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머무르시오.

by diletantism

빌어먹을 한 예술가는 변기를 전시하며, 이것이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분명 예술의 탈계급화였으며, 예술의 순수한 핵심이기도 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도대체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변기는, 예술을 다시 만인의 손으로 돌려주었다. 그리고 어떤 이는 토마토 통조림을 작품이라 불렀다.


“그것도 작품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 괴짜는 더 명확히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술은 이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후, 괴짜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세계에서 ‘빅 브라더’가 등장했다. 물론, 예술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방’은 언제나 이면으로 함께 존재해 왔다.


그러나 브라더의 등장은, 예술로 도달하지 못한 티탄들의 욕망과 결합했다. 그들은 타르타로스에 머무른 채, 브라더를 이용하여 자본을 불려 간다.


그 자본은, 창작의 열망이 아닌 소비와 반복의 욕망으로 부풀어 오른 것이다. 지하에 오래도록 갇힌 티탄들은 눈이 멀고 침을 흘리며, 자신들의 부풀어 오른 배만을 자랑한다.


그 배는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른 채, 지하에서 이리저리 끌리며, 지상으로 올라올 날만을 기다린다.


항상 거울을 두 개 구비하길 권한다.


하나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하면 우리는 예술 이전에, 우리가 왜 예술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니, 느낄 수 있다.


말 못 할 비극에서, 그 비극을 견뎌낸 영웅적 서사에서, 그리고 추의 미처럼, 추함에까지 이르는 예술적 감각에서, 예술은 여전히 나를 통하여, 세상을 통하여 예술이라 불릴 만한 무언가로 넘쳐난다.


요즘처럼 추함이 더 많은 세상에서는, 예술이 될 수 있는 것들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


모방의 모방은 결국 얼룩만 남긴다. 그럴수록 진짜는 모방에 파묻혀 온데간데 찾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욕망만 남은 눈먼 티탄들은 귀까지 멀어버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역겨움은 모름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알면서 행하는 데서 출발한다.


티탄은 지하에서 올라올 수 없다.


지상에 머무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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