은 보상 자체라기보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로 개입하게 만드는 구조에 있다.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엇이 나올지,
이번이 실패인지 성공인지.


이 불확실성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감정을 끌어낸다.

기대하고,
망설이고,
실패하면 아쉬워하고,
성공하면 과하게 기뻐한다.


그 감정의 진폭이,
경험을 ‘기억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논리로 설명되는 시스템에서는
이런 감정이 들어갈 자리가 거의 없다.




그래서 어쩌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작위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여지인지도 모른다.

시스템이 전부 설명하지 않는 부분,
사용자가 개입했을 때 결과가 흔들릴 수 있는 작은 틈.


불확실성은 늘 위험 요소로 취급되지만,
동시에 경험을 살아 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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