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이 심오하고 잡을 수 없는 말은, 4년 동안만 괴롭게 하는 줄 알았더니 평생의 원죄로써 나를 휘감는 듯 하다. 심오하고 잡을 수 없다는 말을 계속 생각해보면 설명하기에도 그럴듯하게 떨어지는 것도 없을뿐더러, 어거지로 맞춘 상황설명들의 나열은 되려 억지 극한 상황의 연출이란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덕에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용자의 도덕성이 별로라는 것이다. 그 말은 유심히 살펴보면 유달리 도덕, 윤리 등의 말따위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과는 상당히 떨어진 사람뿐이었다는 말이다. ‘화용론’적이다. 부정하면 본인은 완전무결한 도덕인이라는 걸 증명해야 하고, 긍정하면 내 말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라 본다. 정확히는 침묵 속 긍정이라 하겠다.
뒤에 비판할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결론은 결국 ‘중용’이었다. 웃기지 않은가. 초반부는 극단의 상황을 가정하여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어 효용론적 관점에서 롤스를 말하고 싶었지만, 후에 덕이론이나 나열한 것처럼, 끝에는 중용에 대해 말한 것은 사실 본인도 모른다는 반증인데 그것이 무슨 플라톤의 동굴 속을 빠져나온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얼마나 시간적 낭비였는지 모른다. 아니 아마 아무도 모를 듯 싶다. 그 허무함을.
아무튼 도덕은 그만큼 어렵다. 그렇다면 도덕적 삶은 성인이 아니고서야 살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이 원죄를 벗어나기위해 애쓰고 있다. 그것에서 첫 힌트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니체였다. 그러다보니 이상하게 칸트를 알고 싶어졌는데, 칸트에 대한 모든 수업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잤나 보다. 그래도 궁금하면 알아야 하니, 그전에 흄부터 보려했다.
『도덕 원리에 관한 탐구』를 보면, 마음에 조금 차오르는 도덕의 부정성에 눈이 띄여지는 듯 하다.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겠다.
다시 인간의 필요는 계속 지금과 같지만, 마음이 아주 넓고 우정과 관대함으로 충만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더없이 상냥하고 나 자신의 이익만큼 동료의 이익에 관심을 느낀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경우에 분명 정의의 쓸모는 이렇게 넓은 자비심 때문에 정지될 것이고, 재산권과 책무의 분할과 장벽은 생각지도 못할 듯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미 나의 행복을 구해주려는 아주 강한 의향을 지니고 있고, 그가 스스로 내가 바라던 봉사를 제공해줄 것을 내가 알고 있다면, 증서나 약속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도록 그를 구속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입을 손해가 내가 얻을 이익보다 더 큰 경우는 제외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타고난 인간애와 우정으로 내가 먼저 그의 경솔한 관대함에 반대하리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만약 나의 마음이 우리의 이익을 구분하지 않고, 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마치 본래 나의 것처럼 똑같은 힘과 활기로 공유한다면, 왜 이웃의 들판과 나의 들판 사이에 경계표를 세위겠는가? 이러한 가정에서, 다른 사람의 또 하나의 자아로서 모든 사람은 시샘 없이, 분할 없이, 구분 없이 자신의 모든 이익을 다른 모든 사람의 재량에 맡길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하나의 가족을 이룰 것이다. ··· 이 진실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앞의 가정을 뒤집어보자. 모든 것을 정반대로 뒤집어, 이 새로운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살펴보자. 어떤 사회가 공통의 생활필수품이 아주 부족한 상태에 빠져서, 아무리 근면 검소해도 많은 사람이 죽고 전체가 극심한 고통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절박한 긴급 상황에서는 엄격한 정의의 법은 정지되고, 필요와 자기보존이라는 더 강력한 동기로 대체되리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난파를 당한 사람이 이전 재산권의 제약을 무시하고 무엇이든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안전 수단이나 도구를 차지하는 것이 범죄인가? 혹은 도시가 포위당해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갈 때, 그들이 자기 앞에 놓인 생존 수단을 보고도 이와 다른 상황에서 형평과 정의의 규칙이었던 것을 양심적으로 존중해 스스로 목숨을 버릴 것이라고 상상 할 수 있는가? ···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 다리로는 고고하지만 다른 하나로는 어떻게든 이땅에 디디며 악착같이 살고 있다고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도덕을 사용하는 자들은 권력이 그래도 있는 사람들이었고, 항상 도덕 따위의 말들을 좋아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