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대학에서 강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제출한 교수자격 논문 『혹성 궤도에 관하여』를 제출할 만큼, 지식 탐구의 진정성 차원에서 부족할 뿐 아니라 그만한 통찰력을 지니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책으로 내고 싶은 이유는, 딱풀과 목공풀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어린이집 아이들의 만들기보다 못한 모습들에도 세상 유행하는 글들을 보고 있자면 자신감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글의 순서는 맥락 없다. 우선 장자에 대한 오해를 풀 것이다. 이건 다른 거 없다. 책 한 권만 있으면 모든 오해가 풀린다. 어떤 무식한 작자들이 장자가 ‘성악’을 주장했다며 똥꾸릉내나는 소리를 하던데, 그 사람들은 모조리 비전공자다. 그런 것에서 빌어 올라오는 찌끄레기는 글을 작성하는데 큰 동기가 되었다.
두 번째는 도덕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흄과 니체가 섞여 개똥철학같아 내 밑천이 드러나는 시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기에 도덕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한 수 알려주겠다.
세 번째는 도덕에 관한 솔직한 고백을 바탕으로 더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두 가지 허물을 잠시 벗어두어야 한다. 하나는 추함(醜)이고 다른 하나는 ‘제 2의 성’에 관한 인식적 한계 인정일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보다 경험에 따른 추론이 대다수기 때문에 다들 귀 기울여 들으면 호불호가 강력히 갈릴 것이다.
네 번째는 앞선 두 번째 세 번째를 이어 드디어 그렇게 짜내고 빼내어 정제된 도덕이 아닌 도덕은 결국 기득권을 위한 것임을 근거지어 나타내 보일 것이다. 돌대가리들이 읽지도 못하는 ‘짜라투스투라 머시기’에 돈을 던지니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후에 『안티크라이스트』로 이어짐이 맞음을 이해시켜 줄 것이다. 니체는 도덕의 해체자였다.
다섯 번째는 차라리 그런 도덕 따위를 말하지 말고 사회라는 시점, 하나의 체계로써 세상의 맡은 바 주어진 역할의 의미로써 살아가야 함을 주장할 것이다. 헤겔 『법철학』 안의 소 주제인 시민사회에 대해 언급하겠다.
여섯 번째는 역사에 관해 말해보겠다. 엄밀히는 역사관이다. 영화 변호인을 보며 불온 도서를 얼마나 심취하여 이해하였는지 나는 그것이 참 궁금하다. 그렇다면 소모적인 사회가 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걸 종합하여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를 비판하겠다. 나는 아직도 이 책이 유행한 것은 광우병걸린 것 마냥 무언가에 홀려있었다고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