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무정』(민음사)
흔들리는 마음 저도 몰라
이광수의 『무정』을 읽으며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이미지는 ‘흔들리는 마음’이었다. 주인공 형식은 두 여인 사이에서, 그리고 시대적 격랑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하지만 그 갈등은 단순히 개인적 연애의 기로라기보다, 조선이라는 식민지 현실 속에서 한 청년이 짊어져야 했던 결핍감과 상실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광수의 『무정』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드러난 작품이다. 작가는 부모를 잃고 가난하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이후 교사 생활을 하는데 이는 주인공 형식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1892년에 태어난 이광수가 『무정』을 연재한 1917년은 25세의 나이인데 형식의 나이도 얼추 24~5살이다. 『무정』은 1917년 1월 1일에서 6월 14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작품으로, 당시 독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연애 이야기가 그렇듯, 형식이 영채와 선형 중 누구와 결혼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을 것이다.
형식은 고아의 몸으로 영채의 아버지 박진사 집에 의탁하여 살다가, 박진사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서 영채와 생이별을 한다. 그때 영채는 12세, 형식은 18세였다. 오누이처럼 정답게 지내며 서로에게 기대던 두 사람의 이별은 통한과 애절함을 남겼다. 이후 형식은 일본 유학을 거쳐 경성학교 교사가 되고 존경을 받지만, 영채는 ‘무정’한 세상에 내던져져 기생으로 전락한다.
세월이 흐른 뒤 영채가 기생 차림으로 형식 앞에 나타나자, 형식의 마음은 복잡하게 흔들린다. 그에게 영채는 생동감 넘치는 ‘길가의 행화’였고, 선형은 선망의 대상인 ‘달 속 계수나무’였다. 그러나 형식은 영채의 과거를 의심하며 무정하게 대했고, 영채는 그 마음을 읽고 스스로 돌아선다. 이후에도 형식은 선형과의 결혼 문제, 사회적 체면과 신분, 외모와 재력 앞에서 흔들리고 머뭇거린다.
결국 형식은 선형과 혼인해 미국 유학길에 오르지만, 대동강에서 목숨을 끊으려다 살아난 영채와 기차 안에서 재회하면서 또다시 갈피를 잡지 못한다. 형식의 흔들림은 단지 연애의 기로가 아니라, 고아로 성장해 가진 것 없는 자가 느끼는 결핍과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한 불안정은 때로는 사적인 정분을 넘어 조선을 과학과 지식으로 전도하겠다는 원대한 이상으로 튕겨 나가기도 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 문단은 웅변가의 웅변을 듣는 것처럼 독자를 휘어잡은 강렬함이 있다. 시냇물이 돌부리 사이를 흘러가는 듯 찰랑거리는 리듬으로, 독자의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을 소리 내어 읽는 걸 좋아한다.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 『무정』을 마치자.”
이 선언은, 개인의 갈등을 넘어 민족의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비상한다. 그러나 역사는 곧 그것을 배반했다. 『무정』의 희망적 결말 뒤로 3·1운동의 만세 함성이 있었으나, 그 이후 일제의 식민 지배는 더욱 잔혹해졌다.
형식의 흔들리는 마음은 곧 작가 자신의 마음이기도 했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을 발표해 일제의 침략을 합리화하며 역사 앞에 무정한 모습을 보였고, 해방 후에도 ‘무명’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다가 납북과 함께 생을 마쳤다. 그럼에도 『무정』은 ‘첫 근대 장편소설’로서 여전히 빛을 발한다. 사랑과 결혼, 민족과 계몽, 결핍과 상실의 흔들림을 한데 엮어, 개인의 이야기와 시대의 이야기를 함께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무정』은 제목 그대로 ‘무정’한 세상을 조망한 소설이다. 그러나 동시에 흔들리고 방황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흔들리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근대성을 담보하는 자질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단지 이형식이라는 존재의 흔들림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고뇌하는 청년들의 고백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