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는 순간 밀려올 감정을 알기 때문에 귀가를 조금 늦추는 밤
퇴근하고도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집에 가기 싫은 건 아니다.
불을 켜야 밝아지는 방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 없는 저녁도, 이미 익숙하다면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데도 어떤 날은 이상하게 바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그건 집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혼자 오늘의 나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버거워서다.
회사 건물을 나오면 나는 늘 집 방향으로 걷는다.
다만 곧장 가지는 않는다. 편의점에 들러 필요하지도 않은 물을 고르고, 동네 골목을 괜히 한 바퀴 더 돈다. 이미 충분히 피곤한데도 바로 귀가하지 않는 건, 혼자가 되는 순간이 조금만 늦게 왔으면 해서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동안에는 아직 괜찮은 척을 할 수 있으니까.
가끔은 편의점 냉장고 앞에 오래 서 있다가 스스로가 우스워질 때도 있다.
딱히 마시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문을 열었다 닫고, 과자 봉지를 집었다 놓고, 할인 스티커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 몇 분이 대단한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 시간이 꼭 필요하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음이 숨을 한 번 고를 수 있는 얇은 틈 같은 시간.
예전에는 이런 내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 바로 집에 가서 쉬지 않을까, 왜 이렇게 간단한 행동 하나가 어렵지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나는 집에 가기 싫은 게 아니라, 오늘 하루를 다 버텨낸 내 표정을 바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거였다.
거울 속의 나는 늘 생각보다 지쳐 있고, 씻고 나와 침대에 눕는 순간 참았던 생각들이 너무 쉽게 몰려온다.
낮에는 괜찮다고 넘겼던 말들이 밤이 되면 다시 의미를 갖고, 아무 일 아니라고 지나쳤던 장면들이 괜히 서럽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귀가를 조금 늦춘다. 오늘의 나를 만나는 일을 아주 잠깐만 미루고 싶어서.
하지만 결국은 집으로 들어간다.
현관문을 열고, 캄캄한 방 안에 손을 뻗어 스위치를 켜고, 익숙한 냄새를 맡는다. 그 순간 늘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건 집이 아니라, 끝내 혼자가 되면 들리기 시작하는 내 마음이었다는 것.
그래도 조금 늦게 들어간 밤들은 이상하게 덜 미안하다.
그만큼 천천히 나를 만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 하루를 버틴 사람에게는 곧장 괜찮아지는 것보다, 잠깐 맴돌 권리가 더 먼저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아직도 가끔 집 앞을 서성인다. 그리고 그게 그리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요즘은 조금씩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