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다 버틴 뒤에야 비로소 내 감정이 집에 들어오는 날이 있다.
회사에 있을 때는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메일도 제때 보냈고, 점심도 챙겨 먹었고, 누가 말을 걸면 적당한 타이밍에 웃을 수도 있었다. 바쁜 시간 안에 들어가 있으면 감정도 잠깐 일을 멈추는 것 같다. 힘들다는 생각조차 뒤로 밀려난 채, 나는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끝내며 하루를 통과한다.
그래서 낮 동안의 나는 제법 멀쩡해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근하고 나면 모든 게 달라진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 쪽으로 걷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신발을 벗는 그 몇 초 사이에 하루가 갑자기 무게를 되찾는다.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마음도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그제야 나는 오늘이 생각보다 길었다는 걸 알게 된다.
큰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누가 심하게 다그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엉망인 하루도 아니었다. 그저 여러 번 작게 참고, 여러 번 작게 넘긴 것들이 저녁이 되면 한꺼번에 돌아오는 것뿐이다. 별말 아닌 말투 하나, 오래 기다린 답장 하나, 대수롭지 않게 넘긴 표정 하나가 갑자기 마음에 걸린다.
가끔은 세수도 하기 전에 소파에 앉아 한참을 가만히 있는 날이 있다.
불도 켜지 않고, 겉옷도 벗지 않은 채 어두워지는 방 안에 앉아 있으면 내가 낮 동안 얼마나 단단한 척을 했는지 조금씩 보인다. 낮에는 그렇게 잘 버텼는데, 저녁만 되면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미뤄둔 감정들이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찾아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날은 울 이유가 없는데도 괜히 눈물이 날 것 같고, 어떤 날은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다.
그럴 때면 내가 약한 사람인 것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이제야 솔직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하루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힘들었다는 걸 인정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퇴근하고 나서야 진짜 하루를 끝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낮의 나는 일을 하기 위해 감정을 뒤로 미뤄두고, 저녁의 나는 미뤄둔 마음을 하나씩 다시 받아 안는다. 그래서 요즘은 저녁의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려고 한다. 낮의 내가 잘 버텼다면, 저녁의 나는 조금 느슨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려 한다.
마음이 늦게 도착하는 날은, 그 늦음까지도 하루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어쨌든 내 마음은 오늘도 끝내 나한테 돌아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