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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Nov 12. 2024

자유글 07

만약에

만약에


길을 잃은 느낌이다. 아니 길은 원래 없었다. 없던 길을 내고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시간이라는 수레바퀴에 굴러 살아왔을 뿐이다. 살다 보니 이 나이를 먹게 되었다. 돌아보니 기적처럼 느껴졌지만 매순간은 굴러도 구르지 않은 바위같았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가는 세월을 그저 넋 놓고 보내주고 있다. 의지도 의욕도 없는 일상의 연속이 혼란스럽다.  

    

인생이 30년 남았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30년 후라면 지금의 어머니 나이가 돼 있을 텐데. 어머니의 전철을 밟는다면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누군가를 의지해야 하는 목숨이라면 미안함이 가득할 수 있겠다. 그리고 삶이 구차해서 귀찮아질 수도 있겠다. 남은 30년을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까. 무얼 계획해야 할까.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것들이 없다. 30년은 너무 긴 세월일까.


앞으로 20년 남았다면 어떤가. 30년만큼 여전히 많은 날들이 남아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도 알지 못한 사이에 금방 20년은 흘러갈 것이다. 남편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키우며 보낸 세월과 거의 맞먹는 시간이다. 생각하면 20년은 참으로 길었다. 그 세월은 아주 까마득한 어둠속으로 묻힌 느낌이다. 앞으로 20년을 보내고 나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덧없이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고 하다가 20년은 흘러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덧없는 시간이라고 해도 살아있으니 무언가를 해야할 것이다. 그 세월 동안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 글쓰기를 빼고는 도대체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이니 심적으로라도 글을 쓰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지도.

10년이 남았다면 어떻게 할까. 10년이라, 정말 10년밖에 안 남았다면 좀 더 긴장을 해야 할 것이다. 남편이 간 지 10년이 넘었다. 두 권의 책을 썼다. 꼬맹이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시댁 어르신들은 돌아가셨다. 친정어머니를 모시게 되었고 독서지도사며 논술교사며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하강곡선처럼 인생이 꺾여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생을 투덜거리며 불만을 품고 살 수는 없다.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베풀고 좀 더 너그럽고 친절해야 할 것이다. 기껏해야 이것밖에 안 되는 삶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할 것이다. 10년을 붙잡고 한시도 허투루 쓰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고 싶은 것일까. 그 무엇의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10년을 20년이나 30년과 다르지 않게 살아갈 것 같아 걱정스럽다. 어디에 목표를 둘까. 65세에 인생이 끝난다는 것인데. 그때는 머리숱이 허옇게 바래고 등은 조금 구부정해지고 목소리는 탁해지겠지. 그럴 때를 대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껏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해 후회가 되는가. 곰곰이 따져보니 열성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여행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무얼 사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저 침잠하여 가고 싶어했다는 것. 


5년이 남았다면 그래도 오늘처럼 무기력한 일상을 보낼 것인가. 아직 5년이 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 녀석이 대학을 마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것에. 치매 앓은 어머니에게 더욱 다정하게 굴고 자식들에게 엄마로서 아낌없는 정을 베풀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오직 사랑만을 주고받으며 이웃들에게는 웃음으로 인사할 것이다. 5년이라면 너무 짧은 시간일 것이다. 5년이 남았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대로의 삶을 답습할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무엇을 하고 싶은데 능력이 안 돼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지 모른다.  

  

1년밖에 안 남았다면? 그때도 이렇게 넋두리하듯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봐 그게 두렵다. 아니 하고 싶은 일이 없으니 그저 그렇게 시간을 흘러보내고 말지도 모른다. 이루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마음이 늙어버린 이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막막한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다. 그저 다가오는 죽음의 발자국소리를 듣다가 사라져야 하는가. 그러면 인생이 너무 쓸쓸하지 않은가.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은 인생을 이렇게 남 얘기하듯 흘러 말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생을 좀먹으며 살아서는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꼭 무엇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친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그러나 1년밖에 없다면 스스로 조금은 다그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타협하고 게으르게 굴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자신이 꿈꿨던 일들에 다가가는 쪽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꿈은 무엇이었던가. 꿈이 있기나 했던가.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니,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왔으니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1년이라면 생각을 고쳐먹을 필요가 있다. 많지 않은 시간이니 좀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1년밖에 안 남았다면 잠을 줄이고 담배를 줄이고 우울을 줄이고 하루를 10년 같이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갈 것이니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생활을 영위할 것인가.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애착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일주일이 남았다면 무얼 할 것인가. 우선 신촌에서 아들이 오는 날이니 아들이 오면 침대에 편히 드러누워 손을 잡고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을 것이다. 둘째 날은 출가한 딸을 불러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것이다. 그러면 우리집 맹이는 식탁 위를 어슬렁거리며 간식을 맛보려고 앞발로 장난을 쳐대겠지. 셋째날은 일요일이니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단풍 든 아파트 길을 걸을 것이다. 고관절 수술로 걷지를 못해 다리 근육이 약해졌으니 놀이터에서  걸음마도 시키고 벤치 기둥을 붙잡고 서 있게도 하고 감이며 모과 나무 밑에 가서 감과 모과를 보여드릴 것이다. 넷째날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아침을 챙기고 어머니를 센터에 보내고 일을 나갈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뺀질거리는 남자 중학생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다섯째 날은 전날과 비슷할 것이다. 여섯째 날은 사랑했던 사람과 못다한 진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 일곱째 날은 때가 되었으니 먼저 떠난 당신을 만나러 갈 것이다.

      

공허한 아침이다. 오늘 하루만 남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을 보내고 말 것인가.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말 것인가. 그저 창문 가까이 의자를 놓고 유리문을 통해 들어온 가을 햇살을 받으며 우리집 맹이와 함께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광합성을 즐기는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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