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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다 Dec 01. 2024

온실 속의 화초

불행이라 생각했던 시간을 지나고 나니 인생의 경험이 되었네.

오빠를 보낸 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엄마의 말로는 연기처럼 사라진 아들이라는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식사도 하고, 통화하던 사람이 밤 사이 급성 심정지로 떠나버렸으니 정말 그 말이 정확하다.


처음 오빠의 부고소식을 들은 것은 아빠의 전화를 통해서였다. 집에서  점심을 다 먹고 식탁에 앉아 있다가 오랜만에 걸려온 아빠의 전화에 무슨 일이냐 장난치듯 받았는데 아빠는 오빠가 죽었다고 얘기했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얘기에 너무 당황해서 거짓말 아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사인을 몰라서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영안실에서 마지막 얼굴을 보고 나니 우리 모두는  안도 할 수 있었다.

곤히 자고 있는 듯이 편한 얼굴에 마지막 가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구나 그게 가장 큰 위안이었다.


그렇게 급하게 3일장을 치르면서 많이도 울었다. 내가 눈물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었구나 다시금 느낄 정도로 울고 또 울어도 계속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휴직 중이라 맘껏 쉬고 놀면서 누구보다 행복한 때를 보내고 있었던 지라 갑자기 닥친 비극이 더욱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갑자기 나에게 왜 이런 불행이 집행되었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벌을 받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이런 슬픔 없이 살아온 내가 참 온실 속에 화초로 살았구나 싶었다.  한순간 와장창 하고 깨져버린 유리 온실에서 바깥의 차가운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휘저어지고 있는 가녀린 풀때기가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힘들고 괴로울 엄마 아빠에 비하면 나의 슬픔은 크지 않게만 느껴졌다. 나마저 무너지면 엄마아빠를 지탱할 무언가가 아주 없어진다는 생각에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영 억울했다. 가만히 있으면 불쑥불쑥 찾아오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자책을 하다가, 원망을 하다가, 자기 긍정의 단계까지 왔다. 뉴스로 전해지는 각종 사건 사고들에 비하면 우리는 오빠를 편하게 보내준 격이라 위안을 삼았다.


2개월 후 복직을 하고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또 한 번 맞이한 어려움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연달아 닥친 불행이 나를 위축시키다 못해 세상에 없는 존재로 살고 싶게 했다.

내가 했던 행동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 내가 살았던 삶 모든 것들이 다 거짓 같고 잘못된 것같은 혼란을 느꼈다.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나기가 싫어졌다. 뒤에서 나를 욕하고 있을 것만 같아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웠다.

한없이 가라앉는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엇을 한들 의미 없어 보였다.

바다 깊숙이 가라앉기만 하다가 바닥에 닿았다 싶을 때까지 내려갔다.


일상에서 꼭 해야 하는 것만 하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의미 없는 것들이 전혀 쓸데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혼 없이 하던 일들이 가끔 재밌어지는 이 생기고 어느새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절실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내 마음의 상처에도 회복기간이 필요했나 보다.


그렇게 서서히 떠오르다가 이제는 완전히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나와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가끔 과거의 상처가 불쑥 떠올라 한없이 가라앉게 되는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들이 나에게 인생의 큰 경험이었다고 나를 한 뼘 더 성장시켜 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다 지나고 나오니  내가 터널 안에서 어둡게만 느꼈던 주변이 사실은 밝은 곳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변한 것은 나의 마음이었다. 다시 돌아오니 세상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지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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