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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an 09. 2023

크리스마스 선물


가족들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던 중 큰아이가 갑자기 한마디 툭 던진다.  “아빠, 나 어릴 때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았잖아. 그 산타할아버지가 혹시 아빠 아냐? 내가 동영상 다시 봤는데 아빠랑 목소리가 똑같아! “


우리 부부는 순간 당황해 밥을 먹다 말고 서로의 눈을 맞추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냐며 서로에게 답을 갈구하고 있었다. 3학년이 되는 큰 아이에게는 솔직히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젖냄새가 나는 둘째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엔 너무 큰 충격을 받을 거 같았다. 큰 아이는 재촉하며 둘째에게 말했다. “준아, 산타할아버지는 세상에 없어. 그거 아빠일 거야.”


둘째의 까만 눈동자에 지진이 오는 걸 확인하고서 이내 사태의 진압에 나섰다. “아니야 준아. 산타할아버지는 진짜 있어. 올해도 준이가 갖고 싶은 선물 가지고 오실 거야.” 옆에서 아내도 거들었다. “맞아 준아 산타할아버지는 진짜 있어, 형아가 잘못 본 걸 거야.” 둘째가 우리 부부의 성원에 힘을 얻었는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그럼 핸드폰 가질 수 있는 거야? 형아 산타할아버지 있어 유치원 선생님도 있다고 했어 “ 첫째는 이내 수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닌데 분명 목소리가 아빠였는데.”


우린 그날 아이들을 재우고 다시 식탁에 모여 앉았다. 핸드폰에 저장되는 사진과 동영상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며 우리 부부는 의견을 모았다. 큰 아이에게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기로 하고 둘째에게는 산타할아버지가 아빠였다는 걸 얘기하지 말자고 부탁하기로 했다. 큰 아이가 과연 약속을 잘 지켜줄지 의문이지만 일단은 둘째의 동심을 깨지 않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적당한 가격의 저학년용 핸드폰을 검색했다.


두 살 터울의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큰 아이는 동생의 나이에 맞춰 키우게 되고 둘째는 큰 아이의 나이에 맞춰 기르게 된다. 동생 나이에 맞춰 기르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저 큰 아이가 동생과 잘 노는지만 확인하면 되었다. 하지만 동생을 형의 나이에 맞춰 기르기는 종종 해프닝을 연출했다.


집에 있는 대부분의 장난감은 큰 아이가 어릴 적 사줬던 것들이다. 뽀로로, 카봇, 신비아파트, 팽이, 듀플로, 레고 등등.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형이라는 큰 친구를 만나 같이 놀았다. 뽀로로 장난감을 줘도 데면데면했고 다른 장난감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끔 형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려고 해서 싸움이 났지만 형아가 양보하는 쪽으로 마무리되었다.


둘째는 컴퓨터 게임도 일찍 접했다. 형아가 학교를 들어가며 컴퓨터를 배웠는데 그게 신기했던지 둘째도 형아를 따라 했다. 아빠 컴퓨터에 앉아 이것저것 만지는 것 같았는데 이내 형아와 같이 온라인 게임에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한글을 떼기 전이라 조금 빠르지 않나 걱정했지만 형아는 동생을, 동생은 형아를 도우며 같이 놀았다.


올해 둘째가 학교에 입학한다. 훌쩍 커버린 두 놈에게서 이제 아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점점 품을 벗어나 세상이라는 큰 무대로 나아가고 있다. 넘어지고 깨지는 모습을 그저 묵묵히 뒤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날들이 가까워진다. 언제든 안아줄 순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산타가 실은 아빠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가볍게 미소 지을 날들을, 그런 너희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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