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은 듯 익숙한 발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내 안에서 무너져 내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지 팔자는 지가 꼰다.”
문득 떠오른 말이었다.
아프게도,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스무 살의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존경하던 교수님이 미국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나를 초대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 오기만 해요.”
내 인생을 바꿀 기회였다.
하지만 그때의 남자친구, 지금의 남편은 말했다.
“외국은 안 돼. 대신 국내 어디든 보내줄게.”
그리고 한마디.
“너 손에 평생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게.”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사랑이었고, 믿음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날부터
내 손은 매일 물에 젖기 시작했고,
남편의 귀가는 늘 자정 이후였다.
결혼 전, 나는 자주 말했다.
“난 남편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여자 안 될 거야.”
그런데 지금의 나는,
밤마다 시계를 보며 남편을 기다리고,
그의 말투에 하루 감정이 좌우되는 사람이다.
슬프고, 또 슬프다.
한때의 나를 배신한 것 같아서.
어느 날 아침마당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술에 취한 척 연기했더니 남편이 깜짝 놀라 일찍 들어오더라.”
그 말을 듣고, 나도 해보기로 했다.
맥주 한 모금 입에 대고, 나머지는 변기에 쏟아버렸다.
머리가 아픈 척,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거실에 앉았다.
12시. 남편이 들어왔다.
술을 못 마시는 아내의 낯선 모습에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잠시 일찍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모든 건 다시 제자리로.
결혼 후, 명절은 나를 더 낯설게 만들었다.
친정에 갈 수 없었고, 하루 종일 시댁 제사 준비에 허리가 휘었다.
남편은 이미 차려진 상 앞에서 술을 들고 웃었고,
나는 부엌에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럴 때면 친정 엄마가 그립고,
오빠, 언니와 먹던 떡국이 떠올랐다.
나는 언제부턴가 ‘딸’이 아닌 ‘며느리’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만들기로 한 날,
남편은 약속 시간에 오지 않았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결혼 전 약속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결혼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연락을 끊고, 끝내기로 했다.
일주일 후, 학원 원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신랑 될 사람이 몇 번이나 연락했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봐.”
그렇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나간 자리에서
결국 나는 결혼을 택했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순간이
내 인생의 마지막 '선택권' 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같은 질문을 한다.
“결혼은, 여성에게 무엇인가?”
남편은 여전히 같은 회사, 같은 친구, 같은 생활을 살아간다.
나는 친정을 떠나 낯선 집에 살고,
가족은 멀어졌고,
꿈은 미루어졌다.
나는 사랑을 믿었다.
그리고 지금은 현실을 견디고 있다.
그래도 아직 남은 시간이 있다면,
나는 나의 이름을 다시 찾아야겠다.
해바라기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