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by diletantism

장자에 대해 말하기 앞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 모두 고민해보길 바란다.


학부시절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주고 싶다. 수업은 ‘정치철학’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당시 선정한 도서로는 『대동민주 유학과 21세기 실학』이라는 책이었는데, 대략 설명하자면 성리학에서 유토피아적 국가관의 끝은 대동사회(大同社會)인데 그 대동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나라라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성리학에서 이룩하고자 하는 국가관은 결국 서구의 민주주의와 견주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도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 중 교수님께서 칠판에 한 글자를 쓰셨다. 先 — 먼저 선, 나아갈 선.


“선비(先輩)와 선생(先生)도 같은 ‘선’을 쓴다네.”


그리고는 우리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네들이 만약 지금 교육학과 학생들이라 생각해보게, 곧 임용을 치거나 강사 자격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겠지? 근데 돌이켜 봐보게 자네들... 지금 뭐 23, 26? 28인 나이인데, 여러분이 인생을 초, 중, 고등학생들에게 무언가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가?” 교수님의 논지는 그것이었다. 선비든, 선생이든 본질은, 先 먼저 선, 나아갈 선의 의미에서 본질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교육자다. 교육자는 단순히 지식 차원의 계승자 역할이 아니라, 한 인격체로써 자라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 있어야 함을 새겨야 하는 것이다.


유교의 올바른 명칭으로써 유학은 집(家)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말은 믿어라. 이건 도올 직속 제자한테서 유일하게 기억나는 한 문장이니 말이다. 지극히 도덕적 완성체로써 유학은 항상 배움을 곁에 둔다. 공자의 유학은 이러한 가르침에 큰 뜻을 두었고 법가, 도가를 만나, 그리고 불교를 만나며 세계관이 커진 것이다. 무려 한나라때 일이다.


공자 이후의 맹자 순자는 공자 이후의 사상가들로써 쉽게 비교대상으로써 쉬운 암기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 뿐만 아니라, 순자의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적은 있느냐는 물음이 날 정도로 순자를 왜곡하다 못해 인간 존재를 惡으로 규정하여 모든 강력범죄나, 뒤통수를 때린 사건들의 나열에 항상 개목줄 끌리듯이 끌려나와 소환당한다.


김학주 옮김 『순자』를 꼭 읽어보기 바란다. 많은 것을 볼 필요도 없다. 제 23편의 성악 부분만 보아도 된다. 거기서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구절만 읽게 되어도 이제까지 본인이 얼마나 오염된 지식 속에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어 나도 모르게 맥주와 소주를 찾게 되고 그날로 노상방뇨를 휘갈기게 된다. 나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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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근 습상원(性相近 習相遠)’ 이 말이 큰 가르침 그 자체다. ‘선천적인 것은 다 똑같은데, 후천적인 것에 의해 달라진다.’는 말. 기존의 성악설에 비해 희망적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설도 아니고 한 사상가로써 사람들에게 전파를 해야하는데 사람을 악하다라고 하는게 말이 되는 소린가. 이 정도만 말을 해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될 거 같다. 추가로, 책 안의 내용에서 여러 비유가 있는게 그 중 하나가 ‘활 시위를 당긴다’는 표현이다. 활 시위는 꾸준히 당겨주어야 팽팽하게 온전히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유지된다고 한다. 만약 방치하게 된다면 탄성이 풀리어 활을 활로써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느낌이 오는가. 유학의 교육관에 매우 적절한 비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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