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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Sep 29. 2022

술 그리고 아버지

"저기, 유ㅇㅇ씨 아들이죠? 아버님이 한 5일째 집에서 안 나오고 있어요. 이상한 냄새도 나고. 한 번 와봐야 될 거 같은데."


 그날 간밤의 끈적한 악몽에서 나를 깨운 건 바닥을 흔드는 핸드폰 소리였다. 전화기에는 낯선 숫자들이 표시되었고 '새벽에 누구지?' 하며 수신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아버지의 옆집 이웃이었고, 그분은 다급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 일어난 듯하니 아들 되는 사람이 집에 좀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같은 내용의 전화를 이미 받았다고 했고, 내가 언제쯤 내려올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동생에게 비행기 시간을 알려주고 어디쯤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후 전화를 끊었다. '큰 일이야 있겠어? 별일 아닐 거야. 또 몇 날 며칠을 술에 빠져 계신 거지 뭐.' 하고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별일이었다.


 우리를 맞은 건 이웃이 아닌 경찰이었다. 경찰은 이웃집의 신고로 출동을 했고 검안의의 소견대로 아버지를 변사처리했다. 타살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고 주무시는 도중 토사물에 의한 기도 막힘으로 사망했을 거라는 검안의의 의견을 대신 전달해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경찰은 장례업체에 전화해서 시신을 모셔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경찰은 나에게 변사자와의 관계를 다시 물으며 종이와 볼펜을 건넸고 나는 그 종이에 내 이름을 적었다.


 문을 열자마자 아버지의 것으로 여겨지는 냄새가 났다. 시취였다. 바다에서 건지는 사람의 시체에서와는 다른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동생은 처음 맡는 냄새에 당혹했고 나는 그런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추석이 지난 9월 하순이라 그런지 집안은 스산한 냉기로 가득했다. 냄새는 그 냉기에 묻어 우리의 코로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엎드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 얼굴 주위로는 토사물이 말라 붙어 있었고 전기장판 위는 검은색 액체가 가득했다. 집 안 구석엔 녹색 소주병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전기장판 온도 조절기는 숫자 3이 맞추어져 있었다. 몇 날 며칠을 술에 절어 계시다가 주무시면서 돌아가신 듯했다. 더블 사이즈의 전기장판 크기가 너무 커 보였고, 그 위에 아버지는 너무 작아 보였다.


  나는 이 장면에 당황하지 않았다. 나로서도 신기할 정도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술을 드시는 분이었다. 평소 말수도 적고 조용한 아버지는 술을 멀리했지만 한 번 입에 대기 시작하면 일주일 정도 드셨다. 의사로부터 진단받은 적은 없지만 분명한 중독이었다. 아버지는 스스로 술을 이기지 못했다.


 아버지를 화장하는 날에는 장대 같은 비가 새벽부터 내렸다. 동생과 나는 작은 유골함에 담긴 아버지를 따로 봉안하지 않고 ‘유골 처리하는 곳’에 뿌렸다. 가루가 된 아버지의 뼈들이 공기 중으로 날아다니다가 빗방울을 맞고 떨어져 내렸다. 비가 아니었더라면 공기 속으로 날아다닐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유골함마저 그곳에 던진 우리는 도망치듯 화장터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날 작은 술자리를 열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튼튼한  뿐이라며 우리 형제는 씁쓸한 잔을 비웠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까지 우리 둘은 술을 마셨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무렵 동생은 아버지를 그렇게 버려두고  것에 대해 한숨을 뱉었다. 나도 조금 후회된다는 말을 동생에게 했다. 창밖의 비는 그때까지 멈출 줄을 몰랐고 나는  속에 계실 아버지가 추울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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