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불빛 아래서는 들키고 말 것 같은 마음 어둠을 조금 더 둔다
가끔은 집에 들어와도 바로 불을 켜지 않는다.
손 하나만 뻗으면 밝아질 방인데, 이상하게 그 짧은 동작조차 크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어둑한 방 안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도 벗지 않은 채 한동안 그대로 서 있는다. 창밖 불빛이 겨우 방의 윤곽만 만들고 있는 시간, 그 조용함은 묘하게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그런 날은 주로 배달 음식을 시킨다.
정성껏 뭘 해 먹을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 오늘 하루를 더 이상 애써 돌보고 싶지 않아서다. 문 앞에 놓인 음식을 가져와 상자를 열고, TV 소리만 조금 틀어놓은 채 밥을 먹는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혼자 먹는 저녁은 식사라기보다 하루를 넘기는 의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상하게도 불을 켜지 않으면 마음도 조금 덜 드러나는 것 같다.
밝은 방에서는 괜찮지 않은 표정이 너무 또렷하게 보일 것 같고, 씻지 않은 얼굴과 푹 꺼진 어깨가 말 없이 나를 바라볼 것만 같다. 어두운 방은 그런 것들을 조금 덜 선명하게 해준다. 완전히 숨겨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내가 나를 똑바로 보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어둠은 허락해준다.
숟가락이 일회용 용기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소리인데, 그런 저녁에는 그 소리마저도 이상하게 쓸쓸하다. 혼자 먹는 밥이 원래 외로운 건 아닌데, 가끔은 그 혼자라는 사실이 음식보다 먼저 목에 걸릴 때가 있다. 배는 고픈데 마음은 식욕을 따라오지 못하는 저녁.
그렇다고 그 시간이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나는 그런 저녁마다 오늘의 내 상태를 대충은 알게 된다.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어떤 말이 오래 남았는지, 지금 누군가의 위로를 원하는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있고 싶은지를.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에서는 평소보다 내 마음이 조금 더 또렷하게 들린다.
어쩌면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잠깐 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환하게 살아내지 못한 하루를, 어둡게라도 무사히 끝내기 위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생각보다 담담한 일이고, 생각보다 자주 사람을 살린다.
불을 켜지 않은 채 저녁을 먹는 날이 있다.
그리고 그런 날의 나는, 생각보다 많이 지쳐 있고, 동시에 생각보다 잘 버텨낸 사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